“기술 도입·노동 전환 못하면 경쟁력↓"
현대자동차가 휴머노이드 로봇 도입에 속도를 내자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지며 산업계 전반으로 논쟁이 격화하고 있다. 보스턴다이내믹스가 공개한 차세대 ‘아틀라스(Atlas)’의 제조현장 투입 가능성이 가시권에 들면서 정치권도 ‘AI발 일자리 충격’ 대응에 나서자 정책이슈도 확대되는 분위기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세진 ITIF 정책연구원은 “현재 한국의 AI 논쟁은 미래 위험을 과도하게 현재화한 측면이 있다”며 “실제 데이터는 대규모 기술적 실업보다 노동시장 적응 지연과 생산성 둔화를 더 강하게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로봇=일자리 감소’ 마찰적 현상
ITIF는 현재 논쟁의 핵심 전제가 현실과 괴리가 있다고 짚었다. AI와 로봇이 이미 고용을 빠르게 잠식한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지만 입증할 통계는 제한적이라는 것이다. 특히 한국은 미국의 구인·이직 보고서(JOLTS)와 같은 고빈도 노동시장 데이터가 없어 기술로 인한 해고를 실시간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그만큼 정책 판단에 신중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실제 고용 감소 흐름도 기술 충격보다는 경기 요인의 영향이 크다. 2025년 건설업 고용 감소는 투자 위축에 따른 것이며, 제조업 역시 수출 둔화의 영향을 받았다. 일부 반복 업무 직종과 청년층에서 나타나는 압박 역시 경제 전반의 일자리 대체라기보다 ‘이행 과정의 마찰’로 해석된다는 것이 ITIF의 진단이다. 김 연구원은 “AI로 인해 경제가 빠르게 ‘속이 비어간다’는 식의 서사는 데이터로 확인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국+저생산성’이 핵심 리스크
ITIF 보고서는 한국 경제의 핵심 리스크를 ‘AI로 인한 일자리 감소’가 아니라 ‘생산성 둔화와 중국의 비용 경쟁’이라고 진단했다. OECD 자료에 따르면 한국의 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미국에 비해 70~75%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노동생산성 증가율도 2000년대 초반 3%대에서 최근 1% 수준으로 크게 둔화됐다. 특히 서비스업 생산성이 제조업 대비 크게 뒤처진 구조가 문제로 꼽혔다. 전체 고용의 3분의 2가 서비스업에 집중된 상황인 만큼는 임금 정체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반면 중국 기업들은 자동화 투자 확대를 통해 생산성과 비용 경쟁력을 동시에 강화하는 추세다. 국제로봇연맹(IFR)에 따르면 2023년 전 세계 산업용 로봇 설치의 절반 이상이 중국에서 이뤄졌다. 김 연구원은 “한국 제조업이 직면한 현실은 ‘로봇이 일자리를 빼앗는다’가 아니라 ‘로봇을 도입하지 않으면 경쟁에서 밀린다’는 구조적 압박”이라고 진단했다.
기술 도입 늦추면 해외이전 가속 우려
한국은 이미 제조업 로봇 밀도 세계 1위 국가다. 노동자 1만 명당 1000대 이상의 로봇이 투입돼 있다. ITIF는 이를 ‘과도한 자동화’가 아니라 ‘경쟁력의 표현’으로 평가했다.
보고서는 기술 도입 속도를 늦출 경우 투자와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될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이는 단기적 고용 보호와 달리 중장기 산업 기반을 약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속도 조절’ 대신 ‘노동 전환’
ITIF는 정책 대응 방향도 명확히 제시했다. 핵심은 기술 도입을 늦추는 것이 아니라 노동 전환과 생산성 제고를 병행하는 것이다.
우선 노동시장 데이터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해고·이직·재취업 흐름을 체계적으로 추적할 수 있어야 정책이 ‘인식’이 아니라 ‘증거’에 기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AI 규제도 속도보다 정밀성이 중요하다. 충분한 관찰 기간을 두고 실제 위험이 확인된 영역 중심으로 규제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노동 전환이다. 재교육과 재취업을 전제로 한 단기 지원은 필요하지만, 장기적 소득보전 중심 정책은 노동시장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고 ITIF는 경고했다.
김 연구원은 “AI 시대 정책의 핵심은 일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더 생산적인 일자리로 이동시키는 것”이라며 “기술 도입과 노동 전환을 동시에 설계하지 못하면 한국 경제의 경쟁력은 빠르게 약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술에 대한 공포에 기반한 정책은 신기술 도입을 늦추고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생산성과 노동 전환을 중심에 둔 전략이 긴요하다. 결국 선택은 경쟁력 저하를 무릅쓰고서라도 로봇 규제에 나설지, 아니면 로봇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경쟁자를 따돌릴 것인지로 귀결된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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