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관투자자들은 더 이상 등급표만 믿지 않는다. 개별 기업의 업황과 그룹 리스크를 먼저 점검하는 ‘선별 투자’ 기조가 3분기에도 이어진 것이다.
한국금융신문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 자료를 바탕으로 일반 회사채와 자본성 증권(후순위채, 신종자본증권)의 2025년 3분기 공모 발행 실적을 대상으로 발행사·계열별 발행규모와 수요예측 결과 등을 종합 분석했다. 이번 분석에는 은행채, 여전채(카드채), 자산유동화증권(ABS) 및 수요예측을 거치지 않은 딜은 제외했다.
3분기 누적 기준 최대 발행사는 DB손해보험(AA)으로, 총 7470억 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대표주관사인 KB증권과 신한투자증권이 초기 모집액 5000억 원 대비 2470억 원을 증액 조달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 외에도 KB증권과 SK이노베이션이 각각 6000억 원을, 한국금융지주와 신한금융지주가 각각 4500억 원, 4000억 원을 발행하며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3000억 원 이상 발행사는 총 26개사, 이들의 발행액은 10조4970억 원(전체의 65.4%)으로 집계됐다. 전분기(50.8%) 대비 비중은 14.6%p, 금액 기준으로는 약 2조8천억 원 늘었다. 이 가운데 AA- 이상 우량채가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A+∼A- 등급도 8개사(30.8%), 2조6000억 원(24.8%) 규모로 뒤를 이었다.
이들 26개사의 증액 규모는 4조5170억 원으로, 전체 증액 규모(6조2110억 원)의 72.7%에 달해 2분기(57.0%) 대비 15.7%p나 상승했다.
발행 규모 1000억 원 이상으로 범위를 확대하면 53개사, 15조1960억 원으로 전체 발행규모 중 94.7%에 달했다. 참고로 2분기 실적은 14조2440억 원, 94.5%로 대기업 우량채에 대한 투자 집중 현상은 더욱 심화됐다.
계열별로는 SK그룹이 5개사에서 총 1조7200억 원을 발행하며 2분기에 이어 1위를 유지했다. 그 뒤를 롯데그룹(9730억 원), 하나금융그룹과 신한금융그룹(각각 9500억 원), 현대자동차그룹(7600억 원)이 이었다.
이들 상위 5개 그룹의 총 발행액은 5조3530억 원(전체의 33.4%)으로 집계됐다. 2분기 상위 5개 그룹의 비중(36.4%)보다는 소폭 하락했으나, 재벌 대기업 중심의 발행 구조는 여전히 공고했다.
현대지에프홀딩스(AA+) 3년물(16.0대 1), 하이트진로홀딩스(A) 3년물(15.6대 1), 동원에프앤비(A+) 3년물(15.3대 1), 연합자산관리(AA) 2년물(15.1대 1) 등도 15배 이상 경쟁률을 기록하며 흥행 대열에 합류했다.
반면 롯데건설(A)과 CJ CGV(A-)는 모든 트랜치에서 단 한 건의 매수주문도 받지 못했다. JTBC(BBB), SLL중앙(BBB) 등 중앙일보 계열사와 이랜드월드(BBB) 역시 모집액을 채우지 못하며 수요 부진을 겪었다.
3분기 전체에서 경쟁률 2배 미만 트랜치는 16건, 발행액은 8500억 원(5.3%) 수준이었다.
부진 그룹은 대체로 BBB 이하 등급이었지만, 현대제철(AA, 7년물)과 하나캐피탈(A, 30년물)도 포함돼 장기물 리스크가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됐다. 흥행 그룹은 AA+부터 A-등급까지 혼재, 과거 대비 등급별 온도차가 완화된 양상을 보였다.
건설·석유화학·철강·부동산신탁 등 업종은 업황 불안과 실적 부진, 비우량 계열 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수요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반면 보험·증권·소비재 중심의 우량채는 유동성 선호와 안정적 재무구조를 기반으로 흥행을 이어갔다.
전문가들은 “금리 안정세에도 불구하고 신용등급만으로 투자 판단이 어려워진 시장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며 “4분기에도 대형·우량채 중심 발행이 이어지겠지만, 저신용 기업의 자금 조달 여건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두경우 한국금융신문 전문위원 kwd1227@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