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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은행은 금주머니가 아니다

김성훈 기자

voicer@fntimes.com

기사입력 : 2025-06-30 05:00

원칙 없는 민생금융 지원 요구에 은행권 부담↑
실용주의적 규제 합리화로 은행 성장 지원해야

▲ 김성훈 기자

▲ 김성훈 기자

[한국금융신문 김성훈 기자] '등가교환(等價交換)'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학 용어인데, 일본의 유명한 만화에서 핵심 주제로 활용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다.

한자 그대로 같은 가치의 재화나 서비스를 교환, 거래한다는 의미다.

사람마다 가치가 다르기에 현실에서는 온전한 등가교환이 어렵지만, 요지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필요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부' 역시 개인은 '만족감'을, 기업은 '브랜딩'을 얻는다.

그러나 최근 수년간 정부의 금융지주와 은행에 대한 서민·소호금융 출연금 요구는 대가를 생각하지 않는, 일방적인 강요로 보인다.

지난 정부에서 금융권은 2023년 말부터 민생 금융 방안으로 2조 1000억원 규모의 지원을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3년간 매년 7000억원씩 총 2조원 이상을 투입하는 '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에도 참여하기로 했다.

새 정부는 이에 더해 배드뱅크 재원 4000억원을 요구하고 있고, 강력한 서민·소호금융 지원 기조로 볼 때 더 많은 금융·비금융 지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4000억원은 4대 금융지주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 증가분의 60%에 달하는 규모다.

물론 금융권, 특히 은행은 국민에 빚이 있다.

지난 1997년 IMF 사태 때 은행권 회생과 인수합병 등을 위해 사용된 공적자금은 60조원이 넘는다. 상당 금액을 회수 했다지만, 사경을 헤맬 때 내민 손에 대한 감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이후 2008년 미국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로 인한 경제 위기 때에도 대부분 간접 지원이긴 했으나 채권시장안정펀드와 은행채 차환보증제도, 한국은행의 지원 등으로 40조원 이상의 자금이 동원됐다.

문제는 이를 빌미로 규정된 원칙이나 보상 없이 대규모 자금을 요구한다는 점이다.

금융권은 공적자금에 대한 대가로 2000년대 들어 사회공헌 규모를 수 천 억원으로 늘렸고, 2019년에는 은행권 연간 사회공헌 규모가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에는 약 1조 9000억원에 달해, 2조원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직접적인 사회공헌 외에도 스타트업 육성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을 위한 간접 지원에도 적지 않은 돈을 쓰고 있다.

이 같은 노력에도 정부가 은행을 손 넣으면 금이 나오는 '금주머니'처럼 여기는 것은 자본주의 원칙에 어긋나는 행태다.

과거에 빌린 돈을 다 갚았음에도 "빌려준 적이 있으니 돈을 내놓으라"는 사람, 기관이 있다면 아마 법적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은행은 금주머니가 아니다.

언제든 돈을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됨은 물론, 돈을 꺼낸 이상 어떤 방식으로든 그 대가를 치를 수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은행도 사업 확대, 임직원들의 임금 인상, 주주가치 보호 등을 위해 매년 더 많은 수익을 내야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출연금을 요구할 경우 이를 상쇄할 방안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행의 상쇄 방안이란 작게는 각종 혜택·서비스 축소부터 대출금리 우대 폐지, 고위험 대출 중단, 예적금 금리 인하, 스타트업 지원 규모 감축 등 어떤 형태로 나타나게 될지 알 수 없다.

이 같은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는 정부도 등가교환 원칙에 따라 은행의 자금 지원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대가를 제시해야 할까. 은행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정부만이 줄 수 있는 것. 바로 '규제 합리화'다.

은행이 금융 AI 관련 혁신 기술을 더 많이 내놓을 수 있도록 샌드박스 프로그램을 확대·강화하고, 포용금융 강화와 밸류업을 함께 이뤄낼 수 있도록 RWA 관련 규제를 완화·개선하는 등 방법은 다양하다.

금융지주의 핀테크 지분 확대를 허용하고, 정부 차원에서 글로벌 금융시장 진출을 지원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은행권에서 특히 바라는 것은 '비금융 서비스' 관련 규제 완화다.

은행연합회는 지난 19일 회원 은행들의 의견을 모아 국정기획위원회에 '경제 선순환과 금융산업 혁신을 위한 은행권 제언' 최종 보고서를 전달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은행권의 성장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 완화에 대한 내용이 담겼는데, 여기에도 비금융 서비스 관련 내용이 포함됐다.

현재 비금융 서비스는 은행법상 부수업무에 포함되지 않아 은행이 수행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금융 회사 지분 확보를 통해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려 해도, '금융위가 정하는 업종'에 해당하는 회사만 자회사로 둘 수 있어 혁신 서비스를 내놓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미국·영국·싱가포르·일본 등은 제도 개선을 통해 은행의 비금융 진출을 지원하고 있어 추후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은행권은 부수업무 범위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규제 자체를 현행의 열거주의(Positive)가 아니라 원칙중심(Negative)으로 바꾸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어려울 경우 금융지주·은행의 슈퍼 앱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비금융 서비스들을 운영할 수 있게 해달라는 얘기다.

주요 비금융 업종으로는 유통·운수·여행업이나 ICT·디자인(UX·UI·캐릭터) 등이 거론된다. 글로벌 진출을 위한 해외 비금융 플랫폼 인수 허용에 대한 요청도 있다.

은행법상 비금융회사 주식을 최대 15%까지만 보유할 수 있어, 현지화와 고객 기반 확대에 어려움이 많다는 것이 은행권의 설명이다.

디지털자산업 진출 허용에 대한 목소리도 적지 않다.

최근 '스테이블코인'이 화제가 되면서 디지털자산 관련 법안 발의가 이어지고 있고, 정부에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금융업법상 증권사·자산운용사·보험사는 디지털자산 관련 사업에 큰 제약이 없지만, 정작 가장 안정성이 높은 은행의 경우 업무범위에 디지털자산업이 구체적으로 포함돼 있지 않아 사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는 힘든 상황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새 정부가 큰 지지를 얻은 배경이자 추구하는 방향 중 하나는 ‘실용주의’다.

은행에 금융지원을 요구하되, 실용주의를 적용해 과감한 규제 합리화에 나선다면 금융권은 기꺼이 나라 경제를 위해 나설 것이다.

정부와 은행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등가교환을 이뤄나갈 때, 상생금융과 혁신금융이라는 두 바퀴가 달리며 우리 경제가 되살아 날 것이라 확신한다.

김성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voice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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