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롯데지주는 600억원 규모 기업어음(CP) 발행을 준비중이다. 만기는 1년 6개월물(100억원, 3.56%), 2년물(500억원, 3.74%)으로 구성됐다.
통상 CP는 1년 미만 자금조달에 주로 쓰인다. 만기가 1년이 넘으면 ‘장기 CP’로 불린다. 장기 CP와 공모 회사채 발행의 가장 큰 차이점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수요예측 진행여부다.
수요예측은 기업에 대한 시장 평판을 가늠할 수 있는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롯데지주가 회사채가 아닌 CP 발행을 선택한 것은 신용도 불안에 따른 평판 리스크를 고려한 것이다.
현재 롯데지주 신용등급은 ‘AA-‘이며 등급전망은 ‘부정적’이다. 신용등급이 강등되면 비우량등급(A급 이하)로 하락해 조달비용이 증가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요예측을 진행하고 그 결과가 좋지 않다면 등급 하락 전 관련 리스크가 선반영될 수 있다. 공모채 보다 금리가 높은 수준임에도 CP를 선택한 이유다.
롯데지주를 포함한 롯데그룹 계열사들은 CP 시장 단골 손님이다. 대기업집단에 속한 그룹 계열사가 공모 회사채가 아닌 CP 혹은 사모채 등으로 자금을 조달해 수요예측을 회피한다는 비판이 확대됐다. 심지어 회사채 시장 수요와 공급을 왜곡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CP 시장을 주로 찾기 시작한 것은 롯데지주가 출범한 2017년 전후다. 당시는 신동빈닫기

롯데지주는 지난 2018년 롯데케미칼 지분 인수 대금(2조2000억원)을 단기차입으로 대부분 충당해 재무부담이 확대됐다. 이후 롯데캐피탈과 롯데파이낸셜, 롯데카드 지분 일부 등을 매각하면서 재무건전성에 대한 우려는 크지 않았다.
2020년부터는 계열사 지분 추가 인수, 신사업(헬스케어, 바이오) 투자 등이 지속됐다. 그러나 주력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실적 부진과 함께 대부분의 사업에서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결과 롯데지주의 이중레버리지비율은 2020년말 136.1%에서 작년 상반기 말 기준 172.4%로 치솟았다. 이중레버리지비율이란 지주사가 자회사에 출자한 총액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수치다. 따라서 이중레버리지비율 증가는 자회사 출자 총액 대비 자기자본 훼손이 크다는 의미다. 롯데지주의 계열사 지분 확보 및 신사업투자를 통한 이익이나 배당 등이 증가하지 않은 셈이다.
한 마디로 롯데지주는 출범 이후 경영 및 투자전략에서 실패한 것이다. 실제로 롯데지주는 지난 2022년을 제외하고 별도기준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이뿐만 아니라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은 2020년 80.3%에서 작년 3분기말 기준 24.0%까지 쪼그라들었다. 1년내 갚아야 하는 돈이 1조원이라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재원은 2400억원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단기내 계열사들의 가파른 실적 개선은 어렵다. 유동성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외부조달에 의존하거나 사업 매각 등이 반드시 동반돼야 하는 상황이다.
지배구조 개편 및 구조조정도 중요하지만 롯데그룹 계열사 전반에 대한 자금조달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장기간 CP나 사모채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평판 리스크는 피할 수 있었던 반면, 투자자들 사이에선 ‘회피’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탓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CP든, 공사모채든, 은행 대출이든 기업이 상황에 따라 자금조달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이미 롯데그룹 계열사들이 수요예측을 회피한다는 인식이 팽배하고 그것이 불필요하게 경영 상황에 대한 의구심을 증폭시키는 원인이 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지주사는 자금조달과 자산배분이 핵심 능력인데 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면서 롯데지주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성규 한국금융신문 기자 lsk060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