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미국 금리는 오히려 하락했으며, 투자자들 사이에 인플레 압력에 대한 우려가 과장됐던 것 아닌가하는 인식이 강화됐다.
■ 美 소비자물가 예상을 웃돌았음에도 금리 하락요인으로
미국의 3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보다 0.6% 상승했다. 이는 예상치(+0.5%)를 약간 웃도는 결과였다.
음식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도 전월 대비 0.3% 상승해 예상치(+0.2%)를 웃돌았다. 전년 대비로는 3월 CPI가 2.6%, 근원 CPI가 1.6% 올랐다.
물가가 예상을 웃돌았지만 금리가 하락한 데는 그간 부담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 CPI가 예상을 크게 웃돌 수 있다는 경계감을 가진 탓에 기대보다 약간 높은 수치는 금리시장에 호재가 됐다.
간밤 미국채10년물 금리는 4.68bp 하락한 1.6199%, 국채30년물 수익률은 3.87bp 떨어진 2.2977%를 기록했다.
미국 CPI 여파로 국내 채권시장도 강세를 보이면서 금리 레벨을 낮추면서 시작했다.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미국 소비자물가 지표는 예상치를 상회했음에도 장은 오히려 강해졌다"면서 "물가 상승폭이 일각의 전망처럼 크지 않아 리플레이션 우려가 줄었다"고 평가했다.
■ 늘어나는 인플레 압력 과장론
미국 연준과 국내 한국은행 등은 2분기에 일시적으로 물가가 크게 오를 수 있지만, 지속성을 담보하기 힘든 물가 상승세라고 평가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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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 상승률이 0%대에선 벗어났지만 중기목표(2%)를 웃도는 압력으로 이어진다고 보긴 어렵다는 것이다.
미국 CPI를 보면 상품 가격이 물가 상승에 크게 기여했다. 상품 부문 물가는 전월비 0.4%, 전년비 4.1% 올랐다.
유승우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국제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강세와 일부 중간재 조달 차질, 상품 운송비용 급증 등과 같은 공급측 요인에 크게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최근 기업 서베이나 생산자물가 급증에서 이미 상품물가 상승 신호가 있었다"고 밝혔다.
미국의 서비스 부문 물가는 전월 대비 0.4%, 전년 동월 대비 1.8% 상승에 그쳤다. 아직 서비스 부문 수요가 위기 이전으로 회복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체 CPI 중 33% 비중을 차지하는 주거비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1.7%로 정체되며 여전히 코로나 위기 이전 수준과 거리가 있었다. 운송서비스 부문 상승률도 전월 대비 1.8% 급증했으나 여전히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은 -1.6%로 괴리를 나타냈다.
물론 향후 수요압력 등이 커지면서 과거보다는 높은 물가상승률을 구경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지만 일각에서 얘기하는 고물가 시대의 도래를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유 연구원은 "2분기 이후 서비스 부문 수요 회복이 가속화되면서 서비스 부문 물가 상승폭도 점차 높아질 것"이라면서도 "미 정부의 부양책과 가계 초과저축의 인플레이션 유발 잠재력이 과대평가 됐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2분기 중 극대화될 인플레이션은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 기저효과와 최근 부각된 원유 공급 압력 감안…더 길게 보면 원유의 지위 변할 수 있어
기본적으로 2분기 물가는 지난해 코로나 사태에 따른 베이스를 감안해야 한다.
따라서 베이스 효과를 봐야 하고, 최근 주춤하고 있는 유가 오름세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WTI는 작년 4월 10달러대로 폭락한 바 있다.
이후 WTI는 6월 하순에 40불선으로 올라온 뒤 11월 초중순까지 40불 전후의 등락을 보였다. 이후 유가는 본격적인 상승세를 나타내면서 지난달 초순엔 65달러를 넘어서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지금은 견조한 상승 흐름에 대한 의구심도 커져 있다.
황병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드라이빙 시즌(6~8월) 전까지는 재차 공급과잉 우려가 대두 가능하고 5월부터 7월까지 단계적인 증산(매달 하루 50만배럴 미만)을 합의한 4월 OPEC+ 회의가 WTI 가격의 배럴당 65달러 재돌파 가능성을 제거했다"고 평가했다.
조금 길게 봐서 이란의 공급 시장 복귀 가능성이나 신재생에너지 시대의 도래 등은 글로벌 물가 흐름에서 막대한 역할을 해온 원유의 지위에 흠집을 낼 수 있다는 진단들도 있다.
에너지 전환 관련 연구기관인 카본 트래커(Carbon Tracker)는 향후 원유 수요 감소로 사우디의 재정수지가 최대 44% 감소할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김소현 대신증권 연구원은 "신재생 에너지 시대로의 전환은 사우디를 비롯한 산유국들에게 위기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면서 "원유수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우디의 재정수입 내 원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2/3로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원유는 에너지 용도로만 사용되지 않고 각종 석유화학제품의 원료 등으로 쓰이는 등 여전히 유효한 자원이다. 하지만 시대가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길게 보면 과거의 입지를 누리기 어렵다는 평가가 많다.
■ 2분기 물가 논란은 계속될 것
2분기 글로벌 물가의 일시 급등을 놓고 이를 보는 시각 차이는 존재한다.
4월부터 물가가 급등하더라도 어차피 2분기 급등은 일회성이기 때문에 특별히 놀랄 필요 없다는 평가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예상보다 높은 물가 상승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의 저물가를 타개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진단도 남아 있다. 경기 회복 강도가 예상보다 커지면서 물가 오름세 역시 이전과는 다른 강도를 나타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단은 가시적으로 2분기에 확인하게 될 낮선 수치가 사람들 사이에 논란이 될 여지가 있다는 분석이 많은 편이다.
유승우 연구원은 "3월 소비자물가 결과로 연준의 조기 긴축에 대한 우려는 다소 완화됐다"면서 "하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기저효과가 극대화되는 시기는 4~5월이고, 앞으로 몇달간 인플레 경계감은 유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증권사의 한 관계자는 "경기회복세 속에 인플레 이슈는 계속될 것으로 봐야 한다"면서 "중앙은행들 말대로 2분기 반짝 물가 상승일지, 아니면 진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제대로된 물가 상승이 나타날지 봐야 한다"고 밝혔다.
■ 예상 웃돈 물가에도 안정 보인 금리와 주식시장 변곡점 가능성
지난주 미국과 중국의 생산자물가(PPI)가 물가 상승압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점을 알려준 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치를 상회했다.
하지만 미국채금리는 하락했으며, 뉴욕 주식시장에선 나스닥이 1% 이상 올랐다. 다우지수가 0.2% 빠지는 사이에 나스닥은 146.10포인트(1.05%) 오른 1만3,996.10을 나타냈다.
예상을 웃돈 물가가 금리 레벨을 끌어올려 성장주나 기술주에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오히려 주식, 채권시장 모두에 안도감을 선사했다. 1분기 내내 이어졌던 물가에 대한 우려가 이미 많이 반영된 측면도 작용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그림이라면 주식시장이 분위기 반전을 모색할 수 있다는 평가도 보인다.
지난 2009년과 2015년에도 채권금리가 물가 상승 우려를 선반영한 적이 있다. 당시 CPI가 마이너스권에서 레벨업되는 국면에서도 채권금리 상승폭은 제한됐다. 통화정책 변수에 따라 물가흐름과 상반된 금리 안정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경민 대신증권 연구원은 "채권금리 상승, 할인율에 대한 부담이 정점을 통과했다고 보면 성장주와 가치주 간의 스타일 변화에 대비해야 한다"면서 "3월말 이후 채권금리 하향안정과 더불어 가치주 강세, 성장주 약세 흐름에 변화가 시작됐다"고 지적했다.
업황 불확실성, 기업실적 부진이 아닌 할인율 상승으로 인한 가격과 밸류에이션 부담에 흔들렸던 성장주가 다시 기지개를 켤 때가 됐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 금리가 안정돼 달러 강세 압력이 제어된다면 국내 주식시장이 외국인 매수 등에 힘입어 다시 한번 강한 상승탄력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 연구원은 "KOSPI의 시장 구조, 상위 종목군의 구성이 할인율 변화에 민감하다. KOSPI 시가총액 상위 종목군에 IT, 신재생에너지 중심의 제조업 기업, 인터넷 기업이 대거 포진해있다"면서 "금리 상승국면에서는 시가총액 상위 종목군들이 힘을 쓰지 못했지만 글로벌 경기와 교역 개선, 신재생에너지 육성 산업 등에 대한 기대 강화와 함께 할인율 압박이 완화된다면 이들 종목들의 매력은 배가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최근 코스피지수가 꾸준히 올라오면서 사상최고치이자 연중 고점인 1월 25일의 3,208.99(종가기준)에 도전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다는 평가도 보인다.
주식시장은 올해 들어 금리 상승에 크게 흔들리다가 최근엔 금리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고 있다. 동시에 금리도 이전처럼 일방향으로 오르지는 못하고 있다.
자산운용사의 한 매니저는 "최근 주가가 가파르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면서 "기업 실적 전망의 상향 조정으로 금리 부담이 상쇄되는 것으로 보인다. 천천히 반등하면서 모은 에너지 등을 감안할 때 1월의 역사적 고점 돌파가 멀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