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당수 여당 의원들이 국채발행과 한은의 채권인수에 대해 호감을 보이고 있지만, 이주열 총재는 국채 직접인수는 중앙은행이 해선 안되는 일이라는 입장을 피력했다.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국채 발행 속에 이 총재는 합리적인 사람들 다수가 예상하던 답변을 내놓았다.
■ 국채 직접인수 'NO'한 한은 총재...중앙은행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이주열 총재는 국채 직접 인수를 묻는 질문에 "중앙은행에 대한 신뢰를 훼손하고 대외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일"이라고 답했다.
총재는 특히 "주요국은 법으로 금지한다"면서 국채 직접인수 주장에 대해선 명백히 반대했다.
최근엔 정부가 무한대로 돈을 찍어내고 한은이 뒷수습을 맞는 현대화폐이론(MMT)에 대해 호의적인 사람도 늘었지만, 여전히 이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전문가들 사이엔 정부가 재정정책을 위해 중앙은행을 머섬으로 부리는 MMT에 대해선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이 많다. 하버드대 교수인 유명 경제학자 그레고리 멘큐는 '잠꼬대 같은 소리'라면서 논쟁할 가치가 없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던 사안이다.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내면서 재정을 관리했던 국민의힘 류성걸 의원은 "(여당 쪽에서) 중앙은행의 중립성을 해치는 국채 직접인수 법안을 내놓아 의아하다"고 했다.
지난해 가장 큰 규모의 재난지원금을 주장했던 정의당의 장혜영 의원은 "국채 직접매입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의중을 헤아려 달라"고 했으나, 이 총재는 "나름대로 입장을 밝힌 사안"이라고 했다.
이 총재는 대신 올해 국채 발행이 크게 늘어나는 만큼 유통시장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매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이 총재는 "올해는 국채 발행이 더 확대되고 한은은 시장 안정을 위한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은은 여러차례 국채 물량이 늘어나 금리가 급등하는 등 변동성이 커질 경우 적극적인 시장안정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기재차관 출신의 류성걸 의원도 "유통시장에서 한은이 (국채 매입을 통해) 역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다만 포퓰리즘으로 무장한 정부와 여당이 과도하게 채권을 발행해 한은더러 이 채권을 유통시장에서 사도록 하는 일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있었다.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에서 추경을 최대 30조원까지 얘기를 하고 있다"면서 "유통시장에서 한은이 국채를 매입하도록 떠넘기는 것도 문제가 많다"고 비판했다.
이주열 총재는 "국채발행 등 상황을 지켜보고 정부와 교감하면서 대응하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 총재 답변 정해져 있었던 지급결제 논란...중앙은행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는 일
이 총재는 이날 금융위와 갈등을 빚은 지급결제 문제에 대해서도 명확한 입장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중앙은행 본연의 지급결제 관리 업무를 금융당국이 컨트롤하는 건 전세계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그간 지급결제의 안정성은 중앙은행이 담보한다는 점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다. 중앙은행이 전자금융거래법(전금법)을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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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금융결제원은 기관간 자금 청산이 주기능이며, 이 업무는 한은이 백업할 수 밖에 없는 게 지급결제 업무의 생리라고 했다. 한은이 관련 기관들의 리스크 기준을 정하고 지급결제 불이행시 유동성을 공급하는 데 전금법은 금융위가 포괄적인 감독권을 갖게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금융위의 논리도 전혀 수긍하지 않았다. 금융결제원에 집중해 지급 결제를 관리하는 것은 소비자 보호와 관련이 없고 이미 다른 조항에도 소비자보호를 위한 장치가 돼 있다고 했다.
통신사가 고객의 통화기록을 보유했다고 그 통신사를 빅브라더라고 볼 수 없지만, 그 기록을 한 곳에 모아놓고 들여다볼 수 있게 하면 빅브라더라고 했다.
금융위가 금융결제원을 통해 한은의 지급결제 관리업무라는 고유의 업무영역을 침범하려고 한다고 불편해한 것이다. 총재는 금융결제원은 소액 결제시스템이고 그 결정은 한은망에서 완결되는데, 금융위가 이런 시스템을 허물고자 한다는 우려를 보인 셈이다.
아울러 지급결제 관련법 개정안이 빅테크의 내부거래까지 포함하게 되면 이질적인 업무가 결제시스템에 들어가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은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금융위 업무보고에 앞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윤관석 의원 발의안)을 상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번 개정안은 지급결제 시스템에 대한 중앙은행의 역할과 책임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개정안에 대한 '빅브라더' 이슈도 제기된 바 있다"면서 적극적인 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 한은 목적조항에 고용안정 넣는 일...한은이 쉽게 YES할 수 없었던 일
한은 목적조항에 고용안정 문제를 집어넣는 일에 대해 이주열 총재는 "취지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런 뒤 이 총재는 "취지에 동의하지만 운용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은 점들을 의원들께서도 고민해 달라"고 했다.
사실 한은의 목적조항에 물가안정, 금융안정에 더해 고용안정을 집어넣는 일이 실익이 없다는 평가도 많다.
목적들간의 충돌이 불가피한 데다 고용안정을 집어넣어서 정책적으로 건질 게 없다는 분석도 많은 게 사실이다.
연준 등 상당수 국가 중앙은행이 고용안정을 통화정책 결정시 상당히 중요시하지만, 한은의 금리인상 발목만 잡을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한은이 물가안정도 시키고 금융안정도 시키고 고용안정도 시켜야 하는데 가진 건 금리결정 하나"라며 "바보 국회의원들이 중앙은행에 숙제만 많이 던져주면 더 나아질 것으로 착각하지만, 이러면 숙제를 하나라도 하던 학생이 아예 학업을 뒷전으로 미루게 된다"고 비판했다.
한은의 목표에 고용안정을 집어넣어야 한다는 주장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그런 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뒤 '고용'에 경제정책의 최우선 가치를 둔다고 하면서 한은에 대한 압박은 더욱 심해졌다.
하지만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 최저임금 인상폭 결정 등 정책실패로 고용 상황은 오히려 나빠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코로나 사태로 IMF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고용 상황을 기록하기 전에도 이미 일자리수 증가폭이 대폭 줄어들어 큰 논란이 된 바 있었던 것이다. 채권시장에선 고용안정을 목표에 집어넣으면 통화정책의 균형추만 흐트러질 것이란 예상이 적지 않다.
B 증권사 딜러는 "고용안정을 한은 목표에 삽입하게 되면 금리인상만 더욱 어려워질 수 밖에 없다. 무슨 긍정적인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일부에선 최근 여권이나 정부에서 나온 '뜬금 없는' 중앙은행 압박을 의심하기도 한다.
C 증권사 딜러는 "지급결제 논란에 대한 한은의 답변은 너무 당연하다. 오히려 무슨 꿍꿍이로 여당과 금융위가 이 논란을 벌이는지 의심스럽다"면서 "또 여당 의원들이 별 생각없이 MMT를 찬성하는 등 아주 위험하게 움직이는 것 또한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다.
★ [참고]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빅브라더’이슈에 대한 한국은행 입장
□ 한국은행은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한 ‘빅브라더’ 이슈가 제기**됨에 따라 국내 법무법인 2곳에 해당 사안에 대한 법률 검토를 의뢰해 최근 답변을 받았으며, 이를 참고해 한국은행의 입장을 아래와 같이 정리하였습니다.
* 2020년 11월27일 윤관석 의원 발의안
** 양기진 전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빅테크 내 전자지급거래의 청산집중 의무에 관한 검토’(2021.2.5.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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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한국은행이 중국인민은행을 통해 확인한 결과, 중국 정부도 빅테크 업체의 내부거래를 들여다 보지는 않는 것으로 확인되었고, 세계 어느 정부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② 중앙은행 지급결제망이 ‘빅브라더’ 수단으로 이용되어서는 안됩니다.
ㅇ 지급결제시스템은 경제주체들의 채권․채무 관계를 해소함으로써 원활한 경제활동을 뒷받침해주는 금융시스템의 근간이며, 무엇보다 안전성이 중요합니다. 이 때문에 대부분 국가에서 독점적 발권력을 가진 중앙은행이 운영․관리하고 있습니다.
ㅇ 전금법 개정안은 이러한 지급결제시스템을 빅테크 업체들의 거래정보 수집에 이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구축해 놓은 지급결제시스템을 소비자 감시에 동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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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