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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시장, 다른 전쟁”…증권사·운용사 CEO의 ‘동상이몽’

김희일 기자

heuyil@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4-15 11:46 최종수정 : 2026-04-15 16:05

ETF로 자금 쏠림…플랫폼 vs 상품 ‘주도권 이동’
고객 잡은 증권사, 돈 쫓는 운용사…게임의 룰 바뀌어

금융투자업계의 권력이 ‘상품’에서 ‘플랫폼’으로 넘어갔다. 경쟁이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닌 “어디에 머물게 하느냐”로 가며  계좌·거래 데이터와 사용자 경험(UX)을 동시에 장악한 증권사가 플랫폼 경쟁의 주도권을 쥐어가고 있다.  사진=여의도 증권가 정경

금융투자업계의 권력이 ‘상품’에서 ‘플랫폼’으로 넘어갔다. 경쟁이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닌 “어디에 머물게 하느냐”로 가며 계좌·거래 데이터와 사용자 경험(UX)을 동시에 장악한 증권사가 플랫폼 경쟁의 주도권을 쥐어가고 있다. 사진=여의도 증권가 정경

[한국금융신문 김희일 기자] 금융투자업계의 권력은 ‘상품’에서 ‘플랫폼’으로 넘어갔다. 경쟁은 이제 “무엇을 만드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머물게 하느냐”다. 계좌·거래 데이터와 사용자 경험(UX)을 동시에 장악한 증권사가 플랫폼 경쟁의 주도권을 쥐는 구조다.

같은 시장을 바라보면서도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전혀 다른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금의 흐름이 ‘상품’에서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시장의 권력 구조 자체가 재편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시장에서 플랫폼의 중심축은 증권사로 빠르게 기울고 있다.

과거에는 어떤 펀드를 만드느냐가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개인 투자자 자금이 ETF로 빠르게 이동하면서 판이 완전히 달라졌다.

ETF는 더 이상 상품이 아니라, 증권사와 운용사가 동시에 주도권을 잡기 위해 경쟁하는 ‘접점 시장’이 됐다.

실제 ETF 시장에는 최근 몇 년간 연간 수십조 원 규모의 자금이 유입된 반면, 공모펀드에서는 수조 원대 자금 이탈이 이어지고 있다. 2019년 말 50조원 수준이던 ETF 순자산총액은 2023년 6월 100조원을 돌파한 데 이어, 2026년 3월 기준 380조~400조원 규모로 3~4년 만에 약 4배 이상 성장했다.

반면 공모펀드 시장의 성장은 사실상 ETF가 견인하고 있다. 2025년 기준 공모펀드 순자산 증가분의 약 72%가 ETF에서 발생할 정도로 쏠림 현상이 심화됐다. 이는 단순한 상품 성장이라기보다, 투자자가 상품을 ‘고르는 방식’ 자체가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변화는 금융투자업의 중심축을 ‘상품 제조’에서 ‘고객 접점’으로 이동시키고 있다. 투자자들은 더 이상 상품을 찾아다니지 않는다. 증권사 플랫폼 안에서 직접 선택한다. 플랫폼은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선택이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결국 수익은 거래가 아니라 ‘선택의 순간’을 장악한 곳에서 발생한다. 이는 단순한 채널 변화가 아니라, 금융투자업의 ‘권력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고객을 쥔 증권사 vs 고객을 찾아야 하는 운용사, 양측 CEO의 고민은 출발점부터 다르다. 이미 확보한 고객을 얼마나 오래, 깊게 붙잡아 둘 수 있느냐에 집중돼 있다.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연금계좌, 종합자산관리(WM), 랩·일임 서비스까지 고객 자산이 머무는 플랫폼을 확장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다. 최근에는 ETF 거래 증가에 맞춰 AP·LP(유동성 공급) 기능까지 강화하며 시장 인프라 영역으로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

한 증권사 고위 관계자는 “이제 경쟁은 수수료가 아니라 고객의 체류 시간”이라며 “얼마나 자주, 오래 앱 안에 머무느냐가 수익을 좌우하는 구조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반면, 자산운용사 CEO의 고민은 정반대다. 고객 접점이 없는 구조에서 자금을 어떻게 끌어올 것인가가 생존 문제다. 상품을 만들어도 판매 채널을 증권사와 은행에 의존해야 하는 구조적 한계 때문이다. 이에 따라 운용사들은 ▲ETF 특화 ▲액티브 ETF 확대 ▲연기금·퇴직연금 중심 OCIO ▲기관 자금 운용 강화 등으로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중소형 운용사를 중심으로 ‘테마 집중’과 ‘차별화된 액티브 전략’ 중심의 생존 전략이 빠르게 재편되는 모습이다.

ETF, 협력인가 전쟁인가

이 같은 긴장은 ETF 시장에서 가장 선명하게 드러난다. ETF는 상품이면서 동시에 플랫폼 위에서 거래되는 구조다. 양측이 같은 무기를 들고 서로를 겨누는 전장이 된 셈이다. ETF는 협력 구조를 기반으로 하지만, 수익 배분을 둘러싼 경쟁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존형 경쟁 시장’이다. 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따라 수익 구조 자체가 달라진다. 이는 자금이 ‘상품’이 아니라 ‘거래가 일어나는 자리’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ETF 거래 증가가 브로커리지 수익과 고객 유입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동시에 ETF를 통해 운용사의 브랜드가 강화되고 투자자 영향력이 커지는 점은 부담이다. 운용사 역시 ETF를 성장 돌파구로 보고 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시장은 이미 상위 운용사 중심으로 재편돼 신규 진입과 점유율 확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요약하면, 증권사는 ‘고객을 붙잡는 싸움’, 운용사는 ‘자금을 끌어오는 싸움’을 하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ETF는 증권사 플랫폼을 키우는 핵심 동력이면서도 동시에 운용사의 존재감을 키워주는 양날의 검”이라며 “협력과 경쟁이 동시에 이뤄지는 구조”라고 말했다. 권력은 ‘상품’에서 ‘길’로 이동 과거에는 운용사가 상품을 만들고 증권사가 이를 판매했다.

그러나 이제는 증권사 플랫폼 안에서 고객이 직접 ETF를 선택한다. 권력은 더 이상 상품을 만든 자가 아니라, ‘고객이 지나가는 길’을 쥔 곳으로 이동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경쟁 구도의 변화가 아니라 금융투자업의 작동 방식 자체를 바꾸는 변화다. 모바일 투자 환경 확산과 ETF 거래 비용 하락, 개인 투자자의 직접 투자 확대가 맞물리면서 이 변화가 가속화됐다.

증권사는 플랫폼을 중심으로 고객 데이터를 축적하며 자산관리·연금·투자를 아우르는 종합 금융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반면 운용사는 특정 전략 경쟁력과 플랫폼과의 협업 여부가 성패를 가르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에서 “어디에 설 것인가”로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CEO의 질문은 완전히 달라지고 있다. 증권사는 “고객을 어떻게 묶어둘 것인가”, 운용사는 “자금을 어떻게 끌어올 것인가”를 고민한다. 같은 시장을 보면서도 전혀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를 구조적 변화로 본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이제 중요한 것은 상품 성과뿐 아니라, 그 상품이 어떤 플랫폼 위에 올라가 있느냐”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현재를 과도기로 진단한다. 상품 경쟁의 시대가 저물고, 플랫폼 위에서 상품이 선택되는 구조로 넘어가는 전환기라는 분석이다.

결론: 결국 하나의 질문

지금 금융투자업계의 본질적 질문은 하나다. “누가 돈이 흐르는 길을 지배할 것인가.” 길을 만든 자가 아니라, 그 길 위에 고객을 묶어둔 자가 이긴다. 그리고 그 길은 점점 더 좁아지며, 특정 플랫폼으로 집중되고 있다.

결국 시장의 승자는 상품을 만든 곳이 아니라, 돈이 흐르는 ‘길’을 설계하고 통제한 곳이다.

같은 시장에서 서로 다른 전쟁을 벌이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CEO들의 동상이몽은 이제 막 시작됐다. 그리고 그 승부는 ‘상품’이 아니라 ‘길’을 누가 쥐느냐에서 갈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 길은 이미 일부 플랫폼으로 빠르게 쏠리고 있다.

다만 장기 자금과 상품 설계 경쟁력에서는 여전히 운용사의 영향력이 유지되고 있다는 점에서 승부는 아직 진행형이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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