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물리적 망분리와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절차가 맞물리며, 같은 금융권 내에서도 은행과 은행계 금융지주가 상대적으로 불리한 구조가 형성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당국이 지속적으로 규제 합리화를 추진하고 있지만, 현업이 체감하는 규제 완화 속도는 빠르지 않다는 지적이다.
생성형 AI, ‘서비스 단위 승인’ 구조의 한계
현재 금융회사가 생성형 AI를 활용한 서비스를 도입하려면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 절차가 서비스 단위로 개별 심사된다는 점이다.혁신금융서비스는 신청 후 심사기간이 최소 30일이며, 보완 요청이 있을 경우 최대 120일까지 늘어날 수 있다. 게다가 상시 접수가 아닌 분기별 공고 방식이어서 실제 도입까지는 수개월이 소요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생성형 AI 서비스가 모델 개선과 기능 업데이트를 반복하는 ‘동적 구조’라는 점을 고려하면, 현행 제도는 기술 속도를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다.
실제로 금융권에서는 생성형 AI 기반 상담, 투자 추천, 내부 업무 자동화 등 다양한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개별 승인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당국의 인력난과 심사 절차 문제 등이 겹치면서 실제 혁신을 불러올 수 있는 건에 대한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이 늦어지고 있다"며 "규제 완화에 대한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전했다.
물리적 망분리, AI·클라우드와 정면 충돌
이 같은 병목현상의 원인은 물리적 망분리를 고수하는 현행 기조에 있다.전자금융감독규정은 내부망과 외부망 분리를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특히 전산센터는 외부망과의 물리적 분리가 요구된다.
문제는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서비스 대부분이 외부망 기반으로 작동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금융권이 도입하려는 주요 AI 서비스는 클라우드 기반 모델 호출, 외부 데이터 학습, SaaS 형태 협업툴 활용 등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물리적 망분리 환경에서는 이러한 구조 자체가 제한되기 때문에, 결국 금융사는 생성형 AI 활용과 고도화를 위한 기반 모두를 혁신금융서비스 형태로 우회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사례를 보면 은행권의 클라우드·SaaS 활용은 대부분 '내부망에서의 제한적 이용' 형태로 설계됐고, 지난해 초까지도 클라우드 협업툴(M365, Copilot) 내부망 이용을 위한 혁신금융서비스 신청이 계속됐다.
길은 뚫려있지만 다수의 방지턱과 속도 제한으로 원활한 운행이 어려운 상태인 것이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올해 1월 SaaS가 망분리 예외사유로 지정되긴 했지만 은행들은 지난해 대부분 관련 서비스에 대한 혁신금융 인가를 받아둔 상태"라며 "실질적인 지원을 위해서는 생성형 AI에 대한 자율성 확대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같은 규제, 다른 결과…은행권 ‘구조적 불리’
이러한 규제가 업권별로 동일하게 적용되지만, 실제 영향은 크게 다르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법적으로 망분리 규제는 은행과 증권 등 전 금융권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나 업무 구조와 감독 관행 차이로 인해 체감 강도는 다르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먼저 은행과 은행계 지주의 경우 ▲계정계 중심 구조 ▲지급결제 시스템 운영 ▲대규모 고객정보 보유 등 금융시스템 안정성과 직결되는 역할을 수행하기에 감독당국은 은행에 대해 더욱 엄격한 전산 안정성과 보안 수준을 요구한다.
반면 증권사는 시장 데이터·온라인 기반의 거래를 중심으로 하는 특성상 외부망 활용이 불가피하다.
결국 같은 규제 하에서도 외부시장 연동이 필수적인 증권업권은 예외 적용이 상대적으로 넓게 인정되지만, 지급결제와 고객정보 보호가 핵심인 은행은 보수적으로 적용되면서 업권 간 체감 규제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혁신금융서비스 지정 사례에서도 차이가 나타난다.
은행권은 내부망 기반 협업툴과 상담 중심 AI에 집중된 반면, 증권업권은 외부 시장 데이터를 활용한 투자정보 제공과 트레이딩 지원 등 보다 확장된 형태의 AI 활용이 두드러진다.
동일한 망분리 규제를 적용받고 있음에도 서비스 구조 차이가 기술 활용 격차로 이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강력한 생산적 금융·자본시장 육성 기조에 따라 투자 관련서비스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지면서, 이 같은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투자상품은 실시간 시장 데이터와 외부 연동이 필수적인데, 증권사는 이미 외부망 기반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반면 물리적 망분리 구조에서는 ▲데이터 연계 ▲실시간 처리 ▲AI 기반 분석 등의 구현 난이도가 크게 높아진다.
금융지주 차원에서는 슈퍼앱을 통해 계열 증권사와 연계하므로 이를 극복할 수 있지만, 그룹계열이 아닌 증권사와도 경쟁을 하게 된 은행 입장에서는 어려움이 커진다는 것이다.
'차단'에서 ‘통제'로 정책 기조 전환 노력
금융당국도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제도 개선에 나섰다.최근 금융위원회는 물리적 망분리 중심 정책을 재검토하고, 데이터 중요도와 접근 권한에 따라 통제하는 논리적 망분리 도입을 검토 중인 거으로 알려졌다.
논리적 망분리란 ▲가상화 기반 접근 통제 ▲등급(중요도)별 데이터 등급별 관리 ▲외부 AI 활용 조건부 허용 등을 통해 보안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이다.
이는 기존의 망을 '차단하는' 방식에서 접근을 '통제, 관리하는' 방식으로의 전환을 의미한다.
정책 방향도 자율성을 높이되 책임을 더하는 기조로 개선할 방침이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체감도가 낮다는 평가다.
서비스별 개별 승인 구조와 제한적인 예외 적용, 긴 심사 기간이 유지되는 한, 실질적인 혁신으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AI는 기능이 계속 바뀌는 기술인데, 규제는 한 번 승인받은 형태를 전제로 한다”며 “결국 시장 대응 속도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며 "생성형 AI에 대한 포괄적 규제 합리화가 절실하다"고 전했다.
김성훈 한국금융신문 기자 voicer@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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