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555.8조원의 대규모 예산을 편성한 가운데 국채 발행 규모도 역대 최고다.
올해 4번에 달하는 추가경정예산을 실시하면서 국고채 발행 규모는 174.5조원으로 급증했다. 내년엔 이보다 1.9조원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작년 말 정부가 밝혔던 2020년 국고채 발행규모는 130.2조원이었다. 이는 2019년의 발행규모 101.7조원을 크게 웃도는 것이어서 채권시장 관계자들에게 긴장감을 줬다.
하지만 추경을 거치면서 이 규모가 45조원 가까이 더 늘어났다.
올해 이같은 역대급 규모의 국채 물량을 소화한 가운데 내년엔 이보다 더 많은 물량을 소화해야 한다.
내년에도 추경이 편성될 가능성이 있는 가운데 일단 본예산 기준만으로도 사상 최대의 국채 발행이다. 채권투자자들은 일단 물량이 만만치 않다는 점과 불확실한 추경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문재인 정부의 재정정책 패턴과 지금의 분위기를 감안할 때 2021년이 시작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추경 얘기가 나올 것으로 본다"면서 "아울러 상반기에 예산을 집중적으로 집행하는 만큼 추경은 시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국고2년 발행과 비중 조절..국채 발행당국 "내년에도 견조한 외국인 수요와 보험권 수요 자신"
기재부는 내년에 최초로 발행되는 2년물 발행규모를 약 8~9% 수준으로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국고2년물이 연간 14~16조원 수준에서 발행되는 것이다.
국고2년 발행에 따라 다른 만기물들의 비중 조정은 불가피하다.
이런 가운데 기재부는 시장수요를 감안해 5~20년물 비중을 탄력적으로 조절하고 30년물 이상 비중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예컨대 장기물 그룹은 보험사의 견조한 수요 등을 감안해 관리목표 상단(32~33%)을 타게팅한다고 밝혔다. 50년물은 올해와 마찬가지로 연중 4~5조원 내외로 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물가채 발행을 비경쟁인수 방식에서 경쟁입찰 방식으로 변경(낙찰금리 차등구간, 인수실적 인정구간은 10년물과 동일)한다.
짝수달은 경쟁입찰로 발행하고 홀수달은 교환 발행을 할 예정이다. 월간 약 1천억원 수준으로 발행한다는 방침이다.
기재부는 또 내년 외국인, 보험, 증권사 등을 중심으로 국고채에 대한 안정적인 수요가 이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기재부는 "외국인은 내년에도 안정적인 펀더멘털 대비 높은 수익률 때문에 한국 채권에 관심을 가질 것"이라며 "중장기 투자자 중심의 채권 자금 유입이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보험사의 경우 IFRS17 대응을 위한 초장기물 수요, 기보유 단기채권의 초장기물로의 교체 수요 등으로 장기물에 대한 수요를 이어갈 것으로 봤다.
증권사는 유동자금 확대 등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지속할 것으로 관측했다.
반면 은행·연기금·자산운용사의 수요 확대는 제한될 것으로 내다봤다. 은행의 경우 공사채 대비 낮은 국고채 수익률이 투자를 제약할 것으로 봤다.
연기금은 해외투자 확대와 국내 채권투자 축소 등 자산배분 방향에 따라 투자가 감소할 것으로 봤다.
자산운용사는 위험자산 선호, 자금 여력 제한 등으로 올해보다 완만하게 투자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 정부의 장기물 발행 축소와 부담 완화
정부가 물량 부담 완화를 위해 국고채 라인업에 2년짜리를 신설하면서 향후 5~20년물 발행 비중은 줄어든다.
30년과 같은 초장기 구간은 보험권 수요 등을 감안해 비중 조정을 최소화하기로 했다. 또 궁극적으로 20년 구간은 30년과 통합될 수 있다는 인식도 강한 편이어서 결국 비중 조절은 10년에 우호적이란 진단이 가능했다.
문홍철 DB금융투자 연구원은 "국고 2년물 증가분은 10~20년물이 대부분 상쇄해 줄 것"이라며 "20년물이 결국 30년과 통합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는 점, 국가부채=민간자산이므로 5년 단기물은 정부 부채가 늘어날수록 수요가 같이 늘어나는 구간에 해당되므로 굳이 줄일 이유가 적은 점, 기재부가 30년물 이상은 장투기관의 수요가 탄탄할 것이라고 여기는 점 등을 감안할 때 이렇게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추구하는 국채발행계획의 관점에서 볼 때 10년이 우호적인 반면 초장기 구간인 30년은 상대적으로 비우호적인 것으로 봤다.
문 연구원은 "국고20년이 줄기는 하지만 보험사 입장에서 20년은 애초에 듀레이션 확대 목적상 매입하기에 애매한 영역이었다"면서 "장기투자기관의 해외채 투자 상대 매력도가 높아진 점, 자산듀레이션 확대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긴 점, IFRS17 도입이 꾸준히 연기되는 점 등을 감안할 때 10년 대비 30년 스프레드의 기조적인 약세 흐름이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이런 가운데 국고2년 등장과 통안3년 발행 가능성 등으로 단기 구간은 부담이 커질 수 있다는 진단도 엿보인다.
B 증권사의 한 딜러는 "국고2년과 3년, 통안 2년과 3년이 같이 생길 수 있는 만큼 커브 플래트닝 구도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C 증권사 딜러는 "정부는 3-10년 커브는 서는 게 불편하고, 10-30년은 붙는 것을 불편해 하고 있다"면서 "이에 따라 5년, 10년, 20년 구간 발행을 줄이고, 2년을 늘리면서 30년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딜러는 그러나 내년에 전반적으로 국채발행 물량이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은 우려하면서 정부의 정책 기조를 비판했다.
그는 "문제는 내년 시작하자 마자 또 정부가 추경을 하자고 할 것 같다는 사실"이라며 "이 정부는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외쳤으나 (아파트 폭등 등으로) 빈부격차를 오히려 역대 최대로 벌려 놓았다. 남긴 건 희대의 부채 뿐인데, 모든 상황에 대해 핑계를 대고 있다"고 비판했다.
■ 장기물 비중 축소의 한계
이런 가운데 장기물 비중 축소에 따른 부담이 완화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신동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우선 "국고2년물은 15조원 내외로 발행되며, 3년물(+1.4조원), 30년물 이상(+1.0조원) 발행이 올해보다 소폭 증가하고 5년물(-6.1조원), 10년물(-6.0조원), 20년물(-2.0조원) 발행은 올해보다 감소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그는 그러나 장기물 물량 부담이 완화되는 데는 한계를 보이면서 커브가 스티프닝 압력을 나타낼 수 있다고 관측했다. 정부가 발행 물량을 탄력적으로 조정할 계획이지만 내년도 20년물 이상 발행 규모는 57.4조원으로 올해와 크게 변화가 없는 데다 정부의 수요 확충 노력을 감안하더라도 2019년 대비 대부분 만기의 발행 규모가 급증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특히 정부의 내년도 상반기 재정의 70% 이상 집행 계획 등을 감안하면 내년도 상반기 국고채 발행 규모는 올해(87.1 조원)보다 크게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신 연구원은 "정부의 2년물 신규 발행으로 장기물 발행 부담이 완화됐지만 한은의 뒷받침이 없다면 근본적 물량 부담의 해소가 어렵다"면서 "대규모 국고채 발행에 따른 마찰적 상승, 경기회복 등에 따른 악화될 투자 환경을 고려할 때 중장기적 금리 상승과 커브 스티프닝 압력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부가 10년 구간 국채 물량 등을 줄여주더라도 추경 얘기가 빨리 나올 것 같은 분위기 등으로 물량 부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평가들도 적지 않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지난주 정부는 2021년 상반기 예산 배정을 72.4%로 확정했다"면서 "하반기 급격한 정부지출 축소를 피하기 위해 추경 예산 편성은 사실상 기정 사실로 여겨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를 감안하면 2년물 발행과 초장기물 발행 일부 축소로 장기채 발행 부담을 일소하기는 여전히 어렵다"면서 "특히 최근 스왑 포인트 (+) 반전과 확대 전망을 감안하면 초장기채 수요 기관의 해외채권대체 효과 역시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아직 수급 불균형 우려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며 여전히 장기채 투자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을 권한다"고 했다.
■ 내년부터 물가채 경쟁입찰 발행
내년 물가채 발행에 경쟁 입찰이 도입되는 점도 주목을 끌고 있다.
물가채 전망은 물가 상승률이 얼마나 빨라질지, 사람들의 관심도가 늘어날지 등에 달려 있다.
D 증권사의 한 중개인은 "물가채 경쟁입찰을 두고는 의견들이 조금 갈리는 듯하다"면서 "결국 물가 상승률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제도 변경을 우호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늘어난 듯하다"고 말했다.
문홍철 DB금투 연구원은 "물가채 입찰을 경쟁방식으로 바꾼다는 점은 우호적"이라며 "물가채는 지금까지 입찰 특성상 시장의 관심을 받을 때는 발행이 늘어나서 제값을 못 받고, 관심이 없을 때는 발행과 유동성이 줄어드는 등 적정 가치를 받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밝혔다.
그는 "물가채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근본적으로 유동성이 부족하고 시장 상황에 따라 그 변화 정도가 큰 특성이 있는데 지금까지의 입찰 방식이 이를 더욱 키우는 방향으로 작동했던 것"이라며 "반면 내년부터는 물가채도 경쟁입찰 방식을 도입해 그동안의 물량 관련 우려는 일정부분 완화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물가채 '경쟁' 입찰 자체보다 발행 물가 움직임에 따른 수요의 크기가 관건이란 평가도 보인다.
한 채권 딜러는 "물가채 발행 방식이 바뀌지만 물가가 어떻게 나오느냐가 중요하다"면서 "물량 자체는 부담이 없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쟁입찰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수요 측면이 어떻게 되느냐가 관건"이라며 "경쟁입찰을 한들 PD들이 받고 보유하는 게 아니니 사줄 곳이 아니면 매력도를 높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수급적으로 물가채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면이 있고 추경을 하더라도 물가채가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30년물을 월에 1.5조원 발행하다가 3조원씩 발행하는 시대가 된 상황에서 물가채 1천억원씩 발행하는 것을 유지하는 것이니 체감 인플레이션이 CPI에 반영된다면 물가채는 무조건 담아야 한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