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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철의 정책해설] 재정준칙이 나오기까지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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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20-10-07 11:53

기획재정부가 ‘재정준칙 도입방안’을 내놓았다. 정부가 재정준칙을 마련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목표 달성을 하지 못했을 때 제재도 없다. 정부도 처음부터 이런 형태의 준칙을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한국형 재정준칙 도입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재정준칙 발표

정부가 사상 처음으로 국가채무를 안정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재정준칙’을 마련했다. 내년부터 5년간 유예한뒤 2025년부터 국가채무를 국내총생산대비 60% 이하로 유지하기로 했다. 또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3% 이하로 묶기로 했다.

EU가 마스트리히트 조약 당시 내세웠던 재정 건전화 조건이 국가채무는 GDP 대비 60% 이내, 재정수지 적자는 GDP 대비 3%였다. 이를 준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국가채무비율과 통합재정수지 2가지 기준 중 한 가지를 충족하면 나머지 한 가지는 충족하지 않아도 된다. 즉, 지표 하나가 기준치를 초과하더라도 다른 지표가 기준치 이하라면 재정준칙은 충족된다. 법 개정 사항이 아니다 보니 국회 심의나 의결 없이 정부가 알아서 해당 기준을 바꿀 수 있다.

기재부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에는 기본 원칙만 담고, 구체적인 한도는 모두 시행령에 규정하고, 5년마다 바꿀 수 있도록 했다. 이 준칙은 2025년 회계연도부터 적용하고 재정준칙 한도를 시행령에 위임하며 5년마다 재검토한다.

제기되는 비판

재정준칙에는 많은 비판이 제기된다. 사실 IMF의 재정준칙의 원칙에 따르면 우리나라가 발표한 것은 재정준칙이 아니다. 흔히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것은 기준을 법에 규정하지 않은 점과 유예기간을 둬 현 정부의 면죄부로서 기능할 여지가 크다는 점이다.

원래 재정준칙을 만들 때 필요한 것은 법적 토대와 총량적 재정목표를 정하는 일이고 준칙을 지키지 못했을 때의 제재 규정이다. 하지만 정부가 발표한 재정준칙에는 아무것도 없다. 구속력이 없어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어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그나마 5년 뒤로 미루어뒀다.

구멍도 너무 많다. 경기침체, 대량 실업, 남북관계 변화 등의 상황이 일어나면 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경기침체와 대량 실업의 기준은 없다. 이제까지 정부가 재정관리의 척도로 삼은 관리재정수지가 아닌 통합재정수지를 기준으로 설정한 것 역시 문제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실제 살림살이를 나타내는 지표이고, 통합재정수지는 여기에 국민연금·건강보험 등 사회보장성 기금 수지를 합친 것이다. 국가채무비율이 급속도로 악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재정준칙 시행 시기를 2025년으로 잡았다는 점도 지적된다. 당연히 현 정부는 재정준칙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

재정준칙

재정준칙은 원칙 없는 정부 재정관리를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다. 정부가 국가채무비율 등 재정 건전성 주요 지표의 한도를 정해 이를 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을 뜻한다. 많은 나라가 과도한 국가 빚 증대를 막기 위해 재정준칙을 마련해 운용한다. 정부가 무분별하게 재정을 운용하여 부채비율이 급증하는 것을 막는 장치다. 전 세계 92개국이 시행하고 있다.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전 세계 85개 정부가 재정준칙 제도를 도입했다. 국회가 법으로 연간 재정적자 규모를 제한해놓은 것이다.

독일은 신규 부채는 GDP의 0.35%로 억제하게끔 법으로 정했다. EU 회원국들도 3%를 넘지 못하는 규정이 있다. 영국은 공공부채는 전년도 이하 수준에서 늘리도록 하고, 스웨덴은 매년 GDP의 1% 이상 흑자를 내라고 못 박아 놓고 있다. OECD 국가 중에서는 우리나라와 터키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 재정준칙을 가동하고 있다.

법제화 추진의 과거

사실 재정준칙을 제정하는 일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2016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 이내, 국가채무는 45% 이내로 관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법제화한 재정건전화법 제정안을 국회에 냈다. 재정 수반 법률에 대한 페이-고(Pay-go, 재원 확보가 전제되지 않는 신규 의무지출 도입 금지)제도가 보다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법안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당시 ‘특별법’으로 제정하겠다고 했다. 물론 제정안은 국회에서 처리되지 않았다. ‘특별법’으로 할 경우 부담이 너무 커진다는 이유에서였다.

김대중 정부 시절에도 적자재정에서 조기에 벗어나기 위한 "재정건전화 조기 회복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됐었다.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요건을 극도로 제한해서 정부의 지출요인을 최대한 억제하고 예산을 집행하면서 잉여금이 발생하는 경우에는 우선 국가 채무를 갚는 데 쓴다는 것이 골자였다. 물론 이 역시 처리되지 않았다.

재정준칙이 나오기까지

허점이 많은 재정준칙이지만 이것도 순조롭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이번에도 정부는 당초 특별법으로 제정을 추진했었다. 특별법은 일반법에 앞선 상위법적 성격을 지닌다. 그러나 역시 부담스러웠다. 발표하는 시기도 정부의 당초 계획은 8월 말에 제출한다는 것이었다.

홍남기닫기홍남기기사 모아보기 경제부총리는 지난 6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재정준칙에 대해선 8월께 국회에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할 때 같이 제출하도록 하겠다”고 예고했었다. 발표가 미뤄진 것은 당정협의에서 좀처럼 결론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당정 협의 자리에서 줄기차게 기재부에 “재정준칙 발표를 서두르지 말라”고 요구했다. 기재부는 이미 발표한 만큼 계속 미루기는 힘들다는 취지의 답을 했고 미루고 미루면서 타협하고 양보한 끝에 나온 것이 발표된 안이다.

타협 끝에 특별법은 시행령에 위임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대통령령으로 정하면 국무회의를 거쳐 제정, 공포하면 되기 때문에 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고 그때그때 바꿀 수 있다. 또 제재 조항은 사라지고 대신 예외 조항이 들어갔으며, 시행 시기도 5년 뒤로 미루게 됐다.

국회 처리 전망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그나마 이 수준의 재정준칙이라도 처리된다면 성과가 될 것이라고 믿는다. 반대하는 여당과 미지근했던 청와대의 반응을 생각하면 이 정도의 준칙을 법제화는 것도 성과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나마 국회 처리 전망이 밝다고는 하기 어렵다. 타협 끝에 나온 허술한 재정준칙이지만 여당은 기본적으로 지금도 재정준칙 도입 자체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

정부의 재정 투입이 일정 부분 불가피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 19) 확산 국면에서 재정준칙을 만든다면 재정의 경직성이 커지고 불필요한 사회적 논란이 야기될 수 있다는 이유다. 장기적으로는 필요한 일이라 해도 지금 시점에 준칙을 만들면 재정의 경직성만 커지고 불필요한 논란도 생길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야당은 다른 의미에서 반대한다. 야당은 더 엄격한 내용에 강제력까지 담아 국가채무비율 적자 GDP 45% 이하, 관리재정수지 GDP 2% 이하 유지 등의 의무를 규정한 법안을 발의했다. 지금으로서는 관련 법 처리는 마냥 늦어질 가능성이 높다. 내년 중 본격적 국회 논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데, 내년 초에는 지방선거가 있고 그리고 다시 1년 뒤에는 대선이다. 2017년 현 정부 출범 당시 국가채무가 660조2000억 원이었다. 그러나 현 정부의 집권 마지막 해인 2022년에는 1070조 원이 넘을 전망이다.



김상철 경제칼럼니스트/한국경제언론인포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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