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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민 칼럼) 엇나간 인재 마케팅

장태민

기사입력 : 2020-02-25 10:52 최종수정 : 2020-02-2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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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 2007~2008년 코스피지수 흐름, 출처: 코스콤 CHE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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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금융신문 장태민 기자] 최근 오랜기간 금융 관련 업무를 해 온 한 친구가 대뜸 흥분하면서 특정인의 거짓말을 거론했다.

친구는 각 정당이 선거를 앞두고 인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인물들에 대한 과장 광고를 남발했다고 주장했다. 이 과정에서 어떤 언론도 이를 제대로 감시하지 않고 있다면서 분노를 표시했다.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4·15 총선을 앞두고 여당이든 야당이든 인재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기본적인 레퓨테이션 체크(평판 점검)도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인재의 이력..거짓말에 대해 관대한 한국

친구는 인재를 영입하는 정당은 국민을 무시하면서 '감동적인' 혹은 '그럴 듯한' 스토리만 내세워 능력과 도덕성이 의심스러운 사람들은 인재랍시고 떳떳하게 내세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했다.

특정 인물에 관한 허위 사실이 진실로 둔갑하더라도 웬만하면 신경을 쓰지 않는 사회 분위기를 개탄했다.

21세기가 도래한지 20년이나 지났지만, 인간의 도덕성은 전혀 진화하지 않고 있어 선량한 시민인 친구의 심기를 건드린 듯했다.

어쩌면 인간은 진화할수록 도덕성 문제에서 초연해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적어도 한반도에 사는 인류의 도덕성에 대한 기준은 날로 가벼워지고 있는 중이라는 게 친구의 문화인류학적 분석이었다.

친구가 불편해 한 사람은 미래에셋대우 사장 출신의 홍성국씨였다. 그와 무슨 악감정이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집권 여당이 힘들게 영입한 대표적인 '경제 관련 인재'에 대한 소개가 거슬렸던 모양이었다.

친구가 금융 바닥과 관련한 일을 했던 사람이다 보니 홍 전 사장에 대해 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사람에 대한 평가가 다양할 수 있는 만큼 주관적인 영역을 문제 삼는 것은 옳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사람에 대한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 일은 난해한 작업이다. 또 주변에서 거론하는 하나의 '의견 제시'를 진실인양 호도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친구의 '진지한' 문제 제기에 나 역시 말려들고 말았다. 그리고 조금씩 개운치 않은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거짓말에 대해 관대한 한국사회에 대한 작은 분노였다.

■ 당신은 알고 있었는가..한국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정확히 예상한 사람을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영입한 17호 인재는 홍성국 전 미래에셋대우 사장이었다.

친구가 문제로 삼은 대목은 민주당이 이달 6일 보도자료를 통해 "홍성국 전 사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찌감치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는 내용이었다.

친구는 이 대목을 '거짓말'이라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가 맞닥뜨린 2번째 큰 경제 위기라고 할 만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 홍 전 사장은 대우증권에서 리서치 센터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로 말을 하는 사람들이며, 당시 홍 센터장은 주식을 사라는 매수 주장을 펼치고 있었다.

2007년 11월 28일 펴낸 '2008년 증시전망'에서 홍 센터장은 2008년 주가가 상저하고를 보이면서 1800~2400포인트에서 등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1800대 초반선에서 놀고 있었다. 홍 센터장의 전망은 주가의 대세상승 쪽에 가까웠던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2008년 주가는 상저하고가 아니고 상고하저였다. 코스피지수는 2008년 2분기부터 하락 전환했고 9월엔 그 유명한 리먼 브라더스의 패망과 함께 시장이 그로기에 몰렸다. 코스피지수는 그해 10월 27일엔 장중 900선 아래로 폭락하면서 투자자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기도 했다.

홍 센터장의 조언에 따라 주식 비중을 늘렸던 사람들 중엔 패가망신한 사람도 생길 법한 상황이었다. 당시 홍 센터장이 위기가 본격화하기 전 경고를 내놓은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홍 센터장은 리먼사태 3개월 전인 2008년 6월 "경기가 다소 둔화된다고 하더라도 상장기업의 이익이 점차 늘어나 주가를 끌어올릴 것"이라며 하반기 '매수'를 조언했다. 그는 위기 발발 3개월 전 주가지수 2200포인트 가능성을 거론하던 사람이었다. 주가가 1650선을 저점으로 상승 전환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친구는 주식시장의 흐름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으며, 어느 누구도 위기를 제대로 감지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고 했다.

사실 리먼 사태 이전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문제가 생겨 '정말 위기가 도래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심스런 얘기들은 한 마디씩 했다. 당시 내가 만났던 사람들도 술 자리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하지만 말 그대로 글로벌 금융위기가 곧 닥칠 것으로 예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만약 홍 전 사장이 '예측했다는 사실의 근거'로 아는 사람들을 따로 만나 '위기가 닥친다고 얘기했어'라고 말 할 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가 이런 말을 한다면, 이는 다수 투자자들에 대한 배신 행위가 된다. 공식적인 보고서에선 대세 상승을 외치고 친한 사람들에게만 '위기가 곧 닥치니 대비하라'고 말한다면 누가 납득하겠는가.

만약 어떤 신문사의 사회부 기자가 'A가 B를 폭행했다'라고 기사를 작성한 뒤 술자리에선 '사실은 A가 B에게 얻어맞었어'라고 한다면 이 기자는 면벽수도 과정을 거친 뒤 다른 직업을 구해야 할 것이다.

■ 민주당의 '인재 홍보'와 증권사 사장의 '멋진 포부'

민주당의 21대 총선 17번째 영입인사 홍성국씨에 대한 소개는 다음과 같았다.

"한국 1세대 증권맨 출신으로, 공채 평사원에서 시작해 증권사 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증권, 금융 등 실물 경제는 물론 세계경제 흐름과 예측분석에 능통한 홍성국 전 사장은 민주당이 영입하는 두 번째 경제 전문가다."

그러면서 "홍성국 전 사장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찌감치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고 한껏 치켜올렸다.

보도자료에 기재된 홍성국 전 사장의 포부도 멋이 있었다.

"현실의 치열함을 도외시한 담론은 허무합니다. 한국의 깨어있는 시민들은 이미 엄청난 지적 진보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모두의 참여가 필요합니다. 실천을 통해서 배우고 느끼며, 미래를 바꾸려는 살아있는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것이 실천하는 참 진보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민주당은 홍성국씨를 '미래학자'로 치켜세우면서 "이제 홍성국은 샐러리맨 신화를 넘어 한국경제의 새로운 신화를 꿈꾼다"고 썼다.

이 증권업계의 미래학자는 2008년 금융위기 뿐만 아니라 현대 한국경제사의 최대 위기도 예상한 것으로 기술했다.

민주당 보도자료의 '증권계의 미래학자' 파트에 적혀 있던 홍 전 사장에 대한 소개 첫 부분은 다음과 같다.

"세간에서 홍성국을 ‘증권계 미래학자’라고 부릅니다. 늘 남다른 시각으로 경제를 전망해왔기 때문입니다. 홍성국은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예언했습니다."

■ 마케팅 필요성 크다고 중요 사실 왜곡해선 안돼

홍성국 전 사장의 역량을 문제삼을 생각은 없다.

다만 친구의 얘기 대로 그가 했다는 '위기 예측'에 대해선 문제를 삼고 싶다. 아직 대뇌피질의 감가상각이 덜 이뤄져 2008년에 대한 기억도 남아 있다.

그는 2007년에 작성한 2008년 주식 전망에서 주가지수 상승을 전망했으며, 리먼 브라더스 패망 3개월 전에도 저가매수를 주문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언론들은 대부분 민주당의 보도자료를 의심없이 받아들였다. 수 많은 기자들이 쓴 기사들엔 '홍 전 사장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일찌감치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는 내용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기자가 이 내용의 진실성을 담보하지 못할 때는 '민주당은 홍 사장이 금융위기를 예측한 것으로 유명하다 소개했다'는 식으로 쓰여져야 한다.

또 보도자료를 더 자세히 인용한 기사엔 홍 전 사장이 IMF 외환위기까지 예측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역시 민주당의 보도자료를 의심없이 옮긴 것이다.

내가 이 부분을 계속 문제 삼는 것은 이 대목은 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객관적 사실의 영역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이다.

예컨대 'A는 능력이 있다, A는 좋은 사람이다'는 식의 표현은 판단, 즉 주관의 영역에 가까울 수 있지만, 'A는 어제 저녁에 B를 만났다'는 내용은 객관적 사실의 영역이다.

오래 전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당시의 홍성국 애널리스트와 같이 일했던 다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능력도 있고 좋은 사람이라고 본다. 다만 그 '예측'에 대해선 거짓이라고 보는 게 옳겠지. 근데 그 정도는 봐 줄 수 있는 것 아냐?"

하지만 당초 문제를 제기한 친구의 말 대로 이런 내용이 아무런 여과없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금융위기는 많은 사람들과 투자자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친 '큰 사건'이었다. 이 중대한 사건과 관련된 자신의 과거를 왜곡하는 것은 문제로 볼 수 있지 않을까.

또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 출신 친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무능해서 40대 후반에 증권사에서 잘렸잖아. 홍 전 사장이 그런 어마어마한 예측을 했는지는 처음 알았네. 나 역시 IMF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지켜봤지만, 국내에서 그런 예측을 한 사람이 있었다니 놀라울 따름이야. 내가 이런 사실 조차 모르는 과문한 애널이어서 잘린 건 아닐까."

■ 우리의 정당들은 인재를 뽑고 있는 것일까, 모리배를 뽑고 있는 것일까

총선을 앞두고 각 당의 인재영입 과정에선 뒷말이 무성했다.

가슴을 후벼파는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젊은 인재가 이른바 '미투 의혹'으로 낙마하기도 했다. 주변 인물들에게 간단한 평판 체크만 했어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지만, 당은 이 작은 수고마저 들이려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내가 불편했던 것은 이 인재의 능력을 증명할 만한 사실이 부족했다는 점이었다. 공복이 갖춰야 할 필수요건은 '감동적인 사연'이 아니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능력'이다. 국민들을 감동시킬 만한 멋진 스토리 라인 따위는 없어도 무방하다.

포퓰리즘을 숭배하는 정부(정당)는 '사연있는 사람'을 찾고 경세치용(經世致用)의 가치를 아는 정부는 '도덕적인 능력자'를 구하는 법이다.

낙마하지 않은 사람들도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블랙리스트에 등재돼 피해를 봤다고 한 판사의 경우 정작 그 이름이 리스트에 없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밖에도 많은 '인재'들이 거짓말을 쉽게 했다.

안타깝게도 내 주변의 사람들은 각 당이 영입한 사람들을 인재라고 보지 않는다. 공무원이 되려는 인재가 갖춰야 할 두 가지 덕목은 능력과 도덕성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바탕으로 열심히 일해야 국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미 '가짜 인재'들이 많이 선발된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공무를 담당하기 위해 중요한 두 가지 요소, 즉 능력과 도덕성 가운데 도덕성은 거짓말과도 직결된다. 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이 문제를 가볍게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정치판을 기웃거리던 모리배들이 선량 행세를 한다면 한국 사회의 공적 가치는 무너지고 말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미 그 가치가 많이 무너진 듯하다.

거짓말에 대해 관대한 사회를 계속 유지하는 한 그 피해는 오롯이 국민들이 감당해야 할 몫이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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