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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결권, 엘리엇사태 해법 아니다

김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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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 2018-05-21 00:00 최종수정 : 2018-05-22 1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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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등의결권, 엘리엇사태 해법 아니다
[한국금융신문 김수정 기자] 외국계 헤지펀드의 경영권 공격 이슈가 점화될 때마다 SK그룹이 회자된다.

타이거펀드는 1999년 SK텔레콤 지분 6.66%를 확보한 뒤 다른 우호지분과 연합해 SK그룹 경영에 관여했다. 1년여 만에 지분을 모두 팔아 6300억원 시세차익을 남기고 SK그룹을 떠났다.

SK그룹이 헤지펀드에 발목을 잡힌 건 한 번이 아니다. 2003년 영국 소버린자산운용은 SK 지분 14.99%를 매입해 최대주주가 된 뒤 소액주주와 외국계 주주들을 규합해 정관 개정과 최태원닫기최태원기사 모아보기 회장 퇴진 등을 요구했다. 2년여 만에 8000억원 차익을 실현하며 철수했다.

근래 가장 유명한 외국계 헤지펀드는 엘리엇닫기엘리엇기사 모아보기매니지먼트다. 엘리엇은 구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합병을 진행하던 2015년 삼성물산 지분 7.12%를 들고 3대주주로 나타났다. 1(제일모직)대 0.35(삼성물산)로 정해진 합병비율이 삼성물산에 불리하다며 합병 반대를 주장했다.

합병안이 국민연금 등 국내 기관들 지지 속에 69.53% 찬성으로 주주총회를 통과하면서 싸움은 잠정 엘리엇의 패배로 끝났다. 엘리엇은 최근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에도 관여하고 나섰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 합병 계획과 관련, 지주회사 전환과 주주환원책 구체화 등을 요구하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합병 반대 입장을 굳히고는 우호 지분을 모으고 있다.

엘리엇 주장대로 과거 삼성물산 합병이 불공정하게 이뤄진 정황이 드러난 요즘 분위기는 현대차에 결코 유리하지 않다.

헤지펀드가 국내 기업을 사정권에 둘 때마다 정재계는 외국 투기자본의 약탈성을 지적하며 ‘공격’ ‘먹튀’ ‘국부유출’ 프레임을 덮어 씌운다.

그러나 비판 받아 마땅한 건 거대한 기업이 쥐꼬리 지분을 가진 총수 일가 손 안에 든 국내 경제계의 구조나 경영권이 자질과 무관하게 2~3세에 대물림 되는 관행이다.

이 같은 구조에서 지배주주와 소액주주 간 이해상충이 밥 먹듯 빈번하게 되풀이돼 왔다.

아이러니지만 외국계 헤지펀드에 붙들려 호되게 흔들린 삼성과 SK는 현재 국내 30대 기업집단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주주 친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난해 삼성 계열사 4곳은 50~75%에 달하는 배당성향을 나타냈다. SK그룹 모 기업은 배당성향이 75%를 웃돌았다. 작년 국내 상장사 평균 배당성향은 16%에 불과했다.

SK 오너가 경영권을 방어하느라 1조원 가까이 들이고 주주들을 달래는 동안 주가는 올랐다. 엘리엇이 삼성과 현대차를 대상으로 행동하는 것을 보면서 소액주주들의 권리에 대한 인식은 제고됐다.

국내에서 주주, 특히 국내 기관투자자가 어떻게 주주행동주의를 실천해야 하는지 더없이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근 경제계에서 ‘차등의결권’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는 데 대해 유감이다. ‘1주 1의결권’ 원칙에 위배되는 차등의결권 같은 제도를 굳이 운영하는 국가들의 취지는 내국인의 국내기업 경영권을 외국 투기 자본으로부터 지키는 것이다.

내국인 경영권 사수는 총수 경영권 방어와 차이가 있다. 차등의결권이 국내 도입되면 내국인의 국내 기업 경영권 사수보단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에 활용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엄밀히 말하면 차등의결권은 대기업보단 중소 벤처기업에 필요하다.

벤처는 회사가 커지고 운전자금이 늘어날수록 외부 투자를 받아야 한다. 벤처 창업자가 적은 지분을 들고도 대형 자본으로부터 경영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차등의결권이 필요하긴 하다.

하지만 차등의결권과 같은 제도는 우리 사회에 안 맞는다. 재벌이란 독특한 경제 집단이 차등의결권을 행사할 경우 지배주주 권한 남용에 따른 부작용이 순기능을 압도할 것이다.

소액주주 권익은 되려 악화될 가능성이 크다. 지배주주 권한 남용 같은 부작용도 문제지만 외국자본이 급격히 빠져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우리 정부는 이런 이유로 차등의결권을 검토하고 도입 불가 판정했었다. 하려면 벤처기업에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게 맞다.

국내 대기업들이 헤지펀드의 투기판으로 전락할 때까지 팔짱 끼고 지켜볼 수도 없다. 기업은 창업자 일가나 주주들이 배타적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기능체다.

규모가 클수록 사회적 파급도 크다. 기업이 헤지펀드 타깃이 돼 경영권을 방어하느라 과도한 비용을 지출하면 단기 경쟁력뿐 아니라 지속가능성마저 흔들릴 수 있다.

그 피해는 주주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금융사를 제외하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주요 기업 가운데 오너 지분율이 외국인 지분율을 웃도는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아직 공격 받지 않았을뿐 언제든 외국 투기자본의 표적이 될 수 있다.

그래서 대안으로 꺼낼만한 게 지배주주의 충실의무를 명문화다. 충실의무는 지배주주가 자신의 이익보다는 회사 전체와 다른 주주의 이익을 위해 지배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의무다.

충실의무를 인정하는 미국과 독일 등에선 충실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지배주주에게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기업 경영 관련 세부 입법 없이도 포괄적으로 지배주주의 지배권 남용을 견제한다. 기업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도모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오너일가에만 유리한 구조 개편과 일감 몰아주기, 부적격 이사 선임 등과 같은 지배주주-소액주주 간 이해 상충을 차단할 수 있다.

기업들은 선진국 같은 기업 경영권 방어수단을 욕심내기에 앞서 기업 지배구조와 경영투명성, 주주친화 정책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는 게 타당한 순서로 보인다.

기업들이 지배주주 권한 강화보다 전체 주주 이익 제고에 힘쓴다면 기업과 주주, 나아가 사회 전체적으로도 발전적인 일이다.

김수정 기자 sujk@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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