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 관계부처의 필요에 따라 책임회피식으로 만들어진 의무보험들의 경우 대수의 법칙이 성립되지 않아 적정한 위험분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는 의무보험에 전적으로 의존할 게 아니라 자율적인 보험가입을 유도하고 안전의식을 높이는 계몽활동이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5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 도입된 의무보험은 약 20여개다. 가장 기초라고 할 수 있는 자동차책임보험부터 운전학원종합보험, 수렵보험, 선원근로자재해보상보험, 건설공사/조립보험, 원자력손해배상책임보험, 소비자피해보상보험, 수련시설배상책임보험, 승강기배상책임보험, 화물배상책임보험, 해외근로재해배상보험 등이다.
이같은 의무보험은 관계부처의 필요에 따라 제3자 피해구제를 위해 관련법률의 제·개정을 통해 보험가입을 의무화하고 미가입시 일정금액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보험이 오히려 보험사들에게 부담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가스사고 배상책임보험이나 유류오염·항공기 배상책임보험 등 보상한도가 높은 보험상품의 경우 재보험 형태로 위험을 분산시킨다. 대형 손보사의 한 임원은 “보상한도가 높은 의무보험들은 재보험이 필수”라며 “이러한 형태의 의무보험이 많아지면 결국은 해외재보험 수지적자가 늘어나 보험사의 이익에 마이너스로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특정계절에 한해 보험가입이 이뤄지는 수렵 및 수상레저종합보험의 경우에는 가입건수가 각각 1만건에도 못 미쳐 보험의 기본원리인 대수가 성립되지 않아 적정한 위험분산의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특히 수렵보험의 경우 현재 약 9600건에 보험료는 7억6000만원으로 건당 보험료는 8만원이다. 이에 비해 대인사고시 1억원, 대물사고시 3000만원을 설정해놓아 수지상등의 원칙을 지키기 힘들다.
여기에 정부부처가 관계부처의 필요에 따라 책임회피식으로 의무보험을 도입하는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수련시설배상책임보험의 경우 지난 1999년 6월에 화성 씨랜드 청소년 수련원에서 화재가 발생, 23명의 어린이가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난 이후 청소년 기본법을 개정해 도입했다.
또한 지난 1월에 도입된 어린이 놀이시설 배상책임보험의 경우도 우리나라가 OECD 회원국 중 상해와 사고로 인한 어린이 사망률이 1위, 어린이 안전사고에 따른 어린이 사망률은 3위인 등 어린이 안전사고 피해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도입됐다.
반면 주요 선진국의 경우 의무보험제도를 도입하는 사례가 극히 적다.
미국의 경우 법률에 의한 직접적인 의무보험제도가 없으며 독일은 철도사업자, 의약품 제조자등 대형 재난발생 가능성이 높은 시설에 대해 의무보험을 시행하고 있다.
스위스는 전기, 상하수도, 가스 등 공익사업시설 등에 대해 의무보험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에 보험업계에서는 현재와 같은 중구난방식 의무보험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업계 관계자는 “현재 대부분의 의무보험은 정부의 주도하에 도입되고 있다”며 “보험사의 자산건전성에 악영향이 미치지 않도록 의무보험을 도입할 때는 정부와 보험사가 사전에 보험료 수준, 보상한도,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해 충분히 검토를 한 후 보험제도 도입의 효율적인 방안을 마련하는 절차가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hana@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