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한 해를 정리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정말 상투적인 말이기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올 한 해도 ‘다사다난’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굳이 밖으로 눈을 돌릴 것 없이 국내의 문제만을 생각해 보자. 이라크 전쟁과 우리 군대의 파병 문제, 대구 지하철 참사, 재벌 총수의 투신자살, 화물연대 파업, 핵폐기장…. 올해의 10대 뉴스에 빠지지 않을 기사거리다. 세계 경제는 완연히 살아나고 있다는데 우리 경제는 아직도 쉬 깨어날 줄을 모르고 있다. 청년실업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새로운 뉴스가 아니다.
우리 증권시장은 어떨까? 2003년은 오랫동안 힘든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지난 3월 중순 KOSDAQ 지수가 34포인트대까지 떨어졌다. KOSDAQ 지수는 1996년 7월 1일을 100으로 하여 산정하는 것이니 단순하게 생각하면 약 7년만에 코스닥시장에서 조달한 자본의 3분의 2가 허공으로 사라졌다는 말이 된다. ‘사상최저’의 지수 앞에 투자자도 코스닥등록기업도 할 말을 잊었다.
KOSDAQ 지수가 지난 3월의 저점을 벗어나 회복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코스닥의 폭발적 성장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거북이 걸음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2002년까지 지난 3년 동안 매년 150개 이상의 새로운 기업이 코스닥에 이름을 올렸다. 아직 올해가 다 가지는 않았으나 11월말까지 코스닥에 신규로 등록한 회사 수는 불과 63개. 과거의 엄청난 성장에 비하면 실망스러운 실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에 시장통합 논의는 코스닥의 정체성에 커다란 상처를 주고 있다. 한국증권선물거래소 내에서 코스닥의 독립성이 그대로 유지되도록 하겠다는 것이 통합관련법의 기본방향이지만 거기에 수긍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시장통합에 관한 공청회나 설명회에서 쏟아진 무수한 말들 중에 코스닥시장과 코스닥등록기업에 대한 진심어린 우려와 걱정의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기관투자자와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개인투자자마저 등을 돌리고 있다는 코스닥이 시장통합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필자만의 기우이기를 빈다.
그렇다면 코스닥에는 희망이 없는 것일까? 증권시장의 침체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의 공모주 청약경쟁률을 기록하는 신규등록기업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가을의 해외 IR에서는 외국인이 회사를 통째로 사겠다는 등록기업이 있어 국내외 언론의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개별기업이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회사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역시 회사 하기 나름이라는 좋은 사례들이다. 물론 이런 사례들은 소위 잘 나가는 기업들의 특별한 경우에 해당한다. 등록기업 모두가 초우량기업일 수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기업들에게도 지금의 어려움을 헤쳐나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먼저 M&A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M&A가 코스닥등록기업들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다. 퇴출과 관련된 규정도 M&A를 활성화하는 쪽으로 개정되었다. 과거 밀실거래나 Money Game 성격의 M&A가 주종을 이루었다면 최근에는 시장에서의 평가가 긍정적인 M&A 사례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경영자들의 M&A에 대한 인식도 달라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M&A가 성장을 위한 효과적인 수단일 수도 있고, 생존을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는 코스닥등록기업들이 힘을 합쳐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제품을 생산·판매하는 등의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M&A와 같은 완전한 통합은 아니지만 필요한 범위 내에서 동종 또는 유사업종 사이의 제휴를 통해 기술, 제품 및 마케팅의 경쟁력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코스닥등록법인협의회 회원사들이 참여하고 있는 공동사업이 좋은 결실을 거두게 되기를 기원한다.
대다수의 코스닥등록기업은 대기업에 비해 조직이나 자금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그 스스로의 역량만으로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시장에 진입했으나 얼마 가지 못해 한계에 부딪히는 기업이 적지 않은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M&A가 되었건 제휴의 모습을 띠던 성장과 생존을 위한 전략의 수립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늘 그랬듯이 한 해를 보내며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더 큰 희망으로 새해를 맞으려 한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