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은행의 서태석 부부장은 자타가 인정하는 세계 최고의 외국화폐 감식전문가다.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만들어낸 위조지폐라도 그가 루뻬(감식용 정밀 돋보기)롤 들여다 보면 진위여부가 순식간에 드러난다.
최신식 위폐 감별기계로 선별하지 못하는 위조지폐의 경우에도 그의 손과 눈을 거치면 100% 감별이 가능하다.
혹자는 34년을 같은 일을 했으니 당연하다고 쉽게 말을 하지만, 철저한 자기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 그를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서부부장은 “69년 4월23일에 입행을 했으니 34년째 이 업무만을 하고 있는 셈이다”라며 “후계자를 찾는 것도, 찾아서 노하우를 전달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업무가 위조지폐 감별”이라고 말했다.
업무가 얼마나 힘든지는 서부부장의 현재의 눈 상태를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30여년 동안 계속해서 눈을 혹사시키는 바람에 당장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 하지만 완치를 장담할 수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있다. 혹시라도 눈에 이상이 생기면 그나마 지금 할 수 있는 업무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편 서부부장은 위조지폐를 오랜 기간 보아오면서 실제로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는 비법을 알았다고 한다. 지폐를 만드는 종이와 잉크, 그리고 지폐에 각인된 비밀번호만 알면 누구라도 위조지폐를 만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서부부장은 “지폐에 사용되는 종이는 최소한 20~30가지의 원료가 섞여 있어 비슷한 종이를 만드는 것은 힘든 일이며 잉크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리고 “특히 비밀번호의 경우 조폐공사의 일부 직원만이 알고 있는데 사실상 번호를 알아내는 일은 불가능”하다며 결과적으로 실제 지폐와 동일한 위조지폐를 만드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서부부장은 한가지 일반인이 모르는 사실도 공개했다. 위조지폐는 어디 한군데 ‘내가 위조지폐’라는 표시를 한다는 것. 서부부장은 “현행법상 위조지폐를 만드는 경우 최고 사형에서 무기징역을 선고 받지만 지폐의 특정 부분중 한곳이라도 명백하게 위조지폐임을 암시할 수 있게 한다면 형량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서부부장은 지폐는 단순히 화폐가치를 떠나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국민의 생활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문화적 가치를 가진다고 강조한다.
“지폐의 상태 및 돈을 사용하는 방법 등은 개인적인 성향을 떠나 국민들의 문화적 수준을 대변한다”며 “지폐에 사용되는 종이의 질만 비교하면 국내 지폐도 상당한 수준이지만 지폐의 손상 여부, 돈을 주고 받는 태도 등을 종합해 보면 아직은 선진국과 차이를 보인다”고 서부부장은 아쉬워했다.
마지막으로 서부부장은 위조지폐의 제작과 유통도 문제지만 이에 대처하는 정부와 금융당국의 시스템이 조속히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서부부장은 “외국의 경우에는 위조지폐의 유통이 적발되면 가장 먼저 취하는 조치가 유통 물량을 확보하는 것인데 반해 우리나라는 은행원을 소환하는 것”이라며 “더욱이 위조지폐를 전담하는 기관이 없어 경우에 따라 경찰청, 국정원 등 각기 다른 기관에서 수사와 조사를 벌이는 것은 위조지폐의 유통 속도를 감안하면 비효율적”이라며 전담기구의 설치를 강력하게 주장했다.
박준식 기자 impark@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