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든 회사는 세계적인 수학자 조제프 푸리에의 이름을 딴 상하이 기업 푸리에 인텔리전스, (Fourier '傅利叶智能)'이다. 의료 재활 로봇의 외길 10년이 전혀 다른 곳에서 꽃을 피우고 있다.

푸리에 GR-3
프랑스 수학자의 이름을 단 로봇 회사
푸리에(傅利叶智能)의 사명은 18세기 프랑스 수학자 조제프 푸리에에서 왔다. 복잡한 파동을 여러 주파수 성분으로 분해하는 '푸리에 변환'은 오늘날 음성 인식, 영상 처리, 로봇 제어의 핵심 수학적 도구다. 창업자 구지에(顾捷)가 이 이름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복잡한 인체 동작을 수학적으로 분해해 정밀하게 제어하겠다는 회사의 철학이 담겨 있다.
창업자 구지에(顾捷, Alex Gu)
2015년 상하이교통대학 출신 공학자 구지에가 상하이 푸동(浦东)의 장장(张江) 로봇밸리에 푸리에를 세울 때 목표는 소박했다. 뇌졸중 환자, 사고 후 재활 환자들이 다시 걸을 수 있도록 돕는 재활 로봇을 만드는 것이었다. 10평짜리 사무실에서 시작한 회사가 세계 40여 개국 2,000개 이상의 의료기관에 재활 로봇을 납품하는 기업으로 성장하기까지 8년이 걸렸다.
그러나 구지에의 진짜 꿈은 다른 곳에 있었다. 재활 환자를 위한 힘 제어(Force Control) 기술, 즉 인체와의 물리적 접촉에서 정확한 힘을 가하고 빼는 정교한 제어 기술이 완성되면, 그것이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의 핵심 심장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었다. 2019년 사내에 극비 연구팀을 꾸리고 인형 로봇 개발을 시작한 것은 그 확신의 실행이었다.
재활 로봇과 휴머노이드 로봇의 교집합은 '힘 제어'다. 환자의 손상된 근육에 정확히 0.1N의 힘을 가하는 기술이 완성되면, 그것은 곧 사람 옆에서 안전하게 움직이는 로봇의 핵심 기술이 된다. 푸리에가 재활 의료 분야에서 10년을 버텨온 것은 단순한 생존이 아니라 데이터의 축적이었다. 수천만 건의 재활 동작 데이터가 오늘날 GR-3의 지능을 만들었다.
GR-1에서 GR-3로: 3세대 진화의 궤적
2023년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GR-1이 공개되었을 때, 업계의 반응은 엇갈렸다. "또 하나의 전시용 로봇"이라는 냉소도 있었다. 하지만 그해 안에 GR-1 100대 이상이 중국 내 대학과 AI 기업에 실제 납품되면서 분위기는 달라졌다. 연구 플랫폼으로서의 휴머노이드 로봇 시장이 실재함을 증명한 것이다.2024년 9월 공개된 GR-2는 본격적인 성능 도약이었다. 키 175cm, 몸무게 63kg, 전신 53자유도(DOF), 단일 팔 최대 토크 380N·m, 배터리 작동 시간 2시간. 특히 한 손의 자유도가 6에서 12로 두 배 늘면서 인간처럼 복잡한 손동작이 가능해졌다. 내부 배선 설계로 유지보수를 단순화하고 제조 단가를 낮춘 것도 주목받았다. 2024년 11월 프랑스 낭시에서 열린 세계 최대 휴머노이드 로봇 학회 'Humanoids 2024'에 출품된 GR-2는 국제 학계의 인정을 받았다.
2025년 8월, 베이징 세계로봇대회(WRC)에서 공개된 GR-3는 전략적 대전환을 선언했다. "기능보다 사랑이 먼저(Love, above all functionality)"라는 철학을 내건 GR-3는 키 165cm, 몸무게 71kg, 55자유도로, 차가운 금속 외피 대신 자동차 수준의 소프트 터치 소재를 온몸에 입혔다. 31개의 분산 압력 센서가 온몸에 배치되어 사람과의 접촉 시 즉각적인 안전 반응이 가능하다. 딥시크(DeepSeek) AI를 탑재한 이중 경로 의사결정 아키텍처는 빠른 반사 제어와 대형 언어 모델 추론을 동시에 구현한다.
영업실적: 아직 적자지만 방향은 분명하다
푸리에는 비상장 기업으로 재무제표를 공시하지 않는다. 다만 투자 유치 자료와 중국 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재활 로봇 사업이 안정적인 매출 기반을 형성하고 있으며, 휴머노이드 로봇 부문은 아직 수익화 초기 단계임을 알 수 있다. GR-1의 연내 100대 납품(2023년), GR-3의 300곳 이상 재활•헬스케어 시설 배치(2024년 기준)가 매출 성장의 근거다.CES 2026의 충격: 재활 로봇 회사가 미국 무대에 서다
2026년 1월 7일, 라스베이거스 CES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GR-3는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체스 대결, 댄스 공연, 자연어 대화를 거침없이 소화한 GR-3는 "중국 재활 로봇 회사"라는 기존 이미지를 단번에 뒤집었다. 미국 무대 첫 데뷔에서 거둔 이 존재감은 푸리에가 단순한 연구 플랫폼 공급자가 아니라 글로벌 케어봇 시장의 주도권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같은 시기 서울 AW 2026 행사에서 공동창업자 빈 저우(Bin Zhou)가 GR-3의 소프트 외피와 전신 촉각 감지 기술을 한국 산업계에 직접 소개했다. 중국 로봇 기업이 한국 시장을 단순한 수출 대상이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십의 공간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행보였다.
2026년 7월 17일 상하이에서 개막한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푸리에는 단순 제품 전시를 넘어 '미래 거실'을 구현했다. 전시 부스 전체를 실제 가정집처럼 꾸민 '구체화의 집(具身之家)' 체험 공간에서 GR-3는 진짜 집사로 활동했다.
관람객이 "저는 목이 마릅니다"라고 말하면 GR-3는 공간 인지 기술로 집 안 전체 구조를 스스로 파악하고, 최적 경로를 계획해 부엌으로 이동한 뒤 물을 가져다 주었다. 사전 프로그래밍이나 물건 위치 라벨링 없이도 모호한 자연어 명령을 이해하고 장거리 작업 흐름을 스스로 완성한 것이다. 기술 담당자는 "대형 언어 모델이 의미와 계획을 담당하고, 공간 시맨틱 맵이 환경 인지를, 스케줄러가 작업 관리를, 실행 레이어가 물리적 제어를 맡는 네 겹의 융합 구조"라고 설명했다.
WAIC 2026에서 푸리에가 보여준 '구체화의 집'은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다. 중국 로봇 기업들이 '제조 현장 납품'이라는 기존 틀을 벗어나 '가정 침투'로 전선을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전략적 선언이다. 산업용 로봇 시장에서는 유비테크·유니트리가 앞서 있지만, 케어봇 시장은 아직 누구도 패권을 장악하지 못했다. 푸리에는 바로 그 틈을 노리고 있다.
같은 자리에서 첫선을 보인 신제품 GRW는 또 다른 차별화다. '장완협견(長臂窄肩)', 즉 팔은 길고 어깨는 좁은 디자인으로 가로 폭 585mm에 불과해 좁은 복도, 창고 통로, 제조 공정을 자유롭게 누빌 수 있다. 몸무게 160kg의 중하중 지원 로봇이면서도 핫스왑 배터리로 4시간 연속 가동이 가능하다. 그립, 흡착판, 정교한 손 등 모듈식 말단 장치를 상황에 따라 교체할 수 있어 '하나의 로봇, 무한한 역할'을 실현한다.
소프트뱅크·알리바바
사우디아람코가 줄을 선 이유
자본시장은 푸리에의 잠재력을 일찌감치 알아봤다. 2015년 IDG캐피탈과 장장과기투자의 800만 위안 엔젤 투자로 시작한 회사는 이후 12번의 자금 조달 라운드를 성공시켰다. D라운드에서 소프트뱅크 비전펀드2와 알리바바 CEO 우융밍이 설립한 위안징캐피탈, 사우디아람코 산하 벤처펀드 Prosperity7이 4억 위안을 쏟아 부었다. 2025년 1월에는 E라운드로 8억 위안을 추가 유치했다. 이 라운드에는 상하이 국자위 산하 국신투자, 푸동창투, 장장과투 등 상하이 국가자본이 대거 참여했고, Prosperity7도 재차 투자에 나섰다. 창업 이래 공개된 누적 투자 유치액만 16억 위안을 넘어섰다.2026년 6월에는 폼 소재 전문 상장사 룬양커지(润阳科技)가 전략적 투자자로 합류했다. 로봇 외피 및 내장재 신소재 개발을 위한 공급망 협력이 목적이다. 특정 부품 기업이 전략적 지분 투자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푸리에를 중심으로 하는 케어봇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쟁 지형: 누가 어디서 싸우는가
경쟁자들이 모방할 수 없는 푸리에의 진짜 경쟁력은 데이터에 있다. 중국·유럽·미국·동남아 등 40개국 2,000여 개 의료기관과 재활 센터에 재활 로봇이 보급된 결과, 수천만 건의 실제 인체 동작 데이터가 누적되었다. 환자의 보행 패턴, 근력 회복 곡선, 안전 한계치—이 데이터는 GR-3의 힘 제어 알고리즘과 안전 로직의 근간이다.GR-2의 380N·m 최대 토크와 12자유도 정교한 손이 가능한 이유, GR-3가 31개 압력 센서를 통해 사람과의 예기치 않은 접촉에도 즉각 안전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테슬라의 옵티머스가 공장 데이터를 학습하는 것처럼, 푸리에는 10년간 병원에서 인간의 몸을 학습해 왔다. 경쟁사들이 자동차 공장에서 경험을 쌓는 동안 푸리에는 인간의 가장 섬세한 영역에서 데이터를 쌓아왔다. 이 '의료 데이터 해자(경쟁자가 쉽게 넘을 수 없는 방어막)'는 단기간에 복제할 수 없는 방어선이다. 2024년 기준으로 GR-3는 이미 300곳 이상의 재활·헬스케어 시설에 배치되어 실전 운용 데이터를 계속 쌓고 있다. '만들면서 배우는' 선순환이 작동하고 있다.
글로벌 휴머노이드 로봇 전쟁은 지형에 따라 승자가 갈리는 게릴라전이다. 공장을 유비테크에 내주더라도 가정과 병원을 선점하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큰 시장이 열린다. 2035년 전 세계 케어봇 시장 규모는 1,000억 달러를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고령화가 가장 빠른 중국이 그 수요의 핵심이다.
푸리에의 전략은 '니치 투 매스(Niche to Mass)'다. 의료라는 협소하지만 검증 가능한 시장에서 핵심 기술을 완성하고, 그 기술을 레버리지 삼아 훨씬 큰 케어봇·홈 서비스 시장을 공략한다. 삼성전자가 반도체에서 갈고 닦은 공정 기술로 스마트폰을 만든 것과 같은 논리다. 재활 의료라는 '실험실'에서 10년을 버텼기에 가능한 도약이다.
리스크: 아직 풀리지 않은 방정식
흥분만 있어서는 안 된다. 푸리에의 앞에는 여전히 거대한 난관이 놓여 있다.첫째, 상용화 속도다. 의료 기관에서의 성공이 가정 보급으로 이어지는 데는 가격 장벽이 있다. GR-2의 호가가 15만 달러 이상이고, GR-3의 소비자 가격도 대중적 수준과는 거리가 있다. 중국 정부의 '가정용 케어봇 보조금 확대'가 없다면 대규모 시장 침투는 더딜 수 있다.
둘째, AI 칩 리스크다. GR-3가 탑재한 딥시크 기반 AI 추론은 고성능 온디바이스 칩을 요구한다. 미국의 대중 반도체 제재가 강화될수록 푸리에의 AI 고도화 경로에 병목이 생긴다. 자체 칩 개발 역량이 없는 상황에서 이는 구조적 취약점이다.
셋째, 비상장 기업의 자금 압박이다. 누적 16억 위안 이상을 조달했지만 양산·글로벌 진출에는 더 큰 자본이 필요하다. IPO를 통한 자금 조달이 언제 가능할지가 성장 속도를 결정할 핵심 변수다.
한국에 주는 세 가지 시사점
푸리에의 성장 스토리는 한국 로봇 산업에 세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첫째, '약점의 재발견'이다. 의료 재활이라는 보수적이고 좁은 시장을 10년 버텨낸 것이 오늘의 기술 우위로 돌아왔다. 단기 수익이 없어도 데이터를 쌓을 수 있는 특정 영역에 집중하는 인내가 전략이다. 한국의 강점 영역인 의료기기·재활·바이오 로봇 기술을 로봇 제어 기술과 연결하는 길은 아직 충분히 개척되지 않았다.
둘째, '플랫폼 사고'다. 푸리에는 단순히 로봇 하드웨어를 파는 회사가 아니다. 병원에서 축적한 데이터 플랫폼, 개발자가 쉽게 쓸 수 있는 소프트웨어 SDK, 재활 서비스 자회사가 결합된 생태계를 운영하고 있다. ETH취리히·멜버른대학 등 글로벌 연구기관과의 공동 연구소 운영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 기업들이 하드웨어 단독 승부에서 벗어나 데이터·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으로 사고를 전환해야 하는 이유다.
셋째, '고령화 위기의 산업화'다. 중국이 2,000개 병원을 레버리지 삼아 케어봇 시장을 여는 것처럼, 한국의 초고령 사회 진입은 위기가 아니라 가장 큰 내수 시장이다. 요양원·병원·가정이라는 실험 공간이 이미 충분하다.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정책과 생태계다.
공장은 불을 끄고 로봇에게 넘길 수 있다. 그러나 어르신의 손을 잡는 일, 환자의 고통을 이해하는 일은 다르다. 푸리에는 그 다른 영역에서 시작했기에 지금의 자리에 있다. 기술의 시작점이 곧 “경쟁의 해자”가 된다.
한국도 자신이 가장 잘하는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의료강국, 바이오강국으로서 한국이 가진 자산을 로봇과 연결하는 순간, 전혀 다른 경쟁력이 열린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또다시 중국 케어봇의 '고객'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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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칭화대에서 석사, 푸단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우경제연구소에서 반도체와 IT애널리스트로 17년간 일했다. 대우증권 상무, 한화증권 전무를 지내고 이후 19년간 중국경제와 금융을 연구하고 있다. 현재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으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중앙대 경영전문대학원에서 MBA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병서 박사/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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