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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칼럼] 돈 쓰기 무서워 ‘카톡 생일’ 숨기는 젊은이들

박슬기 기자

seulgi@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8-18 00:00

▲ 박슬기 생활경제부 차장

▲ 박슬기 생활경제부 차장

[한국금융신문 박슬기 기자] 기자는 한때 ‘생일’날 받은 선물의 규모를 ‘자랑’이라 여겼다. 선물의 개수는 마치 인맥의 넓이와 관계의 깊이를 증명하는 숫자처럼 느껴졌다.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받은 선물 사진을 올리고 ‘이렇게 많이 받았어?’라는 얘기를 들으면 나의 학창시절과 사회생활에서 쌓아온 인간관계를 제법 잘 지켜왔다는 은근한 자부심도 생겼다.

생일선물은 곧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는 많은 사람들의 ‘정’과 ‘관계’를 나타내는 상징적인 의미기도 했던 만큼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받아들곤 했다.

그런데 요즘 Z세대(1995년~2010년생)들 사이에서는 사뭇 다른 풍경이 나타나는 모습이다. 생일선물이 관계를 확인하는 즐거움이 아니라 언젠가 반드시 되갚아야 할 ‘부담’으로 여겨지기 시작한 것이다. 주고받는 선물의 가격이 점점 높아지고, 챙겨야 할 사람들은 늘어나면서 이젠 카카오톡에서 자신의 생일을 숨기는 이들도 생겨났다.

2000년생 직장인 박모 씨는 최근 카카오톡 프로필에서 생일 공개 설정을 껐다. 친구들과는 생일선물을 주고받지 않기로 이미 약속했지만, 사회생활에서 맺은 관계들로부터 오는 선물에 따르는 ‘부담’은 여전했기 때문이다.

박 씨는 “애매한 관계인데 생일을 챙겨주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고, 진정 친한 관계가 아니면 서로 주고 받지 않는 게 좋은 편”이라며 “생일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면 그걸로 족하다. 실용성을 중시하는 편이라 갖고 싶지 않은 선물을 받는 것 역시 부담”이라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관심과 정을 나타내는 생일선물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심리적 빚’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요즘 세대들의 변화는 한편으론 사회적인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고 청년층의 취업 문턱이 높아진 가운데 고물가까지 이어지면서 ‘관계 유지비’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어서다. 취업과 소득은 불확실하고 불안정한데 밥값과 커피값, 선물 가격은 오르는 탓에 한때 가벼운 마음으로 주고 받았던 선물조차 이제는 지출 계획에 넣어야 하는 비용이 됐다.

카카오톡 선물하기의 성장세에서도 젊은 세대의 달라진 소비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는 코로나19 시기 비대면 소비가 확산하면서 연간 거래액이 크게 늘었다. 2020년과 2021년 거래액이 각각 전년 대비 52%, 43% 성장한 것. 그러나 최근 선물하기 거래액 증가율은 대체로 한 자릿수에 머물고 있다. 2025년 3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1% 증가에 그쳤다. 거래액이 감소한 것은 아니지만, 과거와 같은 폭발적인 성장세는 한풀 꺾인 양상이다.

반면 자신을 위해 상품을 사는 ‘자기구매’는 빠르게 늘고 있다. 올해 2분기 선물하기 내 자기구매 거래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9% 증가, 전체 선물하기 거래액의 약 20%를 차지했다. 이를 선물 부담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소비의 무게중심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기자신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관계를 위해 지출하는 비용에는 신중해진 반면, 자신의 필요와 만족을 위한 소비에는 비교적 적극적인 젊은 층의 성향과도 궤를 같이한다.

최근에는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 부담을 뜻하는 ‘프렌드플레이션(Friendflation)’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친구를 뜻하는 ‘Friend’와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Inflation’을 합친 말로, 밥값과 커피값 그리고 술값 등을 감당하기 어려워 친구와의 약속이나 모임을 줄이는 현상을 뜻한다. 이제 관계마저 절약의 범위에 들어간 것이다.

실제 구인·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지난달 Z세대 601명과 밀레니얼세대 5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각각 90.1%와 93%가 친구와의 만남이나 모임 비용을 부담스럽게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아울러 Z세대의 71.2%는 최근 1년간 친구와의 만남 및 모임 관련 지출을 줄였고, 64.6%는 일주일에 한 번도 친구를 만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관계의 위축은 친구 사이를 넘어 연애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젊은 세대에게 연애마저 감당하기 어려운 ‘사치’로 여겨지는 것이다.

주간경향이 한국과 중국, 일본, 미국, 스페인 등 5개국 청년 824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미혼 청년 가운데 55.4%가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답했다. 조사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은 비율이다. 일본이 54.2%로 뒤를 이었으며 미국 35.8%, 스페인 29.2%, 중국 24.7% 순이었다.

특히 한국 여성 청년의 연애 무관심 비율은 60.8%로, 조사 대상 5개국 남녀 가운데 가장 높았다. 한국 남성 청년 역시 47.7%가 연애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경제적 상황과 연애 경험 사이의 연관성도 한국에서 두드러졌다. 연애 경험이 없는 한국 청년 가운데 구직 중이거나 구직을 단념한 비율이 38.5%에 달했다. 반면 연애 경험이 있는 청년 중 같은 상태에 놓인 비율은 12.9%였다. 연애하지 않아서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것도, 경제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연애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다만 불안정한 경제적 여건이 청년들의 관계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문제는 젊은 세대가 관계를 원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이어갈 여유를 잃고 있다는 점이다. 친구를 만나 밥을 먹고, 연인과 시간을 보내고, 생일에 작은 선물을 건네는 일은 사회를 이루는 가장 일상적인 관계의 모습이다. 하지만 일자리와 소득이 불안정하고 주거비와 생활비가 계속 오르면서 이러한 일상은 가장 먼저 줄여야 할 지출이 됐다.

청년들의 개인주의나 달라진 소비 성향만을 탓해서는 안 된다. 생일을 숨기고 약속을 줄이며 연애를 포기하는 선택 뒤에는 고용과 소득, 주거와 물가 문제가 복합적으로 놓여 있다. 청년들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일자리와 주거 기반을 마련하고, 생활비 부담을 낮추는 구조적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관계를 포기하는 청년이 늘어나는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 나아가 공동체의 회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청년들이 관계를 맺지 않는 것이 아니라 맺을 여유가 없는 것이라면, 필요한 것은 관계를 권하는 충고가 아니다. 누군가의 생일을 기꺼이 축하하고, 친구를 부담 없이 만나며 사랑과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여건이다. 청년들이 관계를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은 결국 한국사회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박슬기 한국금융신문 기자 seulgi@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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