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민성 칼럼니스트(델코리얼티그룹 회장)
20세기형 도시 계획이 직면한 대전환의 파고
대한민국의 도시들은 지금 주택 공급과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라는 만성적인 난제 앞에 서 있다.1인 가구의 급증, 초고령화 사회로의 진입, 그리고 디지털 전환으로 인한 직주 근접의 개념 변화는 가구 구조와 라이프스타일의 다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인구·사회학적 변화를 뒷받침해야 할 우리의 도시 계획 시스템은 여전히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용도지역제(Zoning)’라는 낡은 틀에 갇혀 있다.
과거의 도시 계획은 ‘이곳은 주거지’, ‘저곳은 상업지’라는 식의 경직된 용도 규제를 통해 도시를 관리해 왔다. 그러나 생물처럼 변화하는 현대 도시에서 이러한 사후적이고 고정적인 규제는 오히려 도시의 역동성을 저해하고 공간의 효율적 재구조화를 가로막는 족쇄가 되고 있다.
도심은 복합 개발을 통해 고밀도 주거와 업무가 공존해야 함에도, 획일적인 용도 구분은 시장의 창의적인 수요를 차단하고 공간의 잠재력을 사장시키고 있다. 이제 우리는 근본적인 도시 계획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 그 이정표를 찾기 위해 최근 ULI가 발표한 미국 내슈빌(Nashville)의 도시 성장 사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내슈빌의 스카이라인을 만들어낸 세 가지 요인, 즉 형태 기반 구역 설정, 예측 가능한 승인 절차, 도심 복합용도 등은 2020년 이후 도심에 약 1만 채, 지역 전체로는 약 5만 채의 아파트를 추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이는 성장에 필요한 수준을 훨씬 웃도는 수치로 나타났다. (자료: ULI)
이미지 확대보기미국 내슈빌의 반전: ‘형태 중심의 조닝’의 마법
미국 내슈빌은 최근 몇 년간 도시 계획의 혁신을 통해 주택 공급의 반전을 이루어냈다. 이 도시가 택한 전략의 핵심은 ‘용도(Use)’ 중심의 규제에서 ‘형태(Form)’ 중심의 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이다. 이를 실현한 도구가 바로 ‘형태 중심의 조닝(Form-Based Code)’이다. 이 조닝은 건물 내부에서 무엇을 하는지, 즉 용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미리 정하지 않는다. 대신 건물의 높이, 가로변과의 관계, 보행자 친화적 외관, 도시 경관과의 조화 등 건물의 ‘물리적 형태’를 관리하는 데 집중한다.외형적인 디자인과 도시적 형태 기준만 충족된다면, 내부의 기능은 시장의 요구에 따라 주거가 될 수도, 업무 공간이 될 수도, 혹은 복합적인 창의 공간이 될 수도 있다.
이 유연한 시스템 덕분에 내슈빌은 2020년 이후 도심에만 1만 채, 지역 전체로 5만 채라는 성장에 필요한 수준을 상회하는 주택을 공급할 수 있었다. 용도라는 경직된 장벽을 걷어내자, 시장은 스스로 최적의 공간 활용 방안을 찾아냈고, 이는 임대료 상승 압력을 완화하고 도시의 주거 안정성을 확보하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졌다.

내슈빌 다운타운에서 컴벌랜드 강 건너편에 위치한 약 12만㎡ 규모의 복합 용도 지구인 이스트 뱅크의 조감도. 이곳에서는 유연하고 형태 기반의 조닝 설정 체계와 간소화된 승인 절차 덕분에 고밀도 대중교통 중심 개발이 진행되고 있으며, 예측 가능한 인허가가 대규모 주택 건설과 도시 공간 조성을 어떻게 가속화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자료: ULI)
이미지 확대보기인허가의 불확실성 제거: 민간 공급의 엔진을 살리자
내슈빌 사례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두 번째 핵심은 인허가 프로세스의 ‘예측 가능성’과 ‘투명성’이다. 한국의 주택 사업은 여러 단계의 심의와 불투명한 행정 절차라는 거대한 장벽을 넘어야 한다. 개발자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완공 시점을 장담할 수 없는 불확실성과 싸워야 하며, 이는 필연적으로 사업 기간의 장기화와 금융 비용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리스크는 결국 분양가나 임대료 상승의 원인이 되어 수요자들의 주거비 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내슈빌은 행정적 관행을 완전히 뒤집었다. 복잡한 인허가 과정을 디지털화하고, 투명하고 간소화된 통합 절차로 바꾸었다. 개발자가 사업의 끝을 명확히 예측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 것이다. 개발자가 승인 절차에서 겪는 불확실성을 제거하자 민간의 창의적 자본이 공급 활력을 되살리는 마중물이 되었다. 리스크가 줄어든 시장에는 민간 기업들이 앞다투어 더 나은 공간을 설계하고 효율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경쟁에 나섰고, 이는 결과적으로 도시 전체의 주거 복지를 향상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형태 중심의 조닝으로의 대전환, 왜 필요한가?
도시 계획의 본질은 시민의 삶을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규제는 공간의 용도를 고정함으로써 도시의 적응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형태 중심의 규제는 도시에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중요한 가치를 부여한다.첫째, 시장 적응형 재사용(Adaptive Reuse)이다. 건물이 지어진 후에도 내부 기능은 시장 상황에 맞춰 변할 수 있다. 이는 자원 낭비를 줄이고 도심의 지속가능성을 높인다.
둘째, 도시의 통합적 경관 유지다. 용도에 상관없이 물리적 형태가 주변과 조화를 이루도록 강제함으로써, 도시는 기능적 파편화가 아닌 통합된 경관적 가치를 지닌 공간으로 재탄생한다.
셋째, 시장의 창의성 발현이다. 공공은 도시의 큰 그림과 형태적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그 안의 내용은 민간이 창의적으로 채우게 함으로써 공간 효율성을 극대화한다.
한국 도시 계획을 위한 시사점: 규제에서 지원으로
내슈빌의 성공 사례를 한국의 도시 현실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행정 시스템의 발상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 공공은 이제 ‘관리자’에서 ‘플랫폼 제공자’로 전환되어야 한다.첫째, 공공과 민간의 역할 재정립이다. 공공은 개발의 가이드라인(형태와 디자인)을 제시하고, 민간은 그 틀 안에서 창의적인 기능(업무, 주거, 여가 등)을 유연하게 채워 넣을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민간을 규제의 대상으로만 보지 말고, 도시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파트너로 인식하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통합 인허가 시스템의 전면적 디지털화다. 복잡한 심의 과정을 디지털 기반의 통합 인허가 프로세스로 단순화하여, 개발 기간을 명확히 예측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사업의 리스크가 명확히 계산될 때 비로소 민간의 창의적 자본은 도심 재생의 동력으로 참여하게 된다.
셋째, 유연한 공간 활용을 위한 제도적 정비다. 현재의 도시계획법 체계 내에서 용도지역제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특례 지역을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도심 역세권이나 유휴 공공부지 등 가용지가 많은 지역부터 형태 중심 조닝을 시범 도입하여 그 효과를 검증하고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전략이 유효할 것이다.
지속 가능한 도시를 위한 거시적 제언
주택 문제는 단순한 물리적 공급을 넘어, 도시의 지속가능성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떻게 규제하여 통제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규칙을 투명하게 만들어 민간의 활력을 이끌어낼 것인가’이다.미래의 도시는 유연해야 한다. 인구 구조가 바뀌고 산업 형태가 디지털 중심으로 변화함에 따라, 도시의 공간 역시 유연하게 변화할 수 있어야 한다. 현재 우리가 겪는 주택난은 사실 공급 부족이라는 물리적 현상 이면에 존재하는 ‘시스템의 경직성’이라는 구조적 문제다. 형태 중심의 조닝은 이러한 경직성을 타파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특히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소형 주택 공급과 공유형 주거 모델의 확산 등은 기존의 정형화된 용도 중심 규제에서는 실현하기 어렵다. 그러나 형태를 기반으로 한 규제 체계로 전환된다면, 같은 공간이라도 시대의 필요에 따라 언제든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도시의 미래다.
결론: 낡은 용도의 족쇄를 풀고 형태의 유연성으로
도시 성장은 인위적인 공급 통제가 아니라, 민간이 자유롭고 신속하게 주택을 공급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규칙을 세울 때 비로소 완성된다. 내슈빌의 실험은 단순한 외국의 사례가 아니라, 우리 도시들이 마주한 주택난을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이정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규제라는 낡은 칼날이 아니라, 도시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적 밑그림이다.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도시는 경직된 공간이 아니라, 시민의 요구에 따라 끊임없이 진화하는 유기적인 생태계여야 한다. 이것이 우리가 내슈빌의 성공에서 얻어야 할 가장 강력한 교훈이자, 대한민국 도시 정책이 지향해야 할 지속 가능한 미래이다. 이제 20세기 산업화 시대의 잔재인 ‘용도’의 족쇄를 풀고, 21세기에 걸맞은 ‘형태’와 ‘유연성’의 도시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도시는 그만큼의 잠재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를 깨우는 것은 결국 행정의 의지와 발상의 전환에 달려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첫걸음은 지금 바로 시작되어야 한다. 도시의 물리적 질서를 관리하되 그 안의 기능을 시장에 맡기는 ‘전략적 유연성’이야말로, 우리가 잃어버린 도시의 활력을 되찾고 주택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열쇠가 될 것이다. 이제는 도시 계획의 중심축을 옮겨야 한다. 용도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형태라는 유연한 그릇에 더 나은 삶을 담아낼 준비를 해야 한다. 그것만이 1인 가구, 고령화 등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 도시들이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최민성 칼럼니스트/델코리얼티그룹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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