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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춘의 아톨로지②] 현대 미술이 달을 소환하는 까닭

류재춘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 2026-05-05 06:30 최종수정 : 2026-05-11 09:59

“천 개의 강에 비친 하나의 마음”

[류재춘의 아톨로지②] 현대 미술이 달을 소환하는 까닭

현대 미술이 달을 소환하는 까닭

밤하늘을 응시하며 우리는 무엇을 꿈꾸는가. 인류의 역사와 함께해 온 저 유백색의 구체는 왜 유독 현대 미술가들의 캔버스 위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며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있을까.

'키아프(Kiaf)'나 '화랑미술제' 같은 대형 아트페어를 방문해 본 이들이라면 전시장 곳곳을 수놓은 다채로운 '달'의 형상들을 목격했을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유행하는 소재의 반복을 넘어, 현대인들이 상실해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회복하려는 무의식적 갈망과 맞닿아 있다.

특히 서구권이 달을 정복의 대상이나 이성적 탐구의 산물로 바라보는 것과 달리, 동아시아는 왜 이토록 달을 마음의 고향이자 영감의 원천으로 삼아왔는지 그 깊은 내면과 상징의 층위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달밤 190×130 한지에 수묵채색 2018

아름다운 달밤 190×130 한지에 수묵채색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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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보다 달에 주목하는 동양의 정서

서양의 신화에서 태양은 '아폴론'으로 대변되는 강인한 질서와 이성, 남성성을 상징한다. 반면 동아시아의 정서에서 달은 태양보다 더 친숙하고 민중적인 위치를 점해왔다.

동양의 설화 속 달은 정복해야 할 미지의 공간이 아니었다. '달 속에 계수나무가 있고 토끼가 방아를 찧는다'는 전설은 달을 우리와 삶의 궤를 같이하는 친근한 이웃의 공간으로 변모시켰다.

달을 신성한 정의를 실현하고 농경과 목축을 다스리는 신적 존재로 숭배하면서도, 동시에 인간의 삶과 긴밀하게 소통하는 존재로 여겼던 메소포타미아나 이집트, 한국의 전통 신앙과 맥이 닿는다.
음양오행의 조화 측면에서 태양이 발산하고 소모하는 에너지라면, 달은 수렴하고 채우는 에너지로 인식된다.

수묵화 전통도 뜨거운 태양의 강렬함보다 밤의 어둠을 부드럽게 밝히는 달의 포용력이 사람들에게 더 큰 위안을 준다는 점에 착안한다. 거친 자연에 맞서기보다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며 그 속에서 조화를 찾으려 했던 동양적 세계관이 반영된 것이다.

더문 190×130 한지에 수묵채색 2023

더문 190×130 한지에 수묵채색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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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지닌 상징성과 현대미술적 가치

현대 미술에서 달이 소재로 각광받는 건 변주 가능성과 여백의 미학 덕분이다. 달은 순환과 재생을 상징한다. 정월대보름과 추석 같은 세시풍속에서 알 수 있듯이 달은 재생력과 풍요로움, 우주적 생명력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왔다.

달은 담아내는 그릇, 즉 여성성의 상징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융(Jung)은 달을 태양을 담는 용기이자 생명력의 저장고로 해석했다. 현대 미술에서는 포용과 보호의 메시지로 치환된다.

달은 또 감성과 변화를 상징한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서 보이듯 달은 작가의 내적 에너지를 시각화한다.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변하는 주기적 위상은 시간의 흐름과 생명의 순환, 나아가 죽음과 재생이라는 보편적 인류의 서사를 완벽하게 투영한다.

수묵화 작가들은 달을 활용해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스러움을 극대화한다. 필자도 수묵화의 주요 소재로 둥근 달을 다양하게 쓰고 있는데, 이는 비움으로써 비로소 채워지는 명상적 가치를 관객에게 전달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월인천강(月印千江)'과 심상의 투영

현대미술 작가들이 달을 통해 구현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는 동양의 내향적 성찰과 그 궤를 같이한다.

세종대왕의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이나 주희의 월인만천(月印萬川) 사상은 본체는 하나지만 만물에 그 정수가 깃들어 있다는 원리를 보여준다.

하늘에 뜬 절대적인 달이 지상의 수많은 강물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비치듯, 작품에서 만나는 수많은 달이 결국 작가 개개인의 마음에 비친 저마다의 본질인 셈이다.

동양 철학에서 앎은 외부를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비추어 보는 관조의 과정이다.

장자가 강조한 허실생백의 경지처럼 작가들은 마음을 비우고 그 안에 맺힌 달의 심상을 캔버스에 옮긴다. 달빛은 어둠을 밀어내기보다 어둠과 함께 존재하며 무의식을 비추는 독특한 원융성을 지닌다.

이는 "인간은 달과 같아서 누구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어두운 면이 있다"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인간 내면의 미지 영역을 탐색하는 도구다. 달빛 아래서 사물의 경계가 흐릿해질 때 우리의 상상력은 극대화되고, 눈에 보이는 실체를 넘어 본질을 그리려는 동양적 사유의 힘으로 이어진다.

동시대적 감각·사유 담아내는 그릇 ‘달’

디지털 기술과 영상 매체가 일상화된 시대에 전통의 박제된 권위에 기대기보다 동시대적 감각과 사유를 어떻게 담아낼 것인가.

필자는 달을 화폭에 담아 이 같은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소환하고 있다. 기술의 정점에서 잃어버린 인류의 서정성과 고요한 자기 성찰의 시간을 회복하기 위해서다. 필자 뿐만 아니라 많은 수묵화 작가들은 작업 과정에서 마음속에 자신만의 달을 띄운다.

갤러리 벽면을 채운 수묵화에서 떠오른 수많은 달은 현대인들에게 묻고 있다. 당신의 마음이라는 강물에는 지금 어떤 모양의 달이 떠 있느냐고. 수묵화의 화면 위에서 달은 단순한 위성이 아니라, 인간들이 돌아가야 할 근원으로서의 '마음의 눈'이자 무의식을 비추는 거울이다.

류재춘 작가는
성균관대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로 학·석사를 마치고 동국대에서 미술학 박사를 받았다. K-수묵화의 대표 주자로 꼽히며 전통 수묵화는 물론 LED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수묵화 등 다양한 수묵 작업을 한다. 개인전 21회, 단체기획전 200여 회를 열었고, 수묵산수화를 국내에서 처음 NFT로 발행한 바 있다. 주요 작품이 카타르 국립미술관, 중국 동북아미술관, 성균관대, 동국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문화교류단장, 미술협회 국제교류위원장, 동서미술학회 부회장,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 대우교수로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현재 세종문화회관과 고양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류재춘 칼럼니스트/세종문화회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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