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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재춘의 아톨로지③]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여백으로의 회귀

류재춘 칼럼니스트

기사입력 : 2026-05-13 14:20

수묵의 미학이 답하는 ‘현대적 웰니스’

[류재춘의 아톨로지③] 무위자연(無爲自然)과 여백으로의 회귀
바야흐로 '웰니스(Wellness)'의 시대다. 현대인은 끊임없이 치유를 갈망하며 숲을 찾고 명상을 한다. 하지만 이 거대한 트렌드의 이면에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처한 극심한 정신적 결핍과 스트레스가 자리 잡고 있다.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은 과거의 박테리아나 바이러스보다는 우울증, 불안과 같은 신경증적 질환을 유발한다. 이런 '피로사회'적 징후는 필연적으로 인간을 다시 자연으로 이끈다. 필자는 수묵화 작가의 시선으로, 동양 철학의 정수인 '무위자연(無爲自然)' 사상을 통해 인간이 왜 자연이라는 거대한 품을 갈망할 수밖에 없는지 늘 탐구해왔다.

현대인이 숲을 찾는 행위는 단순히 물리적인 휴식을 넘어선다. 사회적 자아를 내려놓고 존재의 원형인 자연과 합일하려는 본능적 움직임이라고 할만하다.

Green Waterfall, 190×130cm, Color and Ink on Korean Paper, 2020

Green Waterfall, 190×130cm, Color and Ink on Korean Paper, 2020


작위의 세계를 치유하는 '심미적 교감'의 힘

현대 사회는 인위적인 '작위(作爲)'로 가득 찬 세계다. 기술의 발전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왔지만 오염된 환경과 초연결 사회의 스트레스를 동시에 안겨줬다. 이런 상황에서 등장한 힐링은 단순한 치료를 넘어선 개념이다. 치료가 기술적 개입을 통한 신체적 복원이라면, 치유(Healing)는 영적이고 경험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춘 '하이터치(High-touch)'의 영역이다.

필자는 노장 사상의 핵심인 무위자연이 바로 이 하이터치의 정점과 맞닿아 있다고 본다. 노자는 "자연은 서두르지 않지만 모든 것을 이룬다"고 했다. 억지로 힘을 가하지 않고(無爲) 스스로 그러한(自然) 질서에 몸을 맡기는 태도는, 성과 중심의 삶에서 생겨난 현대인의 결핍감을 해소하는 가장 강력한 철학적 처방이다. 이는 인위적인 규범으로부터 해방되어 존재 자체로 충만한 긍정심리학적 회복을 의미한다.

Oriental Mountain, 70x 130cm, Ink on Hanji Paper, 2020

Oriental Mountain, 70x 130cm, Ink on Hanji Paper,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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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흐름에 따른 웰니스 진화와 생존적 힐링

한국 사회에서 자연과 조화로운 삶에 대한 갈망은 시대적 흐름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하며 진화해 왔다. 1990년대 후반에는 IMF 외환위기라는 사회적 시련 속에서 육체적·정신적 건강의 조화를 통해 행복을 추구하는 '웰빙(Well-being)'이 도입됐다. 2000년대 중반을 지나며 단순히 질병이 없는 상태를 넘어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입체적으로 조화를 이루는 '웰니스'가 본격화했다.

필자는 이 과정이 인간의 욕망이 물질에서 정신으로, 다시 존재의 본질로 이동하는 과정이라고 본다. 이제 우리는 환경 문제가 일상이 된 생명 윤리의 시대를 살고 있다. 힐링은 더 이상 일부 계층의 사치스러운 취미가 아니다. 오염된 도시 생태계 속에서 정신을 보존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됐다.
Waterfall, 190x 130cm, Ink on Hanji Paper, 2020

Waterfall, 190x 130cm, Ink on Hanji Paper, 2020

수묵의 미학, 정신적 여백과 심리적 케렌시아

수묵화 작가의 시선으로 보면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닌, 인간의 불완전성을 정화하는 카타르시스의 공간이다. 수묵화의 미학은 현대인이 갈구하는 정신적 안식처인 '케렌시아(Querencia)'의 공간적 대안을 제시한다. 특히 수묵의 '여백(餘白)'이 주목해야 할 대목이다. 여백은 단순히 비어 있는 자리가 아니라, 관찰자의 사유가 머물 수 있도록 비워둔 가능성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정보 과부하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수묵의 여백은 최고의 '디지털 디톡스'가 된다. 또한 먹의 농담(濃淡)이 보여주는 부드러운 번짐은 흑백의 이분법으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조화와 수용의 가치를 역설한다. 최근 낮잠카페 같은 짧은 휴식 공간이 유행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잠시라도 수묵화 속 여백과 같은 평온함을 소유하고자 하는 현대인의 무의식적 욕망이 투영된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수묵화를 그리는 과정은 그 자체로 고도의 정신 수양이다. 단단한 먹을 갈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화지가 먹을 머금는 속도에 맞춰 호흡을 조절하는 행위는 현대의 명상과 다르지 않다. 필자는 우리가 자연을 끊임없이 갈망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자연이 곧 인간의 원형이자, 돌아가야 할 거울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산천의 흐름이 인간을 압도하지 않고 품어주듯, 진정한 회복은 나를 둘러싼 환경과 내가 하나가 되는 '물아일체'의 상태에서 완성된다. 인간의 불완전성을 수용하고 감정을 정화하는 이 고차원적인 훈련은 현대적 웰니스가 지향해야 할 가장 깊은 사상적 뿌리다.

여백을 남겨두는 지혜, 진정한 치유의 완성

진정한 웰니스란 무엇일까. 그것은 인생의 캔버스 위에 억지로 무언가를 빽빽하게 채워 넣으려 애쓰는 삶을 멈추는 것이 아닐까. 과거의 웰니스가 '무엇을 더 할 것인가'를 고민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비울 것인가'를 질문해야 할 때다. 한 폭의 수묵화를 바라보는 게 그 시작될 수 있다. 진한 먹색과 옅은 담채로 빽빽하게 채워진 일상, 그 사이사이에 숨 쉴 수 있는 넉넉한 여백을 허락하는 것이다. 붓을 내려놓고 먹이 번져 나가는 순리를 가만히 지켜보는 무위의 실천. 그것이야말로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길을 잃은 현대인들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우아하고도 본질적인 해답이다. 여백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연의 일부로서 온전히 치유될 수 있다.

류재춘 작가는

성균관대 미술대학에서 동양화로 학·석사를 마치고 동국대에서 미술학 박사를 받았다. K-수묵화의 대표 주자로 꼽히며 전통 수묵화는 물론 LED를 활용한 미디어아트 수묵화 등 다양한 수묵 작업을 한다. 개인전 21회, 단체기획전 200여 회를 열었고, 수묵산수화를 국내에서 처음 NFT로 발행한 바 있다. 주요 작품이 카타르 국립미술관, 중국 동북아미술관, 성균관대, 동국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동북아경제협력위원회 문화교류단장, 미술협회 국제교류위원장, 동서미술학회 부회장, 동국대 한류융합학술원 대우교수로 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현재 세종문화회관과 고양문화재단 이사를 맡고 있다.

류재춘 칼럼니스트/세종문화회관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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