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이사(왼쪽),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사진=각 사
모녀와 형제 간 경영권 갈등 이후 한미약품에는 전문경영인 체제가 들어섰다. 하지만 대주주와 전문경영인 사이에 갈등이 일었고, 그 골은 점점 깊어만 가는 양상이다. 여기에 갈등 수습에 나선 오너가(家) 송영숙 회장까지 더해져 자칫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갈등의 시작은 ‘성비위 사건’
6일 업계에 따르면 한미약품에 다시 소란이 일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봉합된 지 1년여 만이다.발단은 지난해 12월 발생한 사내 성추행 사건이다. 해당 사건 처리를 두고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과 박재현 한미약품 대표이사가 맞붙었다. 신동국 회장은 한미약품그룹 지주회사 한미사이언스의 대주주다.
박재현 대표는 신 회장이 해당 성추행 사건의 가해자를 비호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임원(A 씨)에게 박 대표가 재택근무 명령을 내렸으나 A 씨는 대표의 지시를 어기고 정상 출근했으며, 또 별도 징계 없이 자진 퇴사 형식으로 회사를 떠났다. 박 대표는 이 과정에 신 회장이 개입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박 대표가 공개한 녹취록에는 신 회장이 “A 씨가 성추행할 사람은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을 한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박 대표는 성비위 징계 무마 외에 신 회장이 회사 경영에도 부당하게 간섭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신 회장의 경영 개입과 관련해 이상지지혈증 복합신약 로수젯 원가를 낮추기 위해 낮은 품질이 우려되는 원료 사용을 지시했고, 노후화된 설비 교체 지연을 지시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내용이 외부에 알려지자 한미약품 임직원들은 지난달 23일 피켓 시위와 성명서를 통해 신 회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미약품 임직원들은 성명에서 “신동국 대주주는 성추행 피해자를 비롯한 한미약품 구성원에게 공식 사과하라”며 “이번 사태가 올바르게 해결될 때까지 침묵하지 않을 것”이라며 신 회장을 강력히 규탄했다. 그러면서 불법·부당한 경영 간섭 즉각 중단, 이사회의 재발 방지용 제도적 장치 마련 등을 요구했다.
신동국 “성비위 비호·경영 개입, 사실 아냐”
논란이 일자 신 회장은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을 둘러싼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성비위 비호와 경영 관여 논란이 ‘터무니없는 음해’라고 반박했다. 신 회장은 “해당 임원에 대한 비위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며 “징계 과정에 개입하거나 지연시킨 사실이 없다”고 했다.녹취와 관련해서는 “박 대표가 연임을 부탁하기 위해 예고 없이 방문한 자리에서 나눈 대화로, 비호로 몰아가는 것은 사실관계에 맞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경영 간섭 논란에도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그는 “전문경영인이 모든 결정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전문경영인 체제가 아니다”라며 “대주주로서 전문경영인을 견제하고 감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반박했다.
신 회장은 박 대표와 갈등을 빚는 중에 한미사이언스 주식을 취득하며 지분을 늘려갔다. 한미사이언스는 지난달 24일 신 회장이 코리포항 외 5인으로부터 의결권 있는 주식 441만32주(6.45%)를 주당 4만8469원에 장외 매수 방식으로 취득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이번 거래로 한양정밀을 포함한 신 회장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은 29.83%로 늘어난다.
이번 지분 확대로 한미사이언스와 한미약품에서 신 회장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신 회장은 오너가인 송 회장(3.84%),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9.15%),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사내이사(6.46%)보다 한미사이언스 지분에서 앞서 있다. 한미사이언스는 한미약품 지분 41.42%를 쥔 최대주주다. 개인으로는 신 회장이 한미약품 지분(7.72%)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다. 신 회장의 한양정밀도 한미약품 주식을 0.95% 갖고 있다.

송영숙 한미약품그룹 회장. /사진=한미약품
전문경영인 권한 강조 송 회장, 신 회장 저격
한미약품그룹은 경영권 갈등을 봉합하고 박 대표와 지난해 3월 취임한 김재교 한미사이언스 대표의 전문경영인 체제로 1년 동안 운영됐다. 그 결과 매출은 1조3568억 원, 영업이익 1386억 원으로 전년 대비 각각 5.7%, 40.2% 증가하며 경영 안정화와 실적 성장을 동시에 이뤘다.하지만 이번 갈등으로 전문경영인 체제가 흔들릴 조짐이다. 이에 송영숙 회장은 성비위 사건과 관련해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송 회장은 지난 5일 입장문을 통해 “성비위 사건으로 피해를 입은 분과 큰 실망을 느꼈을 한미 임직원 여러분께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송 회장은 사과와 함께 전문경영인 중심 체제 원칙을 다시 강조했다. 송 회장은 “분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모든 고객과 주주들께 약속한 ‘선진 전문경영인 체제’는 전문경영인의 역할과 권한을 존중하고 독립성을 보장하기 위한 원칙”이라고 했다.
이어 “대주주는 경영에 직접 개입하기보다 견실한 방향을 제시하고 지지하며, 전문경영인은 부여된 권한과 책임 아래 회사를 이끌어가는 것이 한미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는 특정 개인 한 사람이 전권을 쥐고 운영할 수 없는 기업”이라며 박 대표에 힘을 싣는 목소리를 냈다.
박 대표를 포함한 한미약품 이사회 구성원 중 절반이 이달 임기가 끝난다. 업계는 이달 정기 주총에서 이사회 재편을 두고 갈등이 일어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경영권 분쟁부터 대주주, 전문경영인 간 갈등은 이른 시일 내 정리되지 않을 것”이라며 “최후 1인이 남을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양현우 한국금융신문 기자 yhw@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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