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독신청
  • My스크랩
  • 지면신문
FNTIMES 대한민국 최고 금융 경제지
ad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문화가 스며든 금융, 금융이 키우는 문화

편집국

기사입력 : 2025-12-15 05:00

대기시간을 문화로 채우는 금융의 변화
작은 예술 접점이 공동체 감수성 깨워
생활 속 금융 공간이 지역문화 잇는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문화가 스며든 금융, 금융이 키우는 문화
문화예술은 산업·기술의 영역을 넘어 사회의 품질을 규정하는 핵심 요소가 됐다.

한국은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지만, 그 과정에서 전통문화의 단절과 공동체 감수성 약화라는 ‘내면의 결손’을 겪어왔다.

최근 곳곳에서 드러나는 갈등과 불안 역시 경제 중심의 국가 발전 전략이 남긴 그림자일 수 있다. 경제는 선진국에 가까워졌지만, 문화적 안정성과 성찰의 기반은 아직 충분히 축적되지 않았다.

이런 흐름 속에서 금융기관의 역할을 새롭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은행과 증권사는 전국적인 지점망, 꾸준한 고객 유입, 안정적 공간 인프라를 이미 갖춘 거의 유일한 산업이다.

단순한 금융 거래 창구가 아니라 시민이 매일 스쳐 지나가는 생활 플랫폼이다. 이 플랫폼이 문화예술과 결합할 때 파급력은 생각보다 훨씬 크다. 금융기관은 하루 수만 건의 ‘대기시간’을 만들어내는데, 이 공백의 시간을 문화로 채우는 순간 전혀 다른 사회적 가치가 탄생한다.

실제로 일상의 대기 공간이 문화공간으로 변하는 경험은 시민이 예술을 가까이서 자연스럽게 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서울 중구 장교동의 3~5평 남짓한 작은 공간에서 매일 오후 열리는 혁필 수업이 대표적이다. 102세 남상준 선생이 직접 강의하는 이곳은 주민들에게 붓을 처음 잡아보는 경험을 선물하고, 세대가 뒤섞여 대화를 나누는 작은 문화 거점이 되고 있다.

이런 사례는 금융기관이 보유한 수백·수천 개 지점에서도 충분히 재현될 수 있다. 작은 문화 접점이 쌓이면 도시의 정서가 달라지고 지역 공동체의 신뢰 자본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해외 금융권은 이미 오래전부터 문화예술을 전략적 자산으로 인식해왔다.

프랑스 BNP파리바는 지점 로비와 회의실을 신진 예술가의 갤러리로 꾸미고, 30년 넘게 전시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이는 단순한 후원을 넘어 은행 브랜드를 ‘문화적 품격을 아는 기관’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고객은 금융 거래를 위해 방문했다가 자연스럽게 전시를 관람하고, 지역 예술 생태계는 은행을 통해 지속적인 노출 기회를 얻는다.

이탈리아 우니크레딧(Unicredit)은 주요 지점마다 ‘오픈 아트 스페이스’를 설치해 청년 작가의 작품을 순환 전시하며, 판매 수익 일부를 지역 예술 프로젝트에 재투자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다. 이 모델은 유럽 문화경제학 교과서에 소개될 정도로 성공적인 사례로 꼽힌다.

금융위기 이후에도 지역사회 신뢰도를 높게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북유럽 은행들 또한 지점 내 음악 공연, 지역 작가 워크숍, 공공 디자인 전시 등을 통해 고객 경험을 강화하고 브랜드 스토리를 확장해왔다.

국내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신한은행은 본점과 대형 지점에서 정기 전시를 열어 고객 경험의 질을 높였고,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은 사내 갤러리를 운영하며 직원이 일상에서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도록 만들었다.

최근에는 지방은행들도 지역 예술단체와 협업한 팝업 전시, 전통공예 시연, ‘작가의 날’ 행사 등 생활밀착형 문화 프로그램을 시도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가 전국 지점으로 확산된다면 금융권의 문화적 파급력은 폭발적으로 커질 것이다.

고객의 몇 분짜리 대기 시간이 스마트폰 스크롤 대신 지역 작가의 회화, 전통 공예, 동네 장인의 손길을 만나는 시간이 된다면 어떨까. 분기별 소규모 전시, 작가와의 대화, 원데이 클래스가 금융기관에서 정례화될 경우, 은행과 증권사는 자연스럽게 지역 문화 생태계의 촉매 역할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판매·기부·협업 수익을 직원 복지나 지역 문화사업에 환원하는 구조까지 자리 잡는다면 ‘금융–문화 선순환 모델’은 더욱 견고해질 것이다.

특히 지방 중소도시 지점에서 이런 프로그램이 뿌리내릴 경우 수도권 중심의 문화 편중을 완화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유럽 국가들이 평범한 일상 공간을 예술이 머무는 장소로 바꿔온 데는 ‘문화는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민의 일상 속에 있어야 한다’는 일관된 철학이 있었다. 이는 경제 규모와 무관하게 생활 속 문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한국 금융권도 늦지 않았다. 거래 중심의 공간에 머물던 금융기관이 문화예술과 손을 잡는 순간, 지역사회에 내적 풍요를 공급하는 공공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다.

고객의 짧은 대기 시간이 미래의 문화 기반을 넓히는 자산으로 바뀔 때, 한국 사회는 보다 성숙한 문화 선진국으로 한 단계 더 나아갈 것이다. 금융이 문화를 품는 일은 경제와 문화의 경계를 허무는 새로운 투자이자, 우리의 일상을 더욱 깊고 풍요롭게 만드는 사회적 실험이 될 것이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데일리 금융경제뉴스 FNTIMES - 저작권법에 의거 상업적 목적의 무단 전재, 복사, 배포 금지
Copyright ⓒ 한국금융신문 & FNTIMES.com

가장 핫한 경제 소식! 한국금융신문의 ‘추천뉴스’를 받아보세요~

오피니언 다른 기사

1 정승회 코람코 대표, 리츠 넘어 개발·데이터센터로 확대 경영…‘종합 투자 플랫폼’ 승부 코람코자산신탁이 투자와 개발, 신탁을 아우르는 종합 부동산금융회사로 체질을 바꾸고 있어 눈길을 모으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정승회 코람코자산신탁 대표이사가 투자 전문성을 앞세워 리츠 중심의 사업 기반을 넓히는 동시에 대형 개발과 기업 부동산 유동화, 데이터센터 등으로 투자 영역을 확장하면서 시작됐다.정 대표는 삼성생명과 삼성자산운용 등에서 투자 업무를 담당한 뒤 2015년 코람코에 합류했다. 이후 리츠사업본부장과 리츠부문장 등을 거치며 코람코의 리츠 경쟁력 강화에 힘을 보탠 이물이다.최근 코람코가 보여주는 성장세는 정 대표의 투자 경험과도 맞닿아 있다. 코람코는 ▲리츠 ▲부동산펀드 ▲부동산신탁을 통해 약 62 2 국책銀 지방이전, 누구를 위한 것인가 지난달 29일 서울 광화문에 농협 직원들이 모였다. 농협중앙회와 주요 계열사의 지방 이전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열린 집회였다. 불과 2주 뒤인 지난 11일에는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앞 도로가 다시 사람들로 찼다. 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3대 국책은행 노동조합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여 지방 이전 반대 공동집회를 열었다.두 집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안정된 직장을 가진 금융공기업 직원들이 자신들의 생활권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대의를 외면한다는 비판도 있다.실제로 지역소멸을 막고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는 것은 국가적으로 필요한 일이다. 이를 위해 어느 정도의 사회적 비 3 돈 모이는 홍콩, 돈 불리는 싱가포르…한국은? 코스피가 한때 8000이라는 상징적 고지를 밟았다. 증권사 창구와 ETF 시장으로 뭉칫돈이 몰리고 개인 투자자의 자본시장 참여도 일상이 됐다.그러나 축포를 터뜨리기 전에 물어볼 것이 있다. “그래서 한국 자본시장은 무엇을 가장 잘하는가?”주가지수가 9000, 1만을 찍는 것과 자본시장이 국가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숫자가 커졌다고 시장의 근육까지 단단해진 것은 아니다.아시아를 보면 더욱 선명하다. 홍콩은 돈을 모으고, 싱가포르는 돈을 관리하고, 대만은 돈을 산업으로 연결했다.세 곳의 모델은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돈과 사람, 정보와 기업을 국경 너머로 연결하는 네트워크와 이를 뒷받침하는 제도와 산업
ad
ad
ad

한국금융 포럼 사이버관

더보기

FT카드뉴스

더보기
[그래픽 뉴스] ISA 대개편! 나에게 유리한 계좌는?
[그래픽 뉴스] 미국 증시 새로운 키워드 'MANGOS'
환전·로또·육아휴직까지 하반기부터 달라지는 제도 TOP11
[그래픽 뉴스] 은퇴후 30년 부모님 세대의 생존전략
[그래픽 뉴스] 퇴근 후 주차했는데 수익 발생? V2G의 정체

FT도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