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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블 형성의 배경이 된 3가지 신드롬: 은행 불사 신드롬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

기사입력 : 2025-07-2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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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버블 형성의 배경이 된 3가지 신드롬: 은행 불사 신드롬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일본 자산 버블 형성에 있어서 배경이 된 마지막 신드롬은 '은행 불사 신드롬'이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폐허가 된 경제를 재건하고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배경에는 정부 주도의 강력한 산업정책과 엄격한 금융규제에 기반한 특유의 금융시스템이 자리하고 있었다. 일본식 금융시스템의 근간에는 이른바 ‘호송선단 시스템(Convoy system)’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 시스템은 일본 정부가 민간 금융기관들을 균등하게 성장시키고 위기 상황에서는 이들 모두를 보호하는 금융정책의 기본 틀이라고 볼 수 있다.

원래 군사용어인 호송선단 시스템은 해상에서 약한 선박들을 강한 군함들이 둘러싸 보호하며 함께 항해하는 전략을 의미한다. 일본의 금융과 관련한 호송선단 시스템은 금융부문 내에서 경쟁을 억제하고 낮은 금리의 자금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광범위한 금융규제들의 종합세트라고 볼 수 있다.

1950~60년대 고도성장기 동안 일본 정부는 은행 중심의 금융체계를 강화하고 은행 간 경쟁을 억제하는 대신 안정적인 자금 공급을 통해 전략 산업 육성에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이를 위해 재무성은 인허가권, 금리 규제, 대출 할당 등을 통해 은행을 포함한 모든 금융기관들을 직접 규제했는데 규제의 핵심목표는 금융기관들끼리의 경쟁을 억제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줬다.

호송선단 시스템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정부 특히 재무성이 중심이 되어 모든 은행들을 동일한 규제 하에 두고 취약한 은행이 탈락하거나 파산하지 않도록 지원해 은행들끼리의 경쟁을 억제하며 이들 모두가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유도하는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부실한 은행이 도태되는 것을 방지할 뿐 아니라 선두 은행들의 독주 역시 견제하는 기능을 갖춘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은행시스템에 대한 최종 수호자인 재무성은 개별은행의 생존을 위협하는 모든 문제를 적기에 파악해 시정조치를 통해 보호해 주고 은행은 가계의 저축을 전략산업에 집중적으로 대출해 주는 역할을 담당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은행산업을 등급별로 나누고 영업지역을 세분화해 직접 관리했으며 주요 기업들을 메인뱅크 중심으로 계열화함으로써 산업 전반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했다. 당시 일본의 은행들은 적자생존 원칙에 입각한 경쟁적 민간기업이라기보다는 공공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으로 취급되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은행들을 하나의 함대처럼 관리하면서 부실 은행도 적극 보호함으로써 금융시스템 전체의 안정을 최우선으로 삼았다. 이러한 정부의 세심한 보호 하에 은행은 단 한번도 파산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호송선단 시스템에서 은행들 간에 경쟁을 억제하는 규제들 중에서 은행 영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전략산업에 대한 저금리 자금을 공급하기 위한 예금금리에 대한 규제였다. 저금리로 인해 은행예금이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당국은 예금금리 규제의 실효성을 유지하려고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등의 금리도 철저히 규제했다.

재무성은 금리 규제뿐만 아니라 금융상품, 업무영역, 대출결정 등 거의 모든 분야에 대한 규제를 전담했다. 이와 같은 규제 환경에서는 가계가 은행예금 외에 선택할 수 있는 투자 수단이 제한적이었고 자본시장이 규제로 인해 충분히 발전하지 못한 탓에 기업들 역시 주로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밖에 없었다.

예금금리 규제로 인해 은행들 간의 수신 경쟁은 매우 제한적이었으며 새로운 금융 상품도 재무성의 승인이 필수적이어서 모든 은행이 동시에 도입하도록 승인을 해주는 것이 관행이었다. 은행대출의 배분에 있어서도 재무성이 직접 개입해 특정 전략산업에 대해 자금을 우선적으로 배분했다.

모든 은행이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재무성은 신규 은행 진입과 지점 확장을 철저히 규제하며 경쟁을 제한했다. 재무성이 강력한 규제 권한을 행사했고 은행에서는 주주의 영향력이 미약했기 때문에 경영진은 주주보다는 정부의 행정지도와 규제에 더 순응하는 경향을 보였다. 대부분의 은행 주식을 보유한 주체들이 상호지분보유(cross-shareholding) 관계에 있는 기업들이거나 실질적 이해관계자가 아닌 보험가입자기 명목상 주주로 있는 상호회사형 생명보험사들이었기 때문에 주주에 의한 은행 경영진 감시는 매우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호송선단 시스템 아래에서는 예금자와 다른 이해당사자들이 정부가 어떤 상황에서도 은행 파산을 막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일본은행 부총재를 역임한 나카소 히로시에 따르면 이러한 은행시스템은 일본의 지속적인 경제성장에 기여할 수 있었으며 경제가 안정적인 성장을 지속하는 한 시스템의 안정성은 유지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대기업들의 회사채 발행한도도 엄격히 배분되었다. 호송선단 시스템 아래에서는 금융기관들이 투자자 보호와 시장 신뢰 유지를 위해 공동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는데 회사채의 경우 부도 회사채는 신탁은행이 매입하고 발행 단계에서 회사채에 대한 은행 보증을 통해 부도 위험을 차단하도록 했다.

은행에서 회사채를 보증받기 위해서는 담보가 반드시 필요했고 회사채 발행한도도 담보원칙에 입각해 배분되었다. 이러한 회사채 발행한도 배분방식은 대규모 공장, 공장부지, 생산시설 등 담보 자산을 많이 보유한 중화학공업에게 유리하게 배분되었다. 발행금리가 규제되는 상황에서 회사채 발행한도를 확보하는 것은 장기 저리의 자금을 배정받게 되는 엄청난 특혜였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호송선단 시스템 하에서 일본의 은행산업은 대형은행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고 높은 진입장벽으로 인해 경쟁이 제한적인 상태였다. 일본은행에 따르면 1990년대초 기준으로 11개의 도시은행, 7개의 신탁은행, 3개의 장기신용은행 등 21개의 대형은행들이 은행의 자산 73%를 차지하고 있었다. 더욱이 1970년대 초에 설립된 주센(주택금융전문회사의 약칭)은 이들 대형은행들이 자금을 제공하고 관리했다.

이러한 폐쇄적인 산업구조와 대형은행 중심의 시장 지배로 인해 일본의 은행들은 대출 포트폴리오나 대차대조표, 수익성과 관련된 정보 등을 충분히 공시하지 않는 관행이 고착화되었다. 하버드 대학의 벤저민 프리드먼(Benjamin Friedman)은 은행산업의 미흡한 공시 관행을 근거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5년까지 손실을 공시한 은행이 전무했다는 점에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실제로 손실이 발생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손실 발생 사실이 외부에 알려질 경우 불이익을 초래할 수 있어 은행들이 이를 은폐하려 했으며 공시 의무가 약해 이러한 은폐가 가능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은행산업 전체와 정부와의 거시적 관계인 호송선단 시스템의 하부구조에는 기업과 은행 간의 장기적 관계를 뒷받침하는 '메인뱅크 시스템(main bank system)'이 떠받치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일본의 은행시스템은 은행과 고객 간의 친밀한 관계가 자금중개에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메인뱅크 시스템은 일본 기업들이 은행과 오랜 신뢰 관계를 바탕으로 긴밀히 협력함으로써 경영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기업은 여러 은행과 거래할 수 있었지만 그 중 하나인 메인뱅크가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메인뱅크는 단순한 자금 제공자를 넘어 기업의 재무구조를 감시하고 필요한 경우 구조조정이나 경영개선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메인뱅크 시스템은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거래 관계를 바탕으로 기업이 단기적인 성과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도 장기적인 투자를 추진할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와도 잘 조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메인뱅크는 경기 침체나 기업 위기 상황에서 적극적으로 자금을 공급하고 경영에 개입함으로써 연쇄적인 부도 사태를 방지하고 경제 전반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이와 함께 메인뱅크 시스템은 자금의 공급자와 차입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 문제와 관련된 어려움을 줄여주는 장점이 있다는 것이 많은 학자들의 견해였다. 구체적으로 메인뱅크는 거래 기업과의 장기적인 관계 유지를 통해 차입 기업을 긴밀히 모니터링하고 기업의 리스크를 정확히 통제하며 차입자가 재무위기에 처했을 때 문제해결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이러한 밀착된 관계 중심의 금융은 차입자에 대한 정보나 대출 자산의 질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경쟁사에 정보 노출을 꺼리는 기업들 사이에서 선호도가 높았다고 한다.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는 법적으로는 주주 중심 원리가 명확히 반영되어 있었지만 실제 운영에서는 주주나 시장보다 메인뱅크가 실질적인 감시자 역할을 해왔다. 메인뱅크는 상호출자 관계를 통해 기업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었고 결제계정의 결제계정 거래 흐름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함으로써 기업의 재무건전성을 지속적으로 점검할 수 있었다. 기업이 재융자 없이는 존속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면 메인뱅크는 주주로서의 지위를 활용해 경영자 해임과 같은 조치를 취하거나 심지어 기업 청산 여부까지 판단했다.

호송선단 시스템의 중요한 특이점 중 하나는 은행이 채권자와 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고객 기업 주식을 최대 5%까지 보유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는 점이다. 반독점법에 따라 은행은 하나의 국내 기업에 대해 5%를 초과하는 주식 보유가 금지되었으나 기업당 보유 지분이 5%를 넘지 않는 한 은행 전체의 주식 보유 총액에는 제한이 없었다.

은행들이 단순한 투자 목적 이외에 주식을 보유한 배경에는 2 가지 목적이 있었다. 그 목적 중 하나는 상호출자를 통해 안정적인 주주 관계를 구축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요 대출 고객과의 긴밀한 거래 관계를 유지하려는 데 있었다.

또 다른 특이점은 당시 은행의 특정 기업에 대한 신용 노출에 대한 규제는 대출과 보증에만 적용되었으며 주식·채권 등 유가증권 투자나 장부외 거래는 그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규제의 허점을 이용해 은행들은 대기업에 대한 대출 외에도 그들이 발행한 유가증권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추가적인 신용을 제공할 수 있었다.

당시의 일본의 은행 시스템은 이중의 안전장치를 통해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기업이 위기에 처할 경우 메인뱅크가 구제에 나섰고 은행이 위기에 빠질 경우에는 정부가 개입하여 지원하는 구조였다.

호송선단 시스템은 이러한 메인뱅크 체제를 보완하며 은행과 기업 간 장기적 대출 관계의 안정성을 강화하는 핵심 장치로 기능했다. 즉 메인뱅크 시스템이 개별 기업의 리스크를 은행이 부담하는 구조였다면 호송선단 시스템은 은행 전반의 리스크를 정부가 감당하는 구조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호송선단 방식의 금융시스템 하에서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은행조차도 정부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되었으며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요 은행이 단 한 번도 파산한 적이 없다는 사실은 은행은 결코 파산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드롬을 강화했다고 볼 수 있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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