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은행연합회는 이달 말 정기 이사회를 열고 차기 회장 선임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번 이사회에서는 회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고 세부 일정과 구체적인 절차 등을 논의하게 된다. 은행연합회 이사회는 회장이 의장을 맡고 비상임이사로 참여하는 시중은행, 특수은행, 지방은행 등 11개 회원사 은행장으로 구성된다. 이사회가 회추위 역할도 맡는다. 이사회는 구성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성립하고, 구성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안건을 의결한다.
회추위는 내달 초부터 2~3차례 회의를 통해 차기 회장 후보군을 좁힐 예정이다. 각 은행장은 1인당 1명씩 후보를 추천하고 자질·능력·경력 등에 대한 검증 및 논의를 거쳐 최종 후보를 선정한다. 이후 이사회에서 최종 후보를 의결하면 23개 정회원사가 참여하는 회원 총회에 올려지는데, 총회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어야 차기 회장이 확정된다. 각 정사원의 표결권은 1개다.
지난 2020년 12월 취임한 김광수 현 회장의 임기는 내달 30일 만료된다. 은행연합회장은 은행권을 대표한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자리다. 임기 3년이 보장되는 데다 연봉이 7억원에 육박하는 고액이기 때문에 새 회장 선임 시기가 오면 물밑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다.
김 회장의 연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는 평가다. 은행연합회 정관상 회장 연임은 1회 가능하지만 실제 연임한 사례는 드물다. 역대 은행연합회장 13명 가운데 연임에 성공한 인물은 1989년부터 3·4대 회장을 역임한 정춘택 전 회장 한명뿐이다. 김 회장 역시 일찌감치 대내외적으로 연임 도전에 선을 그어왔다.
은행연합회장에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자격 요건이나 이력은 따로 없지만 역대 회장을 보면 금융지주 회장·은행장 등을 거쳤던 이들이 주를 이룬다. 1984년 출범한 은행연합회는 김준성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신병현·정춘택·이상철·이동호·류시열·신동혁·유지창·신동규·박병원·하영구·김태영·김광수 회장까지 약 40년간 총 13명의 수장을 배출했다. 이들 회장 가운데 금융지주나 은행 경영진 경력이 없는 사람은 없다.
이 중에서도 관료 출신이 대다수다. 은행장들은 관료 출신 은행연합회장을 선호해왔다. 은행연합회장이 정부와의 가교역할을 하는 만큼 정부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은행권의 이해관계를 제대로 대변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장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금융당국 수장들과 현안을 갖고 머리를 맞대며 이견을 조율한다.
관료 출신이라고 모두 은행연합회장을 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 고위 관료나 은행장 등을 거쳐 풍부한 경험과 연륜을 갖춘 인물이 낙점돼왔다. 관료 중에서는 경제부총리 출신이나 장관급 인사가 선임되기도 했다.
김준성 초대 회장을 비롯해 신병현(2대), 정춘택(3~4대), 이동호(6대), 류시열(7대), 유지창(9대), 신동규(10대) 전 회장은 한국은행이나 산업은행 등에서 총재 또는 부총재 등을 지낸 관료 출신으로 분류된다. 순수 민간 출신 인사는 역대 은행연합회장 13명 중 4명에 불과하다. 이상철(5대) 전 국민은행장, 신동혁(8대) 전 한미은행 회장, 하영구(12대) 전 씨티금융지주 회장, 김태영(13대) 전 농협중앙회 부회장 등이다. 박병원(11대) 전 회장의 경우 재정경제부 차관과 우리금융지주 회장을 역임해 민관을 두루 거친 인사다.
금융권에서는 앞으로 선출될 차기 회장도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관료 출신, 은행장 경험, 지역색 등의 조건이 맞는 인사가 선임될 것이란 전망이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요 금융지주 회장과 은행장 등이 모두 교체된 데다 최근 정부와 금융당국이 은행권 과점 체제 해소와 상생 금융 확대 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은행연합회에 관 출신 인사를 심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가 관치 금융 논란을 의식해 개입을 최소화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관료 출신이 은행연합회 회장을 맡을 경우 ‘관피아’라는 수식어는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로 관피아 낙하산 인사를 비판하는 여론이 일자 은행연합회장을 비롯한 주요 금융협회장 자리가 민간 출신으로 대거 교체됐다.

▲ 윤종원 전 IBK기업은행장
민간 출신으로는 주요 금융지주에서 회장을 지냈거나 용퇴를 앞둔 최고경영자(CEO) 등이 물망에 오르고 있다. 먼저 최근 KB금융지주 회장 인선에서 양종희 회장 내정자와 함께 최종 후보 3인에 들었던 허인 KB금융 부회장이 후보군으로 꼽힌다. 허 부회장은 국민은행 설립 이래 사상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한 인물이다. 지난해 KB금융 부회장에 올라 현재 글로벌부문장 겸 보험부문장을 담당하고 있다. 허 부회장은 경남 진주 출생으로 대구고를 졸업해 정부와 접점이 많다는 점이 부각되고 있다. 서울대 법학과 80학번으로 같은 과 79학번인 윤 대통령의 1년 후배이기도 하다.
올 3월 퇴임한 손병환 전 NH농협금융지주 회장도 거론된다. 손 전 회장은 1990년 농협중앙회에 입사한 뒤 조직·인사제도혁신단 팀장, 기획조정실 팀장, 창원터미널지점장, 농협은행 스마트금융부장, 농협중앙회 농협미래경영연구소장, 농협금융지주 사업전략부문장, 경영기획부문장 등을 지내며 농협 내 대표적인 기획·전략통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2020년 3월 농협은행장에 오른 뒤 2021년 1월 내부 출신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농협금융 회장에 취임해 견조한 실적 성장세를 이끌었다. 현재 KB국민은행 사외이사를 지내고 있다.

▲조용병 전 신한금융지주 회장(사진 왼쪽),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적극적인 인수합병(M&A)과 실적 개선으로 KB금융을 리딩금융그룹으로 도약시키며 3차례 연임에 성공했지만 최근 용퇴를 결정했다. 윤 회장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거취에 대해 “아직 깊게 생각해보지 못했다”며 “(임기가) 2개월이 남았으니 더 생각해보겠다”고 말했다.
조 전 회장은 1984년 신한은행에 입행해 그룹 회장에 오를 때까지 신한금융 한 곳에 몸담은 정통 ‘신한맨’이다. 2017년부터 6년의 회장 임기 동안 우수한 재무·비재무적 성과로 신한금융을 명실상부한 국내 굴지의 금융지주사로 입지를 굳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초 금융권에서는 조 전 회장의 3연임을 유력시해왔으나 지난해 말 전격 용퇴를 결정했다.

▲김도진(사진 왼쪽), 조준희 전 IBK기업은행장
김 전 행장은 1985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뒤 2016년 말 기업은행장에 올라 3년간 임기를 지냈다. 오랜 기간 대관 업무를 수행하며 정무적 감각과 폭넓은 인맥을 갖췄다는 평가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