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3일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 개선 방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금융위(2023.7.5)
이미지 확대보기금융위원회는 5일 제13차 정례회의에서 계열사인 벤처펀드의 비상장 지분증권에 대한 은행의 취득 한도를 은행 자기자본의 0.5%에서 1%로 상향하는 내용의 은행업감독규정 일부개정규정안을 의결하고 즉시 시행한다고 5일 밝혔다.
개정안은 지난 4월 금융위와 중소벤처기업부가 공동으로 발표한 '혁신 벤처·스타트업 자금지원 및 경쟁력 강화 방안'의 후속 조치다. 기존에는 은행이 계열사인 벤처펀드(벤처투자조합·신기술사업투자조합)의 비상장 지분증권을 취득할 경우 자기자본의 0.5% 범위 내에서만 가능했다. 이에 일부 은행의 경우 취득 한도에 근접해 추가적으로 벤처펀드에 출자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개정안 시행으로 은행은 계열사인 벤처펀드의 비상장 지분증권을 상장 지분증권과 동일하게 자기자본 1% 범위에서 취득할 수 있게 된다. 금융당국은 이를 통해 은행권의 벤처펀드 투자가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벤처투자 금액은 7758억원이다.
금융당국은 은행 수익원 다변화를 위해 자산관리 서비스도 활성화한다. 우선 은행의 투자자문업을 활성화하기로 했다. 마이데이터를 통해 공유된 고객정보를 분석해 맞춤형 상품 추천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기존에는 부동산 관련 자문만 가능했다면 앞으로는 금융상품 자문도 허용할 방침이다. 은행의 투자자문업은 2021년 10월부터 허용됐지만, 현재 등록 은행은 국민은행 한 곳뿐이다.
은행은 그동안 부동산에 한해 투자자문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자본시장법상 투자자문업의 대상은 부동산과 예치금, 증권, 파생상품 등 다양하게 규정하고 있지만 금융당국이 업권 간 영역 충돌 우려로 은행권에 부동산 투자자문만 허가해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초 국민은행이 국내 은행 중 처음으로 금융당국으로부터 투자자문업을 허가받아 금융상품을 대상으로 자문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금융당국은 신탁 가능 재산 확대와 전문기관 위탁 허용 등 신탁업 혁신도 추진한다. 고객 특성에 맞는 종합재산관리 서비스 출시를 지원할 계획이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신탁 가능 재산을 확대하고, 병원이나 회계법인 등 비금융전문사와 협업해 다양한 신탁상품이 나오도록 지원하겠다”며 “올해 하반기 내 국회에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투자일임 허용 방안의 경우 투자자문·신탁업 등을 통한 자산관리서비스의 성과를 봐가며 추후 검토하기로 했다. 은행권은 투자일임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에 한해 허용되고 있어 은행 고객들이 원스톱 종합자산관리서비스를 제공받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투자일임업을 전면 허용해줄 것을 건의해왔다. 전면 허용이 어렵다면 공모펀드와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투자일임업에 한해 추가 허용해 달라는 입장이다.
은행권은 투자일임업이 은행권에 허용되면 기관·고액자산가 또는 상품 판매 중심의 투자일임 서비스를 벗어나 소액투자자·은퇴자·고령자 등을 포함한 모든 고객들에 본인의 니즈에 따른 맞춤형 투자일임 서비스가 제공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반면 금융투자협회에서는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에 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증권업계의 핵심 업무를 은행권의 안정적 수익 확보만을 이유로 허용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은행의 투자일임업 허용시 중소 증권사의 경영상 어려움이 가중되고 증권업계의 다양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는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김 부위원장은 지난 5월 “특정 업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판단할 것이 아니라 ‘동일 기능–동일 리스크–동일 규제’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며 “은행권에 대한 투자일임업 허용에 따른 리스크가 무엇이고 이를 어떻게 관리·해소할지 여부를 우선 검토하고, 국민들에게 어떤 금융편익이 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비금융업 진출 길도 열어준다. 금융과 비금융 간 융합을 통해 새롭고 혁신적인 서비스 출현을 지원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개선하기로 했다. 금산분리 규제 완화 등으로 은행의 비금융업 수행을 합리적 범위 내에서 허용할 예정이다. 오는 3분기 중 세부 방안을 마련한다.
은행권의 해외 진출도 확대된다. 국내 은행의 해외 점포 수는 지난해 말 기준 207개다. 지난 5년간 해외 점포 수는 약 9% 늘었다. 해외 점포 당기순이익은 2021년 기준 11억7000만달러로 은행권 총 당기순이익(16조5000억원)의 10% 미만에 그쳤다.
금융당국은 은행 해외 지점이나 해외 자회사가 현지 금융회사와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해외 영업활동을 제한하는 규제를 개선하기로 했다. 김 부위원장은 “국내 은행들이 외국 은행들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도록 국내 규제로 인한 해외 비즈니스 제약을 없애겠다”며 “관련 개선 방안은 이달 중 발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제도 개선은 국내 은행의 수익 구조가 글로벌 은행에 비해 대출금리와 예금금리 차이에 기반한 이자이익에 치우쳐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최근 5년간 평균 이자수익 비중을 보면 국내 은행은 88%, 미국 은행은 70% 수준이다. 국내 은행의 총이익 중 이자 이익 비중은 2018년 말 88%에서 2022년 말 94.3%로 크게 높아졌다.
국내 은행 비이자이익의 대부분은 수수료에서 발생하고 있다. 외환수입수수료 등 기타업무 관련 수수료와 펀드·방카판매수수료 등 업무대행수수료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외환수입수수료는 대형증권사·빅테크 등과의 경쟁 심화로 점차 위축될 것으로 예상되고, 펀드·방카 수수료의 경우 고객과의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어 수수료만으로 비이자수익을 늘리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은행의 경우 ROA, 순이자마진 등 수익성 지표도 미국 은행에 비해 낮은 상황이다. 지난해 말 기준 미국 5대 은행 모두 ROA 0.9% 이상, NIM 2.3% 이상인 반면 국내 5대 은행은 ROA 0.7% 이하, NIM 1.8% 이하로 나타났다.
금융당국은 이자이익에 치우친 수익구조가 경기변동·시장금리 변동에 상당한 영향을 받게 돼 은행 건전성 확보·유지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우려가 있다고 보고 있다. 김주현닫기김주현광고보고 기사보기 금융위원장은 “금융지주회사 제도 개선과 함께 디지털경제로의 전환 등에 발맞춰 지난해부터 추진하던 부수업무 제도 개선 등 금융혁신 노력, 이번 은행업 경쟁 촉진 방안 등이 조화롭게 추진되면 금융산업이 글로벌 플레이어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은행권은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벤처투자 확대, 신탁업 혁신, 투자자문업 활성화 등의 방안을 통해 비이자수익을 적극 확대하겠다는 계획이다. 또 현재 혁신금융서비스를 통해 비금융업을 제한적으로 영위하고 있는데, 향후 금융-비금융 융합 촉진 방안이 마련되면 사업모델을 보다 다각화하기로 했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