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주장하고 있지만, 기재부나 중기부 쪽에선 소급은 어렵다는 완강한 입장을 드러냈다.
2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가 개최한 입법청문회엔 정부의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피해를 본 노래연습장, 식당 사장 등이 나와 피해 보상 확대를 주장했다.
하지만 손실보상법안을 발의한 지 3달이 지나 열린 입법청문회에선 입장차만 뚜렷하게 확인됐다.
■ 피해 입은 소상공인들 '소급적용' 강력 주장
전날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내 소상공인 단체 대표들은 "손실보상 소급 입법은 헌법 제23조에서 정한 국민의 재산권 보호를 실천하는 것"이라며 소급 입법은 당연하다고 입을 모았다.
집합 금지와 제한은 코로나19 확산 억제라는 공공의 필요에 의한 재산권 제한이기에 국회는 손실보상 입법의 의무가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정부 방침에 협조해서 큰 손실을 입은 만큼 소상공인들의 피해에 대한 '소급' 보상은 당연하다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소상공인 피해자들을 지원하기 위한 변호사들도 손실보상의 정당성을 항변했다.
변호사들은 헌법재판소가 판시한 내용을 거론하면서 "공익 목적으로 이미 형성된 재산권을 전면적 또는 부분적 박탈하거나 제한하면 공공이 손실보상을 해야 한다"는 논리로 보상의 정당성을 웅변했다.
다만 국회의원과 정부 관계자를 제외하면 피해를 입은 사람, 그리고 이들을 변호하려는 사람이 참석했기 때문에 손실보상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클 수 밖에 없기도 했다.
■ 국회의원, 여야 막론하고 '소급적용' 목소리 높여
국회의원들도 청문회에 참석한 소상공인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재난지원금과 함께 손실보상금을 주는 문제, 즉 중복 지원과 관련해선 보상과 지원이 엄연히 다르다는 지적들도 나왔다. 통 크게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다.
양금희 국민의힘 의원은 "손실보상은 영업이익으로 하면 안되고 매출 위주로 책정해야 한다"면서 현실적인 보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정부 관계자들이 '소급 적용'의 어려움을 얘기하자, 여당과 정부가 왜 딴 목소리를 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도 있었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은 "여당은 연일 손실보상 소급적용을 얘기하는데 정부는 꿈쩍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의 엇박자가 헷갈린다"면서 지금이 레임덕 상황이냐고 물었다.
여당 의원들도 국민의힘 의원들의 피해보상 '소급' 주장에 힘을 보탰다. 국가가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는 주장이 난무할 정도였다.
특히 적극적인 재정 활용을 얘기해온 여당 의원들 사이에선 '재정건전성'을 따지는 정부의 태도를 문제삼기도 했다.
양이원영 민주당 의원은 "국가부채비율을 10%포인트만 올리면 200조원의 여유자금이 생긴다"면서 힘든 일이 생기면 적금을 깨는 게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 '소급적용' 안 된다는 기재부와 중기부
중기부는 집합금지와 영업제한 소상공인을 대상으로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손실액을 추정한 결과 68만개 업체에 대해 3조3000억원의 손실이 있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 금액을 합하면 이보다 큰 6조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러자 의원들은 '비현실적인 수치'라고 주장하면서 재정당국이 안이한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국회가 신속히 소급을 포함한 손실보상에 나서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기재부는 '형평성' 문제를 거론하면서 완고하게 소급적용 반대 목소리를 냈다.
최상대 기재부 예산실장은 "보상이 충분치 않은 점은 인정한다"면서도 소급 적용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최 실장은 "작년에 3차례 대책을 하면서 현금성 지원이 13조원에 달했고, 18조 가운데 소상공인에게 80%를 지원했다"면서 형평성 문제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완전한 손실보상보다, 상당부분 지원은 하지만 방역이라는 공익 목적 달성을 위한 부분은 (소상공인도) 분담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특히 소상공인들 사이의 형평성 문제 뿐만 아니라 농어민 등 비소상공인과의 형평성 문제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코로나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특정 소상공인들에게만 적극 지원하는 문제는 사실 만만치 않다. 아울러 소급 적용을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도 논란이 될 수 밖에 없다.
손실보상 소급 여부는 최종적으로 국회의 입법적 결정사항이긴 하다.
최 실장은 그러나 "법 적용은 향후 적용되는 체계가 맞다"는 주장을 빠뜨리지 않았다.
조주현 중기부 소상공인정책실장 역시 소급 적용에 난색을 표명했다.
조 실장은 "손실보상 소급 적용은 곤란하다"는 입장과 함께 "추계만으로 앞으로 손실보상을 어떻게 운용할지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의원이 '대통령이 소급적용 하라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자 조 실장은 "손실보상 소급적용에 대한 대통령의 지침을 받은 바 없다"면서 "(소급적용이) 불가능하다가 아니라 곤란하다는 말씀을 드리는 중"이라고 했다.
■ 상당히 빠른 재정집행 속도
2021년 본예산 관리대상 사업의 집행실적은 상당한 속도를 내고 있다.
기재부에 따르면 4월말 기준으로 중앙재정은 343.7조원 중 156.0조원(45.4%), 지방재정과 지방교육재정은 각각 243.0조원 중 94.4조원(38.8%), 19.1조원 중 9.7조원(50.7%)을 집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역대 가장 빠른 수준이다.
재정지원 일자리 분야의 경우 4월까지 관리대상 예산 13.6조원 중 7.9조원(57.8%)을 집행했다. 이는 전년동월에 비해 10%p나 빠른 집행률이다.
3월말 확정된 1차 추경 역시 원활하게 집행되고 있다. 버팀목자금 플러스 등 현금지원사업(7.3조원)은 5월 19일 기준으로 357만명에게 5.0조원(68.7%)을 지급했다.
코로나19 3차 확산으로 매출이 감소한 소상공인 283만명에게 버팀목자금플러스 지원금 4.6조원(68.8%)을 지원했으며, 특고·프리랜서 67.1만명, 택시기사 6.3만명, 버스기사 1.0만명에게 0.4조원의 지원금을 지급했다.
정부는 또 연례적으로 발생하는 이월 및 불용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예산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쓰면서 경기부양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안도걸 기재차관은 지난 20일 "2021년 총지출(558.0조원)의 이·불용 1%p를 축소시킬 수 있으면 5.6조원 규모의 재정이 투입되게 되는 것으로 한 차례의 추경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면서 "최근 10년 중 가장 높은 수준의 집행률을 보이고 있는데, 이처럼 빠른 속도의 재정집행 추세를 이어가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4월까지 중앙재정 집행현황을 보면 관리대상 예산 343.7조원 중 156.0조원, 즉 45.4%에 달하는 집행을 실시했다.
■ 예상 대폭 상회하는 올해 세수…세금 대폭 걷혀 향후 국채물량 우려 감소 vs 포퓰리즘 기반으로 재정정책 읽어야
정부가 평소보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돈을 쓰고 있는 가운데 세수는 예상보다 대폭 늘었다. 국가채무 급증이 우려되던 상황에서 다행스러운 일로 평가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올해 1분기 정부가 작년보다 더 거둔 세수는 19조원에 달한다. 이러다보니 올해 세금 목표 중 실제 걷은 금액의 비율을 의미하는 진도율은 작년보다 6.9%p나 높은 31.3%에 달했다.
금년 1분기 소득세는 28.6조원으로 작년보다 6.4조원이나 더 걷히는 등 정부의 예상보다 더 많은 세금이 걷히고 있다. 지금의 분위기가 이어지면 올해 국세수입이 전망치인 282.7조원을 크게 웃돌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1분기에 적극적으로 지출을 하다보니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49조원에 달했다. 1분기 총지출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17.4조원이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향후 정부와 여당이 추경과 관련해 어떻게 방향을 잡아갈지 주목된다. 지난해 4차례 추경에 든 돈은 66.8조원에 달하고 올해 1차 추경엔 14.9조원에 달했다. 올해 558조원에 달하는 역대급 예산편성 이후 14.9조원에 달하는 1차 추경이 덧붙여진 상태다.
정부가 얼마나 돈을 더 쓰고 얼마나 적자국채를 찍으면서 나라빚을 관리할 지는 의구심이 남아 있다. 이자율 시장도 정부 정책에 따른 미래의 추경이 어떻게 방향을 잡을지 주시하고 있다.
A 증권사의 한 채권딜러는 "내년 대선이 있는 만큼 당연히 여당은 돈을 더 쓰고 싶어 한다. 손실보상 소급 문제도 남아 있으니, 얼마나 돈이 들어갈지 애매하다"면서 "정치인, 국회의원들의 파퓰리즘 경쟁이 도를 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라살림의 방향을 잡을 수 있을지 조차 알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치인들은 표를 위해선 뭐든 할 수 있다. 문재인 정권이 레임덕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여당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뭐든 하려고 할 것"이라며 "당장은 여야 정치인들 모두 손실보상금으로 인심을 쓰려는 작태가 걱정스럽다"고 했다.
지금 당장의 일은 아니지만 여당의 대통령 후보로 꼽히는 3인은 벌써 현금지원 공약을 통해 한줌의 인기라도 더 얻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청년 세계여행 경비 1천만원 지급, 정세균 전 총리는 20살 성년 기념 1억원 지급, 이낙연 전 대표는 군대 전역자 3천만원 지급 등을 거론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채권시장 일각에선 올해 세수가 예상을 크게 웃도는 수준으로 걷히고 있는 만큼 향후 국채물량 부담은 예상보다 덜 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기도 한다.
B 증권사의 한 딜러는 "집값 폭등으로 양도세가 많이 걷히는 등 세금이 당초 예상보다 훨씬 더 걷히고 있다"면서 "시장이 미래 추경에 대한 부담을 상당부분 반영해 놓은 가운데 향후 국채 물량은 우려에 못 미칠 수 있다"고 내다봤다.
C 증권사의 한 딜러는 "손실보상 소급 행위는 냉정하게 볼 때 매표행위라고 본다. 재정이 역할을 해야하는 것은 맞지만, 이 시점에서 옛날 것까지 보상해달라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면서 "다만 엄청난 쪽수를 차지하는 자영업자들 표가 필요하니 정치인들의 포퓰리즘은 불가피해 보인다"고 말했다.
정부 공무원들의 말대로 과거의 일까지 '형평성'을 따져서 돈을 주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봤다. 하지만 향후 정치가 재정을 지배하는 상황은 계속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손실보상 소급 적용시 추경 외엔 답이 없어 보이는데, 지금부터는 정치 스케줄을 기준으로 재정정책을 이해할 필요도 있다. 지금 군불을 떼고 9월 추석 전에 표결을 하고 대선 스케줄에 맞춰 연말 정도에 돈을 지급하는 식으로 대응할 여지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