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주 초 국회 업무보고에서 이주열 총재는 완화적 정책을 지속할 필요성을 거론하면서 가계부채 급증과 아파트값 급등과 같은 문제에 대해 '불가피하다'는 식의 입장을 보인 바 있다.
총재의 경기에 대한 우려가 컸던 탓에 금융안정까지 신경 쓸 여력이 부족하는 인식을 안겼다. 다시 무엇보다 당시 성장률에 대한 우려가 커 보였다.
국회 업무보고 과정에서 이 총재는 '성장률 전망을 -1% 아래로 낮추느냐'는 질문에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한 바 있다.
실제 이날 한은이 발표한 전망치는 -1.3%로 발표됐다.
하지만 경기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한발 더 나아간' 완화적 조치와 관련해선 적극적인 시그널을 보이지 않았다.
국회 발언 수준이 '디폴트값'이 돼 버리자 채권시장의 롱 플레이어들은 한은 총재에 대해 실망감을 표명했다.
■ 금리인하 열려 있다고 했지만...'신중'이란 말에 귀에 더 잘 들어온 날
금리 추가 인하와 관련해선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고 있다.
국내 기준금리가 0.5%인 상황에서 제로금리를 선택한 기축통화국보다 정책금리 레벨이 높아야 한다는 게 한은의 입장임을 고려할 때 금리 인하 여력은 한 차례(25bp)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A 증권사의 한 딜러는 "한은이 도비시하게 나온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었다"면서 "하지만 기대치가 워낙 높다보니 이날 이벤트는 다소 매파적으로 느껴질 정도"라고 평가했다.
이주열 총재는 경기 불확실성이 매우 크다는 점을 거론하면서 금리 여력도 있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그러나 조건을 달았다.
총재는 "금리정책 활용 여지 있다. 인하도 대응할 여지 있다"면서도 "더 낮출지 여부는 기대되는 효과와 부작용을 같이 따져보면서 신중히 접근할 것"이라고 밝혔다.
채권시장에선 안 그래도 금리인하 여력이 한 차례밖에 없는 상황에서 총재의 '신중'이라는 말이 귀에 꽂혔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김상훈 KB증권 연구원은 "7월 회의에선 성장률 전망 하향 가능성으로 비둘기파적으로 해석됐지만, 이번엔 ‘추가인하 신중’ 때문에 매파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코로나19 재확산은 금리 하락 요인이지만 통화정책보다는 재정정책을 고려할 때 단기 금리의 추가 하락은 제한되고 장기 금리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면서 "다만 한은 매입 기대 등도 있어 전반적인 박스권 등락 대응을 유지한다"고 덧붙였다
■ 단순매입...변동성 커지면 한다는 반복되는 발언이 오히려 부담으로
이날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국고채 매입을 적극적으로 실시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런 입장은 이미 여러 번 밝힌 바 있어 좀더 구체적인 조건이 나오지 않으면 시장이 강해지기 어려웠다.
이 총재는 "국채매입시 장기금리 변동성, 크레딧 스프레드, 장단기 스프레드, 유통시장 매매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 롱 플레이어들 중엔 한은이 상황을 보면서 대응하겠다는 한 데에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B 은행의 한 딜러는 "한은이 단순매입 카드를 또 아꼈다"면서 "사실상 금리가 급등하지 않는 이상 단순매입이 힘들어졌다는 식의 인상을 줬다"고 말했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금통위의 핵심 관전 포인트는 성장률 전망치 하향 조정 정도 혹은 금리정책보다는 한국은행의 국채매입 의지였다"면서 "이주열 총재는 국채 매입의 기준으로 변동성을 제시하며 ‘필요 시 언제든 국채 매입이 가능하다’는 기존의 입장을 반복했다"고 지적했다.
강 연구원은 "수급 부담 해소를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수급 부담으로 인한 시장 스트레스 확인이 필요한 상황이 지속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윤여삼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한은의 국채매입은 기준금리 대비 국고10년 100bp 이상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사회적 거리두기가 3단계로 격상되고 상단기간 유지될 정도가 아닌 이상 추가 통화완화 정책의 적극성은 높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소수의견 루머 돌릴 정도로 높았던 기대감의 반작용
이날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5월(-0.2%)에 비해 1.1%p나 낮췄지만, 채권시장의 완화적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치는 과도했다는 말도 나왔다.
특히 이날 장중엔 소수의견이 나올 것이란 루머가 돌기도 했다.
C 증권사의 한 중개인은 "코로나 확진자수가 400명을 넘어서는 등 급증세를 보인 뒤 이날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올 것이란 얘기가 돌았다"고 말했다.
그는 "금통위 결과는 당연히 만장일치 동결이었지만, 납득하기 어려운 루머가 돌 정도로 시장 기대치가 높았기 때문에 장이 밀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결국 한은의 전반적으로 도비시한 정책 스탠스에도 불구하고 추가 완화에 대한 구체성이 결여돼 오히려 매파적인 인상을 줬다는 진단이 적지 않았다.
D 증권사의 한 딜러는 "오늘 장은 한은 총재의 모호한 태도가 손절을 유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 한은의 덜 적극적인 스탠스 속에 다시 부각된 수급 부담
이런 가운데 이날은 정부가 9월 국채발행계획을 내놓는다.
경쟁입찰 물량이 약간 줄어들고 3년과 5년 비중을 약간 높이는 대신 장기물 부담을 줄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울러 바이백도 2조원 정도 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향후 4차 추경이 실시되면 수급 양상이 달라진다. 또 이날 전체적으로 한은 스탠스에 대한 채권 롱 플레이어들 사이에 실망감이 크다보니 국발계를 호재로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도 나온다.
D 증권사 딜러는 "국발계를 줄여준다고 했지만, 한은이 단순매입에 적극적이지 않다"면서 "오늘 커브가 급하게 플랬되다가 지금은 3bp 정도 스팁됐다. 플랫으로 꼬득인 뒤 한방 날린 모양새"라고 말했다.
4차 추경 가능성, 내년 예산안 등에 대한 부담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다시 강해진 모습이다.
강승원 NH투자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 개입이 배제된 상황에서 시장은 대규모 국채발행 부담에 노출될 수 있다"면서 "당장 2021년 예산은 올해보다 더 확장적인 예산안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는 세수다. 올해도 상장사 영업이익 감익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내년 예산의 재원은 상당부분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될 것"이라며 "내년도 국채발행 규모는 올해 원안인 130조를 뛰어넘는 150조원 가량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특히 2015년 이후 6년 연속 추경이 단행된 점도 중요하다. 시장은 2021년도에도 추경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정부 계획안보다 더 큰 규모의 채권 발행 가능성을 상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한은이 경제성장률 전망을 대폭 낮췄고 금통위도 완화적 정책의 불가피성을 거론했지만, 시장의 채권 롱 플레이어들 사이엔 '통화완화의 실질적인 진전이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우호적으로 보기 어려운 이벤트였다는 평가들이 나왔다.
E 증권사의 한 딜러는 "시장 변동성이 참 애매하게 생겨버렸다"면서 "시장 피로도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고 밝혔다.
그는 "외국인 매도가 나오면서 정책 기대감이 상실되고 2020년 북클로징도 빨라지는 느낌이 난다. 코로나 3단계 격상 가능성에 따른 말도 안 되는 재난지원금 논란과 4차 추경 문제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의 설레발에 채권시장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형국"이라고 덧붙였다.
장태민 기자 chang@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