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득이 적은 가구 중에 부채가 많은 가구는 어떻게 이런 재무구조가 유지 가능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소득 대비 부채상환부담이 큰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은행권 씽크탱크 B전문가)
2011년부터 크든 작든 금융정책 우선과제 순위 상위권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던 가계부채 관리 정책이건만 전문가들의 평가는 전혀 호의적이지 않다. 만기를 긴 것으로 바꾸고 원리금 분할 상환 비중을 높이는 데는 성공했지만 총량은 결코 줄지 않았고 가계부문 빚 갚을 여력이 크게 떨어져 있다.
그나마 현 경제팀이 부동산경기에 훈풍을 불어넣는데 성공해 부동산 값이 오름세를 띄고 있고 금리가 사상 최저 수준이니 망정이지 최고 경계의 대상인 두 가지 악재 중 하나만 작동을 해도 헤쳐나가기가 만만치 않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번져 있기 때문이다.
◇ 지금이야 금리 싸지만 언제까지
연세대 김정식 교수는 한국금융신문과 통화에서 “(전반적으로)경기가 좋진 않지만 지금은 금리가 내려가고 있고 부동산 가격이 오르고 있어 문제가 없다고 볼 수 있는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든지 금리가 오른다든지 이럴 경우 최근 가계부채 속도를 볼 때 우려스런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지적했다.
안심전환대출 대상에 속할 수 없는 서민 등 취약층이 부채상환능력이 떨어져 있어 위험하니 적극 보완해야 한다고 그는 권고했다. 익명을 청한 은행권 한 씽크탱크 간부는 “저소득층 가구일수록 가처분소득 대비 원리금상환비율이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고 실제로 자기가 번 소득으로 더 이상 유지하기가 어려운 계층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 설명처럼 소득 상위 40%가 부채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므로 괜찮다는 이야기는 지나친 낙관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금리를 낮춰 주고 각종 수수료 부담을 줄여 주는 미시적인 대책을 꾸준히 펼쳐 왔지만 상환능력을 끌어올리는 실질적 변화 없이는 미국 연준 금리인상 시동이 걸리고 부동산 가격 오름세기 꺾이면 한계가구 중심으로 연체가 시작되는 등 위험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보는 전문가들은 결코 적지 않다.
◇ 정부 지나친 낙관, 인식 전환 필요
저금리, 부동산 호황기엔 소득 많고 자산 많은 사람들의 상환능력이 좋다 보니 전체 돈빌린 사람들의 가처분소득대비 원리금 상환비용이나 이자부담비율이 준다고 해서 마냥 낙관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전문가들의 비판이나 보완대책 필요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를 종합하면 정부가 너무 낙관적 인식에 기대고 있는 태도를 앞으로는 바꿔야 한다는 문제제기가 녹아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전문가들의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만든 진단은 최근에 나왔다. 금융위원회는 지난 2월 하순 ‘가계부채 평가 및 대응 방향’을 내놓으면서 “가계부채가 경제성장에 따라 증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며 2011년 가계부채 대책을 전면에 내 건 이래 가장 낙관적인 인식을 드러냈다.
이에 현대경제연구원 박덕배 전문연구위원은 “성장이 있다면 부채가 늘어나는 건 정말 당연한 일이지만 소득도 함께 늘어나야 문제가 없을 텐데 소득이 늘어나는 속도보다 부채가 더 많이 늘어난다면 신경을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조영무 연구위원은 “저소득층 부채상환능력이 전 계층 가운데 가장 빠르게 약화되고 있고 소득 증가세가 가장 부진한 가운데 부채 원리금 상환부담도 가장 빠르게 늘고 있어 저소득층 가계부채 리스크는 우려할 만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정부는 가계부채 관련 대책을 내놓으면서 부채 증가세가 주춤할 때는 총량보다 속도가 너무 빠르지 않으면 된다는 논리를 폈지만 지난해 부동산 경기부양책 하위 정책으로 주택담보대출 규제를 풀고 난 뒤 급증세를 보이자 부채가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돌아선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저소득층, 고령층, 자영업자들의 부채상환능력이 취약하고 이들이 상환을 할 수 없게돼서 실물경제와 금융건전성 모두 큰 부담이 되기 전에 뚜렷한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이자부담은 깃털일 뿐 상환능력에 집중해야
맨 처음 정부 부처들이 손잡고 가계부채 연착륙 종합대책을 내놨을 때 진단서와 처방전 양쪽 다 등장했던 소득증가를 통한 근본 해법 이야기는 어느 사이 처방전에서는 존재하지 않거나 실제 처치나 투약 등으로는 이어지지 않는 구색 갖추기용 추임새로 전락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가계부채는 소득증가가 충분히 뒷받침 될 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데 이견이 표출될 여지는 전혀 없다.
그런데 정부는 구체적 노력 없이 오히려 서로 정책 목표와 효과가 충돌하는 것까지 불사하는 모순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익명을 청한 민간 연구기관 B전문가는 “소비활성화를 해야겠다며 부동산 경기를 끌어올리려고 주택담보대출규제를 포함해 규제를 풀고 나니 대출이 크게 늘어나 버렸는데 가계부채를 잡겠다는 정책은 그대로 밀고 가려고 하니 서로 어긋날 수 밖에 없는 딱한 노릇”이라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전문가들이 불신하는 까닭은 가계부채 총량도 늘고 지난해 이후 증가속도가 가파른데도 상환능력 관련 처방마련에 적극적이지 않다는 점에 집중되는 양상이다.
조영무 위원은 “누가, 어떤 용도로, 얼마나 빚이 늘었고 늘어난 계층의 상환능력 및 부채상환 부담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고려하면서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소득과 일자리 대책을 부처 합동으로 노력하겠다는 선언적 글귀만 반복해서 등장하거나 경력 유관 창업을 지원하는 등 창업지원 인프라를 늘리겠다(2012년 7월)는 눈이 번쩍 뜨일 대책이 제시되긴 하지만 사회적 체감도가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대신에 최근 노사정 대타협 시도가 겉돌고 있는 것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 논란이 빚어질 정도로 미래 생활 안정이나 소득증대와 거리가 먼 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상황이다. 근본적 소득증대 플랜이 실종되면서 금융정책 당국은 이자부담의 경감, 대출 만기 장기화와 고정금리 분할상환 비율 증대, 서민지원형 금융상품 공급확대 등 미시적 대책에만 매달리게 되고 소비마저 가계부채 900조원을 돌파하는 무렵부터 꺾이고 말았다.
내수 회복 대책으로 가계부채 관리방안이 부처 합동대책 마련 테이블에 오른 적도 있지만 금융지원으로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다 한 셈이라는 일부 전문가들의 지적은 뼈 있는 일침으로 다가가고 있다.
정희윤·김효원 기자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