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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금융권력

정희윤 기자

simmoo@

기사입력 : 2014-10-19 17:48 최종수정 : 2014-10-19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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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우리들의 일그러진 금융권력
◇ 핵심 경영과제 누적적 반복, 둘 중 하나

몇 년 지난 세미나 자료를 들춰 보다가 ‘그럼 그렇지’ 짐작이 맞았단 사실 확인과 동시에 맥이 탁 풀리고 말았다. 별반 달라진 게 없어서다. 10년 전에 제시받았던 과제 가운데 대한민국 금융산업이 보란 듯이 해결해 냈노라고 자랑할 것이 무엇인가.

수익성과 건전성은 말할 것도 없고 해외진출과 사업다각화 등 새로운 성장동력 확보 등 도무지 달라진 게 없다. 달라졌다면 모범상으로 꼽았던 글로벌 강자들의 이름이 바뀐 정도. 그나마도 교체 이유에 대해선 별 관심 없이 마치 관습적 반복이 있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현황 평가-대안 모색-전략수립의 전형적인 ‘종이 보고서 생산용 작업’이 반복되고 있음을 눈치채기에 많은 노력이 필요하지 않다.

핵심경영과제 설정이 누적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다.

해결할 능력이 안되니까 해마다 달라진 숫자를 대입해 표현을 바꿔 가며 반복해서 상정하는 것이 그 하나요, 반드시 꼭 해결해야 할 것이라기보다는 숙명처럼 지고 가야하는 것인데 말만이라도 개선 노력을 기울이자는 퍼포먼스로서 활용하려는 것이 또 다른 하나일 것이다.

◇ 비전도 전략도 뚜렷하지 않은 일선 금융계

CEO가 수행해야할 핵심적 역할 가운데 조직 구성원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확고한 목표의식을 심어 주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고들 한다.

경영비전과 중점 과제를 통해 집약되는 CEO 경영책략은 그와 같은 역할에 얼마나 충실한지 재어 볼 중요한 근거로 삼을만 하다.

하지만 금융학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한 학자의 지적처럼 “우리나라 금융계처럼 ‘붕어빵’ 비전과 핵심 경영과제로 넘쳐 나는 나라가 또 있을지 궁금하다”는 이야기엔 무척 공감이 간다.

예전엔 사회적 책임과 사회공헌에 이어 요즘은 기술금융과 창조경제가 핵심 키워드로 제시되고 있겠지만 금융그룹별 또는 금융사별 똑 부러지는 무엇이 있는지는 잘 분간이 안 간다. 예를 들어 ‘선제적 리스크 관리’ 구호를 보자. 요즘은 좀 덜 강조되는 것이지만 2008년 선진국 금융위기가 발발한 직후 몇 해 동안 이 구호가 빠진 기념사 같은 건 거의 없었다. 너도 나도 중요한 과제로 꼽고 독려에 나섰지만 크게 개선됐다는 증거는 찾아보기 어렵다.

◇ 상황은 심상치 않은데 보신주의 팽배 진짜 이유

리스크관리에 집중하겠다는 구호가 넘쳐날때도 본질적이고 획기적 개선이 없었지만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은 은행권 대손비용이 줄어들 것이라며 자꾸만 낙관론을 전파하는데 애쓴다.

그런데 시장의 리스크와 금융사에 돈을 빌려간 그 많은 대출고객들의 리스크가 줄어들고 있는가? 줄어들고 있다면 10월 금융통화위원회가 기준금리를 또 내려서 역대 최저치와 같은 2.00%로 조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심지어 적지 않은 전망가들은 기준금리를 한 차례 더 내릴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지 않은가.

한은은 경제성장 전망치를 자꾸 낮추면서 기준금리 낮춘 결정에 스스로 아군 삼고 나섰다. 정부는 경기진작에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가 큰 재정투입 만큼은 피할 궁리에 골몰하고 있다. 설비투자가 부진하고 경제주체들의 심리가 회복되지 않고 있어서 통화당국 핵심 수단인 금리수준을 사상최저치로 내렸고 최저치 기록 경신이 확실시되는 나라에서 금융건전성을 낙관할 수 있다고 누가 주장할 수 있나.

최소한 두 가지 플랜을 짜야 한다. 통화당국의 대처 덕분에 경기가 좋아진다면 적극적인 여신확대 및 영업력 확충을 꾀하는 것이고 그런 한편으로 만약 그같은 강력한 처방에도 경기가 쉽사리 살아나지 않을 경우엔 잠재부실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예상 아래 면밀하게 대비하는 것 말이다.

그렇지만 대통령께서 지적하셨다시피 현장에 가보면 보신주의만 만연해 있다. 보신주의란 지적에 일면적으로 한해 동의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이다.

◇ 과즉물탄개, 일신일신우일신 너무 먼 이야기

허물이 있음을 알게 되면 즉시 고치려고 노력하는 제자의 사례를 칭송했던 공자의 이야기나. 욕조에다 날마다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대한민국 금융계와는 거리가 참으로 멀다. 수수료 수준과 금리 조정까지 정책당국 또는 감독당국이 일일이 미세하게 컨트롤 하는 관치금융의 나라에서 CEO가 창조적인 기치를 걸고 유난히 독창적인 경영책략을 밀어붙이기는 결코 쉽지 않다.

본질은 그런 측면에서 빚어진다. 숱한 금융사고와 소비자 피해와 관련한 정책당국 및 감독당국 책임은 제대로 규명된 적 없이 일단 죄지은 금융회사들에게 관치의 옷을 입히기가 무척 용이했던 것이다.

아무리 면책권을 준들 시중은행이 공격적 여신확대에 나서기는 어렵다. 상업은행은 위험하면 뛰어들지 않는 게 생명력이고 최근 우리 나라를 들썩이게 했던 ‘웰스파고’ 등 위기에 강했던 미국과 유럽의 상업은행들이 딱 그랬다.

우리나라는 반대로 시중은행들에게마저 기술금융 실적이 부진하면 패널티를 물리겠다고 압박에 압박을 거듭하는 상황이다. 시중은행에게 ‘생존률이 낮을지 몰라도 나중에 대박나는 기업이 일부 나오면 남는 장사니까 빨리 열심히 뛰어들라’고 투자은행식 경영을 권유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다.

그러면서 어떤 은행 CEO를 쫓아 낼때는 사생활까지 파악해 챙피를 주는 방식으로 과도하게 개입하는가 하면 어떤 은행에선 대주주와 전직 CEO 지인들의 계좌를 반복해서 불법조회하는데도 소극적 제재로 일관한다.

그렇다고 답답해 하지만 말았으면 좋겠다. 뜻 있는 금융인에게 박재삼 시인의 <천년의 바람> 등 바람을 제재로 했던 대표작들을 음미해 보시길 권해 드리고 싶다. 시인은 소나무 가지에 와서 천년 전에 하던 장난을 되풀이하는 바람의 속성을 그려 낸 다음 지치지 말자고 권한다. 이상한 것에 눈 돌리며 탐 내기 십상인 사람들에게 변함없이 자기 몫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이 온당한 몫이라는 깨우침을 준다.

관치 칼자루를 쥐는 사람은 계속 바뀔 테지만 금융업을 천직으로 삼은 사람이라면 평생을 걸어야지 않은가. 그런 의지가 이어진다면 백년은행 천년금융강국 초석은 마련될 수 있다는 희망만은 버리지 말자.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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