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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금융인심을 누가 탓하랴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기사입력 : 2014-08-27 22:16 최종수정 : 2014-08-27 22:39

[기자수첩] 금융인심을 누가 탓하랴
같은 소리로 나타내고 글로 옮겨 적은 모양이 똑 같더라도 자신 또는 자신을 둘러싼 집단이 처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뜻을 담을 수 있는게 말(言)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목표로 했던 국민과 지금 우리가 쓰는 국민이 같을 수는 없다. 국어라는 말처럼 반성 없이 그냥 쓰다가 정착돼 버린 점이 아쉽긴 해도 ‘황국신민’으로서 국민이 아니라 자주독립국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이 다르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목청 높여 힐난하면서 인터넷 포털 이슈 검색어 상위에 올라온 ‘보신주의’는 어떨까?

대통령께서는 우리말 사전에 올라 있는 낱말 뜻보다 매우 정치적으로 과도한 목표의식을 상정한 채 공세적으로 언급하셨다. 경제나 금융을 안다는 사람들 사이에서 설왕설래하게 된 연유다. 기자가 접한 한 대형은행 간부는 “모름지기 은행원들이라면 ‘그 친구는 보수적’이라는 평판을 은근히 반길 터인데 비판과 질타에 뜻을 두고 보신주의라고 하시니 무척 당혹스러웠다”고 고백했다.

한 우리말 사전을 펼쳐 보니 “자신의 직무는 대충하면서 외부의 위험으로부터 자신의 지위 따위를 지키는 일에만 급급한 태도가 보신주의”라고 적고 있다.

대한민국 은행원들은 졸지에 고객들이 좋은 상품에 들도록 권유하고 그렇게 맡아 둔 돈을 될 성 부른 기업이나 갚을 능력이 충분한 사람에게 대출해주는 본연의 임무를 대충하고 마는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아울러 위험으로부터 자신(만)을 보호하는데 급급한 집단으로 지목 당했다. 그러나 모처럼 작심하고 내친 회초리 세례는 마음 깊은 뉘우침을 얻기가 어려운 현실임을 대통령 지근 거리에 있으면서 저자거리 민심과 민생 동향을 소상히 아뢰는 보좌진들은 알고 있을까?

대통령께서 질타하신 내용 한 대목을 보면 이번 사단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시중에 돈이 넘치는데 벤처기업들이 돈 가뭄을 겪고 있는’ 상황을 이해할 수 없으며 “당장 초기 창업기업과 중소기업들에게 돈을 풀도록 하라”는 직접적 주문이 이어진다.

대한민국 정부조직 안에서는 금융위원회가, 대통령 비서실과 짝을 이뤄서 금융생활의 실정, 그리고 현안 관련 상황과 대처방안을 최고 수반인 대통령에게 수시로 말씀 드려야 할 자리에 있다. 금융위가 소상히 아뢴 결과가 이런 것이라면 금융위는 금융전문성을 의심받을 일이 된다. 혹은 소상히 아뢰긴 했지만 다른 경로를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에 신빙성을 느낀 대통령이 이번 이슈를 손수 꺼내 들었거나 심지어는 아예 말씀 드릴 기회조차 없었을 수 있다.

이들 중 어떤 경우라도 금융위는 왜 존재하는지 심각한 회의를 품지 않을 수 없다.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여신정책을 운용하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대출과 신용보증 그리고 투자까지 자금중개를 하라는 독려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금융당국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이 수준을 뛰어 넘는 주문이 대통령의 직접 발언으로 은행권 전체를 압박하는 상태다.

기자가 만난 한 전직 금융사 임원은 “신용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가 불가능한 창업초기 벤처기업에 대한 여신제공에 시중은행이 나선다는 게 무슨 뜻인지 설명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청와대나 정부에는 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우리나라 시중은행은 신분 증명이 되는 국민 누구나 예금과 적금을 들 수 있는 곳이다. 이 의미를 깊이 새기는 데서부터 은행원은 본분을 바로 세울 수 있다. 아무 데나 돈을 빌려줘서는 안되는 곳이 바로 (시중)은행이다. 초등학생 꼬마의 돈이나 강남에서 빌딩을 여러 채 갖고 있는 부자가 맡긴 돈이나 내어 달라고 할 때 돌려줘야할 돈이긴 마찬가지다.

만약 선진국 어느 시중은행(상업은행)이 살아 남을지 말지, 성공해서 돈을 갚을지 못 갚을지 판단하기 어려운 기업들에게 대출을 늘리겠다(경기활성화에 협조하는 차원에서)고 발표하면 어떻게 될까? 뱅크런에 직면할 일 아닐까?. 국책은행들은 어차피 자기신용으로 투자자들에게 채권을 팔아서 마련한 돈이 대부분이어서 또 다른 문제다.

대출금의 손실은 고객들이 맡긴 원금의 손실을 뜻한다. 믿고 대출해 줄 만한 기업을 판명해주는 신통력을 지닌 족집게 도사라도 모셔야 할 노릇이다. 그냥 돈도 많이 안고 있으면서 왜 대출을 않느냐고 몰아붙이며,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매를 드니 금융인심이 먹먹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 아닌가.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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