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은행법 시행령에 따라 오는 3월부터는 중소기업 임직원인 경우 회사 주거래은행 대출실행일로부터 앞 뒤 한 달 사이 보험 또는 펀드에 들기만 해도 이른바 ‘꺾기’영업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일부 은행에선 이 때문에 대출거래가 있는 기업 임직원이 들겠다고 가입요청을 해도 받지 않는 방안을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이번에 손질한 은행법 시행령에 ‘꺾기’ 영업관행을 규제하는 조치들을 대폭 강화하고 벤처·중소기업 지원을 늘리는 유도방안을 포함했다. 정부는 이같은 채찍과 더불어 은행들이 수익원을 다각화할 수 있도록 하는 당근책도 함께 들여왔지만 실효성은 의문시 되는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발생한 외국계 시중은행과 카드 3사 고객정보 대규모 절취 사건에 따른 사회적 충격이 거센 가운데 영업규제를 대거 강화한 것이어서 은행권은 달리 하소연할 의지조차 꺾인 상태이고 소비자 입장에선 금융상품 선택의 자유가 제한되는 피해가 부분적이나마 불가피해졌다.
◇ 대출 전후 1개월 보험·펀드 판매하기만 하면 ‘꺾기’
은행에 대해 약자일 수밖에 없는 중소기업과 서민 보호를 앞세운 꺾기 금지 규제는 날로 강화되는 추세였고 이번엔 최대치에 한 층 근접한 수준의 규제조치가 시행령에 명문화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현행 꺾기 규제의 핵심은 대출실행일 전후 한 달 새 해당 중소기업 임직원이나 저신용자 자신이 금융상품에 든 금액이 대출액의 1%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그런데 저신용자는 본인의 대출이, 중소기업 임직원인 경우 소속 회사가 대출을 각각 받은 날로부터 그 어떤 보험상품과 펀드상품을 얼마 규모로 들건 꺾기로 간주된다. 예·적금의 경우 대출액의 1%를 넘기면 꺾기로 간주, 제재를 받는다. 결정적으로 정부는 꺾기 규제 폭을 확대함과 동시에 과태료를 크게 높이는 시행령 손질도 함께 했다.
지금은 꺾기가 확인됐을 때 행위 전체에 대해 금융사가 5000만원, 직원은 1000만원 각각 그 범위 안에서 과태료를 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앞으로는 꺾기 1건당 적용되는 과태료 기준금액을 금융사는 2500만원, 직원은 250만원으로 정한데다 꺾기 금액의 크기나 고의 또는 과실여하에 따라 각 건별로 산정된 과태료를 합산해 물리게 된다.
특히, 상시 근로자 49인 이하 영세 소기업에게 꺾기 영업을 했다가는 더 높은 과태료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은행권 일각에선 이미 현재 규제 수준만으로 대출이 있는 중소기업 임직원의 예·적금 가입을 포기하고 있는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중소기업에 다니는 임직원과 저신용자들은 예·적금을 비롯해 보험과 펀드 등의 상품 가입은 대출 주거래은행이 아닌 다른 은행에 가야 하는 상황에 이를 전망이다. 정부 입장에선 아무리 제재를 가해도 꺾기 관행이 근절되지 않으니 특단의 규제에 들어간 것이지만 예·적금을 비롯 보험이나 펀드 가입 실적이 전무한 중소기업 직원이나 저신용자가 은행 대출을 받기란 더욱 어려워지는 실정임을 감안할 때 그 부작용 또한 심화될 것이 확실시 된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해외 소규모 M&A 사후보고·벤처캐피탈 투자 확대 부분적 환영
아울러 이번 시행령 손질로 벤처캐피탈에 지분참여한 경우 자회사로 삼지 않아도 되도록 완화해 준 조치나 해외 소규모 M&A사전 인가 의무를 덜어 준 조치는 부분적으로 환영을 받을 만한 내용이란 반응이다.
우선 정부는 해외 인수·합병(M&A) 때 소규모인 경우 나중에 보고만 하도록 한 조치는 규제 개선 효과가 인정되는 동시에 2%룰의 제한성 때문에 당장의 실효성은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금은 신용평가등급이 B+ 이하인 해외 현지법인 M&A때 무조건 금융위원회에 사전신고하도록 의무화 함으로써 사실상 사전 인가를 받았으나 지난해 예고한 대로 시행령은 손질됐다.
은행 기본자본의 2% 이하 규모의 현지법인이면 인수·합병에 착수했거나 작업을 마친 뒤 보고만 하면 되도록 바꾼 것이다. 기본자본이 가장 많은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이 지난해 9월 말 현재 각각 17조 5262억원이고 17조 127억원이므로 각각 3505억원과 3402억원 이하 자본금을 갖춘 해외 금융사 M&A는 사전 인가 없이 추진할 수 있도록 보장한 셈이다.
따라서 은행권 일부 국제금융 담당자들 사이에선 국민, 신한 두 은행보다 기본자본이 적으면 3000억원 이하 짜리 M&A만 자율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어서 당분간은 규제완화 효과가 크지 않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반면에 금융위 관계자는 “국내 은행 기본자본 규모가 적기 때문에 그렇지 정액 제한이 아니라 2%로 제한한 것이기 때문에 은행 자본력을 보강하면 더 큰 규모의 M&A도 사후보고로 진행할 수 있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그는 “작은 금융사를 인수해서 크게 키우는 방법도 있다”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적지 않은 수혜를 입을 수 있다고 반론을 폈다.
정부는 또한 은행들의 사모펀드(PEF)인 경우에만 지분 15%를 넘더라도 30% 이내이면 그 PEF를 자회사 삼지 않을 수 있도록 했던 예외조항을 벤처케피탈에도 적용하기로 했다. 한국벤처투자조합, 중소기업창업투자조합, 신기술사업투자조합을 포함한 벤처캐피탈에 유한책임사원(LP)로써 참여한 지분이 15%를 넘더라도 30%에 미치지 않으면 자회사로 분류하지 않아도 되게 한 것이다.
자회사로 삼으면 출자를 할 때 보고 의무를 다해야 하고 신용공여가 제한되는 등 부담이 이만 저만 늘어나는 게 아니지만 자회사가 아니면 부담이 덜어지기 때문에 은행들의 벤처캐피탈 투자 유인을 높인 조치다.
이와 관련 대형은행 한 관계자는 “비이자이익 기반을 늘려야 하는 은행 처지에서 투자대상이 확대된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면서도 “은행산업 점유율이 높은 시중은행들의 경우 지분참여를 통한 간접적인 방식이라 해도 성공률이 낮은 벤처기업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는 쉽지 않을 수 있다”고 걱정했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이나영 기자 lny@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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