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히나 현재의 관행과 시스템으로는 신용도 양극화로 고통받는 중간층 기업들에게 충분히 자금과 신용을 공급하기는커녕 기업들의 사업지속성에 차질을 끼칠 것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그렇다고 비판만 제기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금융 본연의 정신으로 돌아 가서 유망하고 장래성 있는 기업에 밀착하려는 노력만 하더라도 의미 있는 시장을 발굴할 수 있다는 뜻 있는 지적이 신선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 회사채 CP 얼어붙으면 은행 기업금융이 보루
웅진, STX에 이은 동양그룹 사태로 인한 신용 및 자금조달 양극화와 장기 기업어음 발행 규제 강화가 겹치면서 회사채 시장이 경색되는 등 직접금융시장은 곧바로 위축된 상태다. 미국 경기와 국내 경기가 살아난다는 마당이니 사업장을 가동할 절호의 기회이니 당연히 기업들은 은행 대출 등 간접금융 수요가 치솟는 풍선효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다수 은행들은 과거 데이터를 우선시 하며 기업 재무구조 악화 및 대내외 여건 불투명을 이유로 삼아 보수적 태도를 버리지 않는 양상이다. 수요와 공급의 불일치 내지는 갈등이 커진다 하더라도 공급자가 충분한 역량을 갖추고 있을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신용위험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만 되풀이하고 있는 은행들은 누가 봐도 우량한 중소·중견기업에 더해 조금만 더 도와주면 영속성을 확보하고 나아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숨어 있는 기업을 발굴할 역량은 태부족인 실정이다.
이런 상황이 자꾸 길어지다 보면 최악의 경우 은행권은 자발적 선택과 집중에 나설 틈도 없이 타율적 금융지원에 나서야 할 개연성이 그 만큼 짙어질 것이 우려된다. 국책은행 임원급 자리에서 기업금융을 다뤘다는 전직 금융인 A씨는 “정책 및 감독당국 관계자들이 보기에 상황이 좀체 개선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결국 당국이 전면에 나서서 대출 지원을 모니터링 하면서 직접 독려하는 상황에 처할 것이 확실시 된다”고 주장했다. 비록 국책은행을 비롯한 공공성이 강한 금융기관과 정부 지분율이 높은 우리금융 등에 해당하는 일이겠지만 그렇다 해서 민간 시중은행들에게 예외로 이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그는 진단했다.
◇ 당국 직접 압박 없더라도 케케묵은 관행 고쳐야 리딩 뱅크
“당국의 압박이 덜 미친다고 위험도가 커진 기업들에 여신을 많이 내주는 신세를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담보와 보증에만 의존하는 관행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면 창조금융이니 혁신이니 내실 성장은 공염불에 그칠 뿐”이라는 이유에서다.
2금융권보다 심사역량이 뛰어나다고 주장하지만 은행권조차도 시대에 뒤 떨어진 관행에 갖혀 있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박병원 회장이 줄기차게 펴는 ‘금융 고부가가치화 전략’은 결코 복잡한 것이 아니다. 담보와 보증 의존 관행을 과감히 버리고 사업타당성과 기술력 본위의 심사를 해 주는 대신 그 대가로 수수료나 이자를 더 받는 한 차원 진화된 경쟁력 모델을 만들어 내자는 담론인 것이다.
이와 관련 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연구위원은 26일 내놓은 ‘금융기관 대출관행의 영향 및 시사점’보고서에서 “보증 및 담보 위주 관행은 대출심사 및 사후관리를 소홀하게 하는 도덕적 해이를 야기한다”는 점과 “대출을 신청한 기업의 사업타당성을 엄밀히 점검할 인센티브가 없고 일시 자금부족 등으로 유동성 문제가 발생하면 정상화를 지원하는 게 아니라 채권 회수에 나서게” 되는 낙후된 구조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했다.
◇ 기업 간접금융 확대 전망 속 부실우려 상존
다행스롭게도 “금융권 내부로부터 낡은 관행을 버리고 발상을 바꿔 새롭게 실천하면 충분히 유망한 틈새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는 신선한 분석이 최근 제시돼 어떻게 수용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산업은행 조사분석부는 ‘키워드로 본 2014 경제·금융·산업 Trend’를 통해 올해 기업금융시장에서 간접금융 비중이 커진다면 오히려 중견기업 대출 시장을 새로운 텃밭으로 삼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간접금융 쪽으로 돌아선 기업 전부가 부적격 기업인 것이 아닐 것인 만큼 철저한 옥석가리기에 역량을 기울이면 다른 은행에 앞서 선점하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산업통상자원부 분석에 따르면 중견기업 전체 매출액 규모는 단일 기업집단 최고의 매출규모를 자랑하는 1위 재벌보다 웃도는 시장성을 지닌다는 사실을 조사분석부는 짚어 냈다. 더욱이 국내 설비투자 중 12~13%를 차지하는 중견기업의 투자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은행들이 우량 중견기업에 대한 여신을 강화할 필요성이 크다고 봤다.
여기에 더해 박근혜 대통령이 중소-중견기업 육성 정책을 강화하겠다는 국정기조를 분명히 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는 게 일부 뜻있는 기업금융 전문가들의 쓴소리다. 여신심사부터 사후관리까지 새롭고 미래지향적 시스템과 문화 정착에 앞장서는 은행이 나타날 것인지 이대로 실물경제와 함께 주저 않을 것인지 주목되는 시점이다.
정희윤 기자 simmoo@fntimes.com
이나영 기자 lny@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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