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로벌 위기에 아랑곳않는 정치, 노사관계가 더 답답해
지난 10월 6일 정부는 은행의 해외자산을 조기에 매각하라고 요청했습니다. 달러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때부터 은행들은 해외자산을 파는 데 더욱 어려움을 겪은 것은 물론 외화유동성 위기설에 시달렸습니다. 정부가 자산을 팔라고 지시하는 상황에서 굳이 비싼 값을 주고 급하게 살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또 시중은행의 외화대출 지급보증이 필요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국내은행들이 외화 자금조달에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을 보이려는 것이었겠지요. 하지만 불과 닷새 뒤에 정부의 지급 보증을 발표해 시장의 신뢰를 잃었습니다.
정책당국의 설익은 대책도 문제입니다. 정책당국이 환율이 안정될 것이라고 말할 때마다 환율은 잠시 내렸다가 더 크게 뛰었습니다. 이미 환율은 정부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상황입니다.
강만수 장관은 지난 11일 외화자금난을 덜기 위해 미국과 달러스와프를 요청했다고 발표했지만 미국은 들은 척도 안했습니다. 전광우 금융위원장도 지난 16일 “증권거래세 인하를 검토하겠다.”며 증시를 들쑤셔놨다가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시장은 10년 전 IMF 구제금융 신청 직전까지 정부가 위기는 없다고 강변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지난 27일 한국은행은 모처럼 시장의 예상을 뛰어넘어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인하하고 시중은행의 원화 유동성 공급을 위해 최대 10조원의 은행채를 매입하기로 했습니다. 금융경색으로 인한 시장 불안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한은의 파격적인 조치에도 금융시장의 공포는 여전했습니다. 종합주가지수는 장중 900선이 무너지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펼치다 연기금의 대규모 매수세에 힘입어서 간신히 소폭 반등했습니다. 원/달러환율도 치솟았습니다.
정부와 통화당국의 전방위 대응책도 기대했던 만큼 약효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 실제 이상으로 상황에 과잉반응하고 공포심에 휩싸이는 것이야말로 경계해야할 가장 무서운 적”이라고 불안 심리 진정에 나섰지만 시장은 화답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금리인하 등 정부의 노력만으로 전 세계적인 금융불안과 경기침체로 공포에 사로잡힌 투자심리를 살려내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따라서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은 해외에 달렸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이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도 금융위기에 취약하고 주가, 원화가치 등이 폭락하는 데에는 설명이 필요합니다. 우리 정책당국은 왜 그렇게 위기에 대처하는 자세가 자신이 없는지 답답합니다. 환율 정책, 부동산 정책, 통화정책 등 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선제적 정책대응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항상 뒷북이나 치고, 무책임하고 소극적으로 실효성이 떨어지는 정책운용이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처하는 선진국 등 주요국들의 기민하고 선제적인 정책대응과 너무 비교가 됩니다.
밖에서는 글로벌 금융위기가 전 세계경제를 침체시키고 국가를 유동성 위기로 몰아넣건만, 국내에서는 아랑곳하지 않고 정치권과 노사관계는 우리경제의 발목을 잡고 위기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정부의 기본적인 자세도 문제입니다. 정부는 도대체 대내외 중대 현안을 대처하는데 기본적인 원칙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습니다. 정치, 경제,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법과 원칙을 세우기보다 그저 무사 안이하게 휘둘리는 대로 끌려 다닐 뿐입니다. 그 바람에 미국산 쇠고기 문제나 촛불시위로 온 나라가 막대한 피해를 입고 국정의 차질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노동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노사가 합심협력해서 위기극복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어려울 때입니다. 우리의 구태의연한 정치권이나 노사관계를 볼 때 우려되는바 적지 않습니다. 이러니 정부의 정책대응에 국내 시장이 꿈적도 않는 것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신뢰를 상실해서 정책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위기 극복은 신뢰에서부터 출발합니다. 대책보다 더 시급한 건 정부가 믿음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정부가 시장의 신뢰를 얻으려면 과욕이나 근거 없는 임기응변보다 현실에 대한 냉정한 평가부터 해야 합니다. 정부가 책임지는 자세를 보이고 국가경제를 떠받든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관리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