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금융연구원(원장 조성목)은 9일 "사채로부터 해방에 최우선 과제는 강도 높은 사금융 채무조정"이라며 서민들이 사채의 늪에 빠져 나올 수 있도록 정부가 즉각적인 정책 전환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DSR 규제가 등 떠밀어…법정 최고금리 27배 육박
서민금융연구원 진단에 따르면 경기 침체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강화가 맞물리면서 서민들은 제도권 대부업체조차 이용하지 못하는 처지로 내몰렸다. 이들이 몰리는 곳은 연 500%를 넘나드는 고금리 불법사금융 시장이다. 한국대부업협회에 접수된 지난해 신고된 것을 기준으로 따지면 평균 금리가 연 546%로 법정 최고금리(연 20%)의 27배에 달한다는 것이다.서민금융연구원이 실시한 금융실태 조사로는 연간 불법사금융으로 유입되는 인원은 수만 명에 이르고, 전체 이용 규모가 최대 1조5500억원에 육박한다는 추산이다. 연구원 측은 "가정 파탄과 극단적 심리적 위기가 임계치에 다다랐다"고 진단했다.
문제는 정부의 정책 방향이다. 서민금융연구원은 감독당국과 조세당국의 단속이 적법하게 등록해 엄격한 법 테두리 내에서 영업하는 대부업체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당국에서 추진 중인 매입채권추심업 인가제 도입만 보더라도 정부 정책 방향이 헛다리를 짚고 있다는 것이다. 연구원 측은 이를 "불법사금융의 실체는 외면한 채 관리와 단속의 용이성만 좇는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라고 비판했다.
합법적인 제도권 대부업체를 과도하게 압박할 수록 서민경제·금융의 필수적인 안전망인 자금 순환구조가 파괴된다는 설명이다. 오히려 그로 인한 반사이익이 고스란히 불법 사채업자들에게 돌아간다는 얘기다. 규제가 강해질수록 합법 시장은 위축되고, 그 공백을 불법사금융이 파고드는 악순환이 고착화되기 때문이다.
민간에선 10억 구제할 동안 당국은 뭐하나
서민금융연구원은 한국대부업협회가 지난해 이룬 피해구제 실적을 정책 전환의 근거로 제시했다.협회는 지난 한 해 동안 불법사금융 피해자를 대상으로 상담과 채무조정을 진행해 총 208건, 5억1900만원 규모의 부당 채무를 전액 감면했다. 법정 최고금리를 초과해 부당 수취한 불법 이득에 대해서도 적극 개입해 145건, 총 5억4400만원을 피해자들에게 돌려주도록 조치한 것으로 전했다.
두 항목을 합산하면 지난해 구제된 피해액만 총 208건, 10억6300만원에 이른다. 지난 2023년 146건·2억3600만원이던 협회의 구제 실적은 2024년 26건·2500만원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급증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은 정부가 아닌 민간 협회 단일기관의 노력만으로도 10억원 넘는 피해가 구제됐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국이 행정력을 등록 대부업체가 아닌 불법 사금융업자에 집중해야 하는 명백한 증거라는 것이다. 연구원 관계자는 "법 위에 군림하는 불법 사금융업자들의 불법수취금 반환과 강력한 조치가 정책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민금융연구원이 제시한 3가지 처방
서민금융연구원은 불법 사채 유입을 막고 피해자를 신속히 구제하기 위해 정부에 3대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첫째는 사전 예방적 홍보와 실효성 있는 서민금융 공급 강화다. 청년층과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모바일·SNS를 활용해 불법 사금융 예방 홍보를 확대하고, 정책서민금융의 문턱을 낮추고 공급을 늘려 불법 사채로 발을 들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둘째는 불법사금융업자를 겨냥한 '불법착취금 반환과 채무감면' 명령 발동이다. 정부가 사법·과세 당국 등과 공조해 법정 최고금리 위반해서 부당하게 착취한 붑법 수취금에 대해 일정기간까지 전액 반환 명령을 내리고, 불응하면 피해자 신고를 받아 구제와 함께 수사 당국에서 강도 높은 조사와 최고 수위의 처벌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는 규제 편의주의를 탈피하고 대부업의 합법적 순기능 재정립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서민경제의 마지막 보루라고 할 수 있는 합법적인 등록업체에 대한 기계적 규제를 멈추라는 것이다. 오히려 합법 업체와 함께 사회적 안전망이 정상 작동하도록 관리·감독의 패러다임을 '불법사금융 근절' 중심으로 전면 전환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추석 앞두고 "고리대금 기승 우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급전 수요가 몰리는 시기를 악용해 악덕 고리대금업자들이 활개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서민금융연구원이 공개한 피해 사례에 따르면, 직장인 A씨는 추석을 앞두고 선물비와 부모님 용돈 등으로 급전 50만원이 필요해 인터넷 대부 광고를 찾았다. 신용조회가 없다는 말에 돈을 빌렸지만 일주일 만에 원리금 100만원을 요구 받았다. 여기에 매주 수십만원의 '연장 수수료'가 붙으면서 연이율 환산 금리는 약 500%에 달했고, A씨는 사채업자를 피해 찜질방을 전전하는 도피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영업자 B씨는 명절 운영자금 200만원을 마련하기 위해 불법 사채업자가 조건으로 제시한 휴대전화 주소록 전체를 담보로 제공했다. 상환일을 넘기자 사채업자는 B씨의 노부모와 자녀, 직장 동료에게까지 무차별적으로 연락을 돌렸다. 명절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도 전화를 해 B씨의 대출사실과 개인정보를 폭로하며 협박성 문자를 대량 발송했다. 결국 협박에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B씨는 가정 파탄 위기로 내몰린 상태다.
구조 안 바꾸면 악순환 반복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불법 사금융 피해가 개인의 일탈이 아닌 구조적 문제라고 진단한다. DSR 규제로 제도권 대출 접근성이 떨어진 상태에서 취약층의 금융 수요를 흡수할 정책서민금융 공급은 부족해 생긴 공백이 불법사금융을 활개치게 만드는 구조라는 것이다.서민금융연구원은 단속과 처벌만으로는 이런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피해를 본 채무자에 대한 신속한 채무조정과 원상회복이 병행되어야 불법 사채 시장으로 다시 유입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명절 연휴를 앞두고 '무심사 대출'이나 '연락처 담보'를 내세운 광고가 기승을 부릴 것으로 예상된다.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은 “무심사, 연락처 담보 같은 조건을 걸고 대출해준다는 곳과 접촉했다면 즉시 거래를 중단하고 금융감독원 등에 신고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정부가 유연하게 정책을 전환하고 금융소비자들의 경각심이 같이 작동하면 불법 사금융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장종회 한국금융신문 기자 jhchang@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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