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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도 모자라도 은행으로"…자본시장연구원 “기업금융 경로 다변화 시급”

김희일 기자

heuyil@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8-26 16:36

기업 여유자금도 은행, 부족자금도 대출…금융중개 구조 개선 필요
美는 시장부채·獨은 기업 간 자금거래 활성화…한국은 은행 의존도 여전히 높아

"남아도 모자라도 은행으로"…자본시장연구원 “기업금융 경로 다변화 시급”이미지 확대보기
[한국금융신문 김희일 기자] 국내 기업금융이 은행 중심의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유자금은 은행 예금에 묶이고 부족한 자금은 다시 은행 대출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굳어지면서다. 이에 자본시장연구원은 미국·독일 등 주요국 사례를 바탕으로 자본시장과 기업 간 직접 거래를 포함한 다층적 금융중개 채널 구축을 촉구하고 나섰다.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이성복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발표한 ‘국내 기업 금융자산·부채의 구조적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에서 국내 기업의 높은 은행 의존도를 지적하며 기업금융 공급경로의 다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0년과 2025년 말을 비교했을 때 국내 기업의 금융부채 가운데 대출부채가 차지하는 비중은 84.7%로 15년 사이 6.7%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회사채 등 시장부채 비중은 같은 폭으로 감소해 15.3%에 그쳤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은행 의존도는 더욱 높았다. 대기업의 경우 금융부채 가운데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수준인 반면 중견·중소기업은 90% 이상을 대출로 조달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금융부채 전체에서 대출부채가 차지하는 비중과 금융회사 차입 가운데 은행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서로 다른 지표다. 금융회사 차입 기준으로 보면 국내 기업의 은행 대출 비중은 2010년 82.6%에서 2025년 73.9%로 8.7%포인트 낮아졌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미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더욱 뚜렷하다. 미국 기업의 금융부채는 대출 비중이 40%를 밑도는 대신 회사채 등 시장부채가 60%를 웃돈다. 은행 대출 비중 역시 지난해 말 기준 높게 잡아도 48% 수준이다. 기업이 은행에서 돈을 빌리는 것뿐 아니라 자본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조달하는 구조가 자리 잡은 것이다.

독일은 또 다른 사례다. 독일 기업의 대출부채 비중은 95%로 높아 겉으로 보면 한국과 유사한 은행 중심 구조를 갖고 있다. 하지만 세부적인 자금 흐름은 다르다. 지난해 말 기준 은행 대출 비중은 30%인 반면 비금융회사 대출 비중이 35.5%까지 확대됐다. 계열사 간 캐시풀링 등 기업 내부의 여유자금을 필요한 곳으로 이동시키는 관행이 발달하면서 은행이 기업금융의 유일한 중개경로가 되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한국과 미국·독일의 차이는 단순히 ‘은행 중심이냐 자본시장 중심이냐’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자금이 이동할 수 있는 통로가 얼마나 다양하게 구축돼 있느냐에 있다는 게 자본시장연구원의 판단이다.

기업의 여유자금 운용에서도 개선 여지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의 금융자산 가운데 투자자산 비중은 과거보다 높아졌지만 여전히 상당 부분이 예금 형태로 운용되고 있다. 특히 기업 예금자산 가운데 55.8%가 저축성 예금으로, 사실상 은행 예금 중심의 운용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업의 여유자금이 은행에 머물고 다른 기업의 자금 수요는 다시 은행 대출로 충당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은행이 기업의 여유자금을 효율적으로 운용해 필요한 곳에 공급한다면 은행 중심 금융구조 자체가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담보나 보증을 요구하는 대출 관행 등을 고려하면 현재의 금융중개 구조가 최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게 연구원의 설명이다. 특히 담보 여력이 부족하거나 재무 이력이 짧은 중견·중소기업과 성장기업에는 은행 대출 중심의 금융구조가 자금 공백을 야기하는 제약 요인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기업금융의 핵심 과제는 단순히 은행 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금융중개 채널을 여러 갈래로 확대하는 데 있다. 은행은 안정적인 대출 공급을 담당하고, 증권사 등 자본시장 플레이어는 회사채·주식·사모시장 등을 통해 성장·혁신기업에 위험자본을 공급하는 구조다. 이는 증권사의 역할이 단순 IPO나 회사채 발행 주관을 넘어, 기업의 성장 단계별 자금을 연결하는 종합 금융중개 기능으로 확장돼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국내 기업금융 선진화의 본질은 '탈은행'이 아닌, 은행과 자본시장이 보완 관계를 이루고 기업 간 직접 자금거래까지 활성화되는 다층적 생태계 구축에 있다. 미국식 시장금융 확대와 독일식 기업 간 거래 활성화 등 국내 실정에 맞춘 공급경로 다변화를 위해 금융당국의 제도적 뒷받침과 자본시장 플레이어들의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김희일 한국금융신문 기자 heuyil@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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