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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석의 단상] '예외 또 예외'가 키운 금융정책 불신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8-15 05:00

대출 총량 조이자 오픈런, 다시 대출 여력 늘린 정부
신용·상환능력보다 신청 순서가 좌우하는 대출시장
차주별 심사 정교화·사전 평가로 예측 가능성 높여야

[김의석의 단상] '예외 또 예외'가 키운 금융정책 불신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2015년 세계경제포럼(WEF) 국가경쟁력 평가에서 한국의 금융시장 성숙도는 87위에 그쳤다. 81위인 우간다에도 못 미쳤다. 여섯 계단의 격차는 금융권에 충격을 안겼다. '우간다 트라우마'라는 말까지 나왔다.

10여 년이 흐른 지금 금융산업과 금융상품의 경쟁력은 분명 높아졌다. 그러나 정책을 바라보는 시장의 불안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금융권이 더 아프게 받아들인 것은 낮은 순위 자체보다 정책을 예측할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강한 규제를 먼저 내놓고 시장의 반발이 커지면 그제야 예외와 보완책을 붙이는 방식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2021년 8월, 은행 창구가 먼저 닫혔다. NH농협은행을 시작으로 우리은행과 SC제일은행까지 주택담보대출을 전격 중단했다. 연간 대출 한도를 채운 은행들이 문을 닫자 수요자들은 대출 가능한 은행을 찾아 발품을 팔아야 했다. 정부가 전세대출을 총량관리에서 제외하는 보완책을 내놓은 뒤에야 시장은 진정됐다.

5년 만에 같은 장면이 되풀이됐다. 2026년 가계부채 관리방안은 다주택자의 수도권·규제지역 아파트 담보대출 만기연장을 원칙적으로 불허하고 총량관리를 강화했다.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대출이 언제 막힐지 모른다는 불안이 퍼지면서 은행 창구와 비대면 채널에 문의가 몰렸다. 규제의 취지는 가계부채 관리였지만 시장이 먼저 받아들인 메시지는 '서두르지 않으면 대출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신호였다.

은행들은 잔금대출과 상호금융 집단대출, 청년·신혼부부 등 실수요자를 위한 별도 한도 배정 같은 예외 조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예외 조치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누가 실수요자인지,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지에 대한 기준이 정책 발표 이후에야 정해진다는 점이다. 총량만 조인 결과 정작 위험한 차주는 놓치고 상환능력이 충분한 실수요자만 발이 묶였다.

'오늘 신청하지 않으면 막힌다'는 말이 돌자 당장 급하지 않은 차주까지 창구로 몰렸다. 대출 앱 접속자는 폭증했고 영업점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대출을 받아야 할 사람이 아니라 먼저 신청한 사람이 대출을 받는 기이한 풍경이 됐다. 창구 직원의 답도 명확한 기준보다 '검토 중'인 경우가 많았다. 정책이 시장을 안정시키기는커녕 수요를 앞당겼다.

▲ 오락가락하는 대출 정책 앞에 은행 창구는 오픈런 행렬을, 대출 수요자는 빈손으로 발길을 돌린다.

▲ 오락가락하는 대출 정책 앞에 은행 창구는 오픈런 행렬을, 대출 수요자는 빈손으로 발길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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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량규제가 이어지면서 대출의 기준도 뒤틀리고 있다. 차주의 신용도와 상환능력보다 신청 시점과 은행별 잔여 한도가 대출 여부를 좌우한다면 정상적인 금융시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금융회사가 위험을 평가해 자금을 배분하는 대신 행정적으로 정해진 한도가 기준이 되는 순간 금융의 가격 기능도 약해진다.

정부는 가계대출 증가율 관리 목표를 기존 1.5%에서 3% 수준으로 높여 약 30조원의 추가 대출 여력을 마련했다. 신축 아파트 중도금·잔금대출과 재건축·재개발 이주비, 청년·실수요자 금융에 이 여력을 배분하고 LTV·DSR 등 차주별 규제는 유지하기로 했다. 방향은 맞다. 문제는 오픈런이 벌어진 뒤에야 정책을 조정했다는 점이다.

정책의 빈틈은 금융회사와 대출 수요자가 메운다. 2024년에도 같은 소동이 있었다. 가계대출 급증세를 잡겠다며 은행들이 두 달 새 지침을 잇따라 바꿨다. 실수요자임을 증명하려면 이혼서류나 청첩장까지 준비해야 했고, 은행원조차 시시각각 달라지는 규정을 모두 숙지하기 어려웠다. 취지는 단순했지만 현장은 복잡해졌다.

이복현닫기이복현기사 모아보기 당시 금융감독원장은 은행장 간담회에서 국민과 창구 직원에게 불편을 끼친 점을 사과했다. 그해 8월 은행권 주택담보대출은 8조2000억원 늘어 통계 편제 이후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규제를 촘촘하게 설계하기보다 예외를 덧대는 사이, 정작 잡으려던 가계부채는 더 불어났다.

대출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제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됐다. 지난 8월 3일 발표된 일반 ISA 개편안은 계약기간을 최대 5년으로 제한하고 납입한도 이월을 폐지하는 내용을 담았다. 투자자들의 반발이 이어지자 7일 대통령이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고, 이후 정부는 축소했던 한도 이월과 만기연장 혜택을 되돌리는 방향까지 검토하고 있다. ISA만이 아니다. 이른바 '주가 누르기 방지법'도 재검토 대상에 함께 올랐다.

대출과 세제는 다른 영역이지만 불확실성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닮았다. 발표가 먼저였고, 예외와 보완책은 그 뒤를 따랐다. 수정 자체가 아니라 순서가 문제다. 처음부터 따져야 할 내용을 시장 반응을 보고서야 고치는 방식이 반복된다.

대출 수요자는 한도가 줄기 전에 먼저 신청하고, 투자자는 혜택이 사라지기 전에 막차를 탔다. 금융회사도 위험 분석보다 다음 규제와 예외의 향방을 먼저 계산한다. 정작 시장이 감당해야 할 위험관리는 그 사이 뒷전으로 밀린다.

금융정책의 신뢰는 규칙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 오늘 믿은 규칙이 내일 달라진다면 그 비용은 금융소비자와 시장의 몫이다.

대출정책은 총량 중심에서 차주별 상환능력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DSR 등 차주별 심사를 정교하게 운용해 상환능력이 부족한 차주와 과도한 레버리지를 가려내야 한다. 총량규제는 급격한 쏠림에 대응하는 한시적 수단으로 제한해야 한다. 일률적인 한도보다 차주의 위험도를 먼저 보는 것이 금융정책의 기본에 가깝다.

세제정책도 발표 후 수습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시장 참여자의 회피 행동과 형평성 문제를 사전에 점검하는 영향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 확정안과 검토안을 명확히 구분하고, 불가피하게 예외를 두더라도 적용 기간과 종료 조건을 시장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제시해야 한다. 정책을 발표하는 순간부터 시장이 규칙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10여 년 전 우간다에도 못 미친다는 지적을 받았을 때나, 5년 전 대출 창구가 닫혔을 때나, 2년 전 지침이 잇따라 바뀌었을 때나, 올해 대출 오픈런 이후 총량 목표를 다시 높였을 때나 시장이 보내는 경고는 크게 다르지 않다. 시장은 이제 정책의 방향보다 다음 예외와 수정 시점을 먼저 계산한다. 발표 후 땜질식 보완을 거듭한 정책 운용이 시장의 혼란과 불신을 키운 결과다.

정부가 바꿔야 할 것은 정책의 강도가 아니라 설계 방식이다. 차주의 상환능력을 기준으로 규제하고, 시행 전에 부작용을 점검하며, 확정된 규칙은 일관되게 운용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먼저 봐야 할 대상은 차주의 위험도다. 시장이 요구하는 것은 더 강한 규제가 아니다. 한 번 정한 규칙을 예측 가능하게 지키는 정책이다.

김의석 한국금융신문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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