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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장기불황의 원인을 둘러싼 진단 전쟁: 2001년 디플레이션 선언을 계기로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smkim54@gmail.com

기사입력 : 2026-09-28 09:27

일본 장기불황의 원인을 둘러싼 진단 전쟁: 2001년 디플레이션 선언을 계기로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2001년 3월 16일 일본 정부는 마침내 일본 경제가 ‘완만한 디플레이션 상태’에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버블이 붕괴한 지 10년이 지난 뒤였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은행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와중에도 일시적으로 경기가 반등하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일본 정부는 이를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99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경기 역시 좀처럼 본격적인 회복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이처럼 불황이 장기화되자 일본 정부도 결국 장기간의 침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디플레이션을 진단하는 것과 그 원인을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왜 물가가 떨어지는지를 설명하지 못한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도 결정하기 어렵다. 논쟁의 핵심은 일본 경제가 왜 10년이 지나도록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했는가에 있었다.

이에 대한 진단은 크게 두 가지 시각으로 나뉘었다. 하나는 생산성 둔화, 과잉설비와 과도한 부채, 부실채권 누적과 한계기업의 퇴출 지연 등 버블 붕괴 여파로 형성된 구조적 요인을 중시하는 견해였다. 다른 하나는 통화·재정 정책이 충분히 완화적이지 못해 디플레이션 기대를 효과적으로 차단하지 못했다며 거시경제정책의 오류에 무게를 두는 견해였다.

이처럼 진단이 달라지면 정책의 우선순위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구조적 문제가 핵심이라면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은행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우선이었고 소극적인 거시경제정책이 핵심이라면 보다 과감한 통화 완화와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총수요를 우선 부양할 필요가 있었다.

2001년 4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의 출범은 어떤 정책을 우선시할 것인가를 두고 두 진영 간 논쟁이 첨예하게 맞서는 계기가 되었다. 불황의 원인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무엇을 먼저 해결할 것인지 즉 정책의 우선순위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본의 불황 원인에 대한 진단 전쟁은 단순한 학계의 논쟁을 넘어 실제 정책 방향을 둘러싼 치열한 논쟁으로 이어졌다.

2001년 3월: 디플레이션 공식 선언과 원인 논쟁

일본의 디플레이션은 어느 날 갑자기 발생한 현상이 아니었다. 버블 붕괴 이후 자산가격 하락과 수요 위축이 장기화되고 금융시스템의 기능이 약화되면서 물가 하락 압력이 지속적으로 누적되었다. 도매물가와 GDP 디플레이터의 하락은 소비자물가보다 일찍 시작됐고 1990년대 후반에는 소비자물가마저 하락세가 뚜렷해졌다.

결국 2001년 3월 16일 일본 정부는 월례경제보고에서 일본 경제가 ‘완만한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이는 논쟁의 종착점이 아니라 장기불황의 원인을 둘러싼 본격적인 논쟁의 출발점이었다.

물가 하락의 본질을 무엇으로 보느냐에 따라 위기 극복을 위해 무엇을 먼저 해결해야 하는지도 달라진다. 한쪽에는 디플레이션을 버블 붕괴 이후 누적된 구조적 요인의 결과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대규모 부실채권에 짓눌린 은행, 시장 퇴출을 면한 채 연명하는 좀비기업, 과잉설비와 노동·상품 시장의 경직성 등이 성장과 자원 배분을 제약하고 디플레이션 압력을 키웠다는 주장이다. 이 관점에서는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은행과 기업의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것이 경기 회복의 중요한 전제였다.

다른 한쪽에서는 총수요 부족과 소극적인 거시경제정책 대응에 주목하는 견해가 있었다. 버블 붕괴 이후 통화·재정 정책의 완화 정도가 미흡했을 뿐만 아니라 경기 회복의 조짐이 보일 때마다 정책 기조를 너무 일찍 긴축으로 선회함으로써 총수요 부족이 장기화되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관점에서는 디플레이션을 구조조정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현상이 아니라 과감한 통화 완화와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통한 총수요 부양으로 정면 대응해야 할 과제로 보았다.

당시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두 시각이 팽팽하게 맞섰으나 논의가 거듭되면서 수요 위축에 따른 물가 하락 위험에 한층 더 경계감을 높이게 되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행은 2001년 3월 19일 통화정책 운용목표를 금융기관이 일본은행에 예치한 당좌예금 잔액으로 전환하며 ‘양적완화 정책’을 전격 도입했다.

이어 2001년 4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 출범하면서 디플레이션 대응 및 구조개혁의 방향을 둘러싼 논의는 국정 운영의 최우선 쟁점으로 급부상했다. 이에 따라 어떤 정책을 우선시할 것인가를 두고 정책 노선 간의 대립도 한층 첨예해졌다.

부실채권에서 생산성 저하까지: 구조개혁파가 본 장기불황의 악순환

구조개혁파가 바라본 장기불황의 본질은 단순한 유효수요 부족이 아니었다. 이들은 버블 붕괴 이후에도 충분히 정리되지 않은 금융·기업 부문의 부실과 과잉 설비 그리고 과도한 부채 등 구조적 요인이 자원 배분의 왜곡을 초래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디플레이션과 불황을 그 자체로 독자적인 원인이라기보다 금융 및 기업 부문의 구조적 부실과 낮아진 성장잠재력이 표출된 결과로 보는 진단이었다.

이들이 주목한 핵심 문제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과도한 부실채권과 많은 좀비기업의 연명으로 인한 금융과 실물경제 사이의 악순환이었다. 버블 붕괴 후 일본 금융권에서는 손실을 신속히 인식하고 상각하기보다 대출 만기 연장 등을 통해 부실 정리를 미루는 관행이 확산되었다. 이로 인해 회생 가능성이 낮은 한계기업 즉 이른바 좀비기업에 자금과 인력이 고착되는 문제가 발생했다. 오사카대학의 오가와 가즈오는 『대불황의 경제분석』에서 이 같은 금융부문의 부실과 한계기업 지원이 생산적인 부문으로의 자원 배분을 제약하고 기업 투자를 위축시켰음을 계량적으로 분석·입증했다.

문제는 부실채권과 좀비기업의 연명이 금융기관의 부실에만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었다. 은행의 부실은 기업의 자금조달을 제약하고 기업의 부진은 다시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금융과 실물경제 사이의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2002년 BIS 연차보고서도 당시 일본의 상황을 실물경제와 금융시스템 사이의 강력한 양방향 피드백으로 설명했다. 경기침체가 은행의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동시에 취약한 은행시스템이 경기 회복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단순한 유동성 공급 확대만으로는 금융·기업 부문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어려우며 부실채권 정리와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둘째는 버블기에 누적된 ‘3대 과잉’과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의 둔화였다. 기업들은 과도한 채무·설비·고용이라는 ‘3대 과잉’을 안고 있었는데 이는 신규 투자와 기술혁신을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하야시 후미오와 에드워드 프레스콧(Edward Prescott)은 1990년대 일본의 성장률 둔화에서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 TFP) 증가율의 급격한 하락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분석했다. 이들의 접근은 생산성 변화와 같은 실물적 요인이 경기변동과 성장률 변화를 설명할 수 있다는 실물경기변동(Real Business Cycle, RBC) 모형에 기반하고 있었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까지 비교적 높았던 생산성 증가율이 1990년대 들어 크게 둔화됐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일본의 장기불황을 통화정책이나 금융위기의 충격만으로 설명하기보다 생산성 둔화를 중심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실물 중심의 시각은 통화정책의 중요성이나 금융위기의 파급 효과를 지나치게 경시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는 장기불황의 원인을 총수요 부족과 이에 대한 거시경제정책의 대응보다는 생산성과 공급 구조에서 찾음으로써 일본 경제 분석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후 고이즈미 내각의 구조개혁론에 중요한 논리적 토대를 제공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공급 측면의 생산성 둔화가 소득과 성장 기대를 낮추면서 수요 부진을 심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생산성 회복을 제약하는 악순환이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히토츠바시대학의 후카오 쿄지가 지적했듯이 생산성 둔화는 임금 상승을 억제하여 가계 소득의 정체로 이어졌다. 결국 미래 기대소득 즉 항구소득(Permanent Income)의 감소에 직면한 가계 소비를 줄이고 저축을 늘리는 방어적 태도로 돌아섰고 이는 다시 총수요 부족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귀결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일본의 장기불황을 ‘수요 부족이냐 공급 측의 문제냐’라는 단순한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금융시스템의 부실과 기업의 과잉부채가 자원 배분을 왜곡하고 이것이 생산성 증가세와 성장잠재력을 떨어뜨리면서 낮아진 성장 기대가 다시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복합적인 악순환이 형성됐다는 설명이다. 훗날 시라카와 마사아키 전 일본은행 총재 역시 장기적인 잠재성장률 하락이 향후 소득 증가에 대한 기대를 낮추고 이로 인한 소비와 투자의 위축이 디플레이션 압력을 가중시킨다고 설명했다.

결국 이들 구조개혁파가 강조한 것은 금융과 기업 부문의 수술이 전제되지 않은 총수요 부양책만으로는 장기불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에 따라 부실채권을 조속히 정리하여 좀비기업의 연명의 고리를 끊고 설비와 고용의 과잉을 해소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로 부상했다. 나아가 규제 완화와 민영화를 통해 자원이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이동하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접근은 이후 추진된 강도 높은 개혁 정책들의 핵심적인 이론적 토대가 되었다.

총수요 부족과 디플레이션: 리플레이션파가 본 거시경제정책의 실패

구조개혁파가 일본 경제의 문제를 누적된 구조적 비효율과 생산성 둔화에서 찾았다면 리플레이션파는 만성적인 총수요 부족과 디플레이션 그리고 이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한 거시경제정책에 더 큰 무게를 두었다. 이들은 구조적 문제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다. 문제는 구조개혁을 장기불황 극복의 최우선 처방으로 추진하면서 총수요 부족과 디플레이션을 방치할 경우 실물경제의 위축이 다시 금융 및 기업 부문의 부실을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부를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처럼 디플레이션 극복을 위한 거시정책의 역할을 강조하며 리플레이션 정책의 이론적 기초를 확립한 대표적 학자가 폴 크루그먼(Paul Krugman)이었다. 그는 일본 경제를 명목금리가 사실상 제로 수준에 도달하면서 전통적인 금리정책의 효과가 제한되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 상태로 진단했다.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면 명목금리를 낮추더라도 실질금리를 충분히 낮추기 어려워진다. 크루그먼은 중앙은행이 단순히 통화량을 늘리는 데 그치지 말고 앞으로도 충분히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신뢰를 형성해 디플레이션 기대를 반전시키고 물가상승을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실질금리를 낮추고 소비와 투자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논리였다. 이러한 논리는 일본의 일부 경제학자들에게도 지지를 받으면서 리플레이션 정책을 둘러싼 논쟁으로 발전했다.

리플레이션파가 통화정책의 대표적인 실패 사례로 지적한 것은 2000년 8월의 제로금리 해제였다. 일본은행은 1999년 2월 제로금리 정책을 도입하면서 디플레이션 우려가 해소될 때까지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그러나 2000년 들어 경기 회복 조짐이 나타나자 일본은행은 디플레이션 우려가 상당 부분 해소됐다고 판단했고 8월 11일 무담보 콜금리 목표를 0.25% 수준으로 인상했다.

리플레이션파는 이 결정을 경기 회복이 충분히 자리 잡기 전에 이루어진 성급한 긴축으로 평가했다. 특히 이들은 제로금리 정책을 유지하겠다는 기존의 입장을 뒤집은 것이 정책에 대한 시장의 신뢰를 훼손시키고 디플레이션 기대를 다시 강화했다고 보았다. 실제로 일본은행 내부에서도 이후 경기 상황이 악화되자 2000년 8월의 제로금리 해제가 적절했는지를 둘러싼 재검토가 이루어졌다.

재정정책에서도 비슷한 비판이 제기됐다. 리플레이션파가 대표적인 사례로 지적한 것은 1997년 하시모토 내각의 재정 긴축이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누적된 재정적자를 줄이기 위해 소비세율을 3%에서 5%로 인상하고 공공투자를 줄이는 등 재정건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경기 회복의 기반이 충분히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가 시행됐고 이후 아시아 외환위기와 주요 금융기관의 연쇄 파산이 겹치면서 실물경기의 위축이 더욱 심화됐다. IMF도 1997년의 재정 긴축 이후 일본 경제가 다시 침체에 빠졌으며 1997년 말부터 1998년에 걸쳐 생산이 크게 감소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디플레이션이 장기화되면서 물가 하락은 단순한 가격 조정을 넘어 경제 전반의 지출과 기대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으로 발전했다.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기업의 명목 매출과 현금흐름이 악화되는 반면 실질 부채 부담은 도리어 커진다. 여기에 자산가격 하락까지 겹치면 담보가치가 떨어져 금융기관의 부실이 다시 확대될 수 있다. 리플레이션파는 이러한 경로를 통해 디플레이션이 금융 부실과 경기침체를 서로 강화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리플레이션파는 디플레이션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서두를 경우 기업과 금융기관의 손실이 현실화되어 경기 위축이 한층 심화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부실채권 정리와 한계기업 퇴출 과정에서 자산가격과 고용이 추가 하락하는 2차 충격이 발생할 수 있음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이들은 구조개혁 자체를 무작정 반대하기보다는 과감한 통화·재정정책을 통해 디플레이션을 탈출하고 명목소득을 먼저 회복시키는 것이 구조조정에 앞서는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했다.

리플레이션파가 제시한 핵심적인 정책 대안은 보다 과감한 통화 완화이었다. 리플레이션파는 일본은행이 제로금리의 한계를 넘어 양적완화와 명확한 물가목표를 활용해 디플레이션 기대를 약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특히 인플레이션 목표제(Inflation Targeting)의 도입 여부가 핵심 쟁점이 되었다. 리플레이션파는 일정한 물가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달성할 때까지 강력한 통화 완화를 지속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당시 하야미 마사루 총재를 비롯한 일본은행은 통화공급 확대만으로 물가상승을 보장하기 어렵고 중앙은행이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를 약속할 경우 정책의 신뢰성이 오히려 훼손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경제학적 진단에서 정책 선택으로: 구조개혁과 리플레이션

당시 일본의 경제정책 담론이 처음부터 양자 구도였던 것은 아니다. 와세다대학의 와카타베 마사즈미가 지적했듯이 시장의 자율적 조정을 중시하는 슘페터적 견해부터 전통적 케인스주의, 재정건전성 교조주의, 적극적 통화신용론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공존했다. 그러나 2001년 디플레이션이 공식 선언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내각이 출범하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론은 빠르게 ‘구조개혁 선행론’과 ‘수요·리플레이션 우선론’이라는 두 축으로 수렴했다.

결국 이 논쟁은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은 무엇에서 비롯되었는가’라는 원인 진단을 넘어 ‘어떤 정책을 어떤 순서로 추진할 것인가(Sequencing)’라는 정책의 실행 순서 문제로 확장된 것이었다. 고이즈미 내각의 경제정책을 주도한 다케나카 헤이조는 1990년대식 재정지출 확대라는 임시방편을 단호히 거부했다. 부실채권과 금융기관의 취약성을 방치한 채 집행하는 수요 부양책은 ‘구멍 난 항아리에 물 붓기’에 불과하다는 진단이었다. 이에 맞서 리플레이션파는 디플레이션 상황에서 강행되는 급진적 구조조정이 자산가격 폭락과 고용 충격을 유발해 도리어 불황의 악순환을 부채질할 것이라 경고했다.

이처럼 학계에서 벌어진 복잡한 논쟁은 정치의 장으로 넘어가면서 한층 자극적이고 선명한 구호로 재편되었다. 구조개혁파는 자신들의 정책을 ‘기득권 타파와 체질 개선’의 상징으로 내세우며 개혁의 단기 비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개혁 저항 세력’으로 규정했다. 반면 리플레이션파의 주장은 일본은행의 소극적인 정책 대응을 비판하고 적극적인 통화 완화를 요구하는 정치적 구호로 단순화되었다. 구조개혁과 거시경제정책 대응이 가져올 구체적인 득실을 면밀히 따지기보다 ‘구조개혁이 먼저인가, 거시경제정책의 대응이 먼저인가’라는 단순한 대립 구도가 부각된 것이다.

복합적 요인들이 서로 맞물려 발생한 장기불황의 실체 앞에서 어느 한쪽만을 절대적 선결 과제로 삼는 양자택일의 접근은 타당성을 갖기 어려웠다. 금융 부실이 투자를 위축시키고 이에 따른 수요 부족이 업의 수익 기반을 침식하여 부실을 가중시키는 악순환 속에서는 두 과제 모두를 아우르는 ‘정책 조합(Policy Mix)’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기불황 논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진짜 질문은 ‘어느 진영이 옳았는가’가 아니다. 금융시스템의 부실과 총수요 부족이 복합 작용하는 구조적 위기 속에서 '과연 정책의 우선순위와 속도를 어떻게 설계하고 조합할 것인가'에 대한 정교한 답을 찾는 일이었다."

진단 전쟁이 남긴 교훈: 선택이 아닌 순서와 조합의 문제

2000년대 초반 일본 경제를 뜨겁게 달군 불황 원인을 둘러싼 진단 논쟁은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나지 않았다. 구조개혁을 중시하는 견해와 거시경제정책의 과감한 대응을 주장하는 견해가 맞서는 동안 불황과 디플레이션은 장기화되었고 정책 우선순위를 둘러싼 논쟁 역시 쉽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금융·기업 부문의 부실과 총수요 부족이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처방만으로는 일본 경제가 안고 있던 불황의 악순환을 끊어내기는 애당초 불가능했다.

돌이켜보면 이 논쟁의 핵심은 구조개혁과 리플레이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하는 데에 있지 않았다. 금융·기업 부문의 부실을 정리하지 않고서는 자원 배분의 왜곡과 생산성 저하를 해소하기 어려웠지만 디플레이션과 총수요 부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구조조정을 서두르면 단기적인 경기 위축과 부실 확대를 초래할 위험도 있었다. 반대로 통화·재정정책을 통해 총수요를 뒷받침하더라도 금융과 기업 부문의 구조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경기 회복의 지속성을 확보하기 어려웠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어느 한쪽의 처방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두 문제에 대응하는 정책을 어떤 순서와 조합으로 추진할 것인가였다. 디플레이션 압력을 완화하고 총수요와 명목소득을 회복시키는 한편 금융기관의 부실채권을 정리하고 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방식으로 두 정책 간의 상호 보완성을 극대화할 필요가 있었다.

일본의 경험은 불황 원인에 대한 진단 차이로 인해 정책 수단이 이분법적 양자택일로 고착될 때 그 정책적 교착 상태가 가져오는 경제적 비용이 얼마나 막대해질 수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준다. 금융·기업 부문의 부실과 총수요 부족은 서로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영향을 주는 요인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스템과 기업 부문의 부실이 경기와 생산성을 악화시키고 경기와 수요의 부진이 다시 금융과 기업의 부실을 키우는 상황에서는 어느 한쪽만을 해결해서는 불황의 악순환을 끊고 지속 가능한 경기 회복을 달성하기 어렵다.

결국 일본 장기불황의 진단 전쟁이 남긴 중요한 교훈은 어느 한쪽의 진단만이 절대적으로 타당하다고 주장하는 데 있지 않고 서로 다른 진단이 설명하는 문제에 대해 어떻게 동시에 대응할 것인가에 있다. 경제위기에서는 정책의 선택 자체만큼이나 정책의 우선순위와 조합이 중요하다. 일본의 장기불황은 그 순서와 조합을 둘러싼 판단이 늦어질 경우 그에 따른 경제적 비용이 얼마나 장기간 지속될 수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김성민 교수(전. 카이스트 금융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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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 장기불황의 원인을 둘러싼 진단 전쟁: 2001년 디플레이션 선언을 계기로 [김성민의 일본 위기 딥리뷰] 2001년 3월 16일 일본 정부는 마침내 일본 경제가 ‘완만한 디플레이션 상태’에 있다고 공식 선언했다. 버블이 붕괴한 지 10년이 지난 뒤였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고 은행 부실채권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와중에도 일시적으로 경기가 반등하는 양상이 나타났는데 일본 정부는 이를 경기 회복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 흐름은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1999년 이후 소비자물가는 지속적으로 하락했고 경기 역시 좀처럼 본격적인 회복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 이처럼 불황이 장기화되자 일본 정부도 결국 장기간의 침체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그러나 디플레이션을 진단하는 것과 그 원인을 설명하는 2 중대범죄수사청이 이끄는 금융 수사 패러다임의 전환 2026년 10월 2일 중대범죄수사청 조직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의 시행으로 1949년 시작된 검찰청은 77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이제 수사와 기소를 담당하던 검찰청은 폐지되고, 수사는 중대범죄수사청(이하 ‘중수청’), 공소의 제기 및 그 유지에 필요한 사항은 공소청이 담당하며 수사와 기소가 분리된 사법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중수청 시대의 개막에 따라 금융 사건 수사에 중대한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전국 단위 금융수사 체계로…관할 확대·방어권 개선먼저, 중수청의 도입은 금융 범죄 관할의 확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형사소송법은 범죄지, 피고인의 주소, 거소 또는 현재지를 토지관할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금융 사건의 3 ‘롤러코스피’에 휘둘리지 않는 비법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연일 오르자 반도체 ETF에 올라탄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다. ‘삼전닉스’가 코스피를 끌어올리며 9000선을 돌파하던 때만 해도 상승세가 계속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하지만 시장은 순식간에 방향을 바꿨다. 코스피는 9000선을 넘어선 뒤 5000대까지 밀렸고, 다시 7000선을 회복하는 과정에서 투자자들은 또다시 시장 방향을 고민해야 했다.올해 국내 증시는 그야말로 롤러코스터였다.반도체 슈퍼사이클과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에 대한 기대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를 밀어올린 반면, 미국 금리와 국제유가, 전쟁 등 대외 변수에 따라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기도 했다.실제로 코스피가 8000선에서 9000선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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