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신문은 2023년부터 올해 4월 말까지 자본시장에서 공모 회사채를 발행한 일반 기업(은행채·여전채 등 제외) 240여 곳 중 금융사·공기업과 발행 횟수가 1회에 그쳐 추이를 보기 어려운 곳을 제외한 84개사를 추려 동일 만기 회사채의 발행 궤적을 시계열로 비교·분석했다.
기업 고유의 실질 조달부담 변화를 확인하기 위해 해당 기간 국고채 금리 변동분과 신용등급별 평균 크레딧 스프레드 변동분을 제거했다. 이 두 가지 외부 환경 요인을 배제하고 남은 값이 바로 기업만의 고유 리스크 변화를 뜻하는 '실질 조달비용'의 변동 폭이다.
이 값을 다시 두 단계로 나누어, 채권평가사 4곳이 산정한 민평(민간채권평가사 평균) 금리가 등급 평균 대비 어느 수준인지, 그리고 수요예측에서 기관투자자들이 민평 대비 얼마에 주문을 넣었는지를 비교했다. 채권평가사의 판단과 실제 시장의 판단을 분리해 살펴본 것이다.
분석 결과 신용등급 변동 없이 조달부담이 커진 기업, 등급이 올랐음에도 조달조건이 나빠진 기업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등급 상향에 앞서 시장 수요가 몰리며 조달비용이 눈에 띄게 개선된 사례도 있었다.
SK지오센트릭, AA- 유지...3년 새 실질 조달부담 37bp 올라
신용등급 변동이 없었음에도 조달부담이 커진 기업의 대표적 사례가 SK지오센트릭(AA-)이다. 이 회사는 2023년부터 올해까지 AA- 등급을 유지했지만, 실제 조달 여건은 크게 달라졌다.2023년 1월, SK지오센트릭은 3년물 회사채를 4.313%에 발행했다. 당시 AA- 3년물 등급 평균 금리는 4.606%로 이 회사는 등급 평균보다 29.3bp 싸게 자금을 조달한 셈이다. 당시 SK지오센트릭의 개별민평은 이미 AA- 평균보다 7.7bp(1bp = 0.01%p) 높아 AA- 내 하위권 평가를 받았지만, 투자자들은 개별민평금보다 37bp 낮은 금리에 주문을 넣었다.
그러나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자 기류가 변했다. 2024년 1월에는 민평 대비 스프레드는 0bp로 프리미엄이 사라졌고, 2025년 2월에는 민평 수익률 대비 높은 금리를 지급해야 했다.
올해 3월에는 민평 대비 28bp 높은 가산 금리를 줘야 했으며, 경쟁률은 1.75배까지 떨어졌다. 결국 국고채 금리 등 거시 효과를 모두 제거한 SK지오센트릭의 순수 조달부담은 3년 새 36.8bp 치솟았다. 신용등급은 그대로인데 시장의 체감 리스크는 확대된 것이다.
KCC글라스(AA-) 역시 비슷한 흐름이었다. 채권평가사 등급 평가는 변동이 없었지만 기관 수요는 급격히 약화됐다.
2024년 6월과 2025년 1월까지만 해도 발행금리는 개별민평보다 11~12bp 낮았고 경쟁률은 5배를 상회했다. 그러나 건설·건자재 업황 둔화가 이어진 올해 2월, 수요예측 경쟁률이 1.30배까지 떨어지며 개별민평 대비 25bp 높은 금리로 발행할 수밖에 없었다. 1년 반 만에 실질 조달부담이 26.7bp 상승한 셈이다.
등급 오른 대한항공도 흔들…한화오션은 시장이 먼저 반영
대한항공은 등급 상향 이후에도 시장 반응이 엇갈린 사례다.이 회사의 신용등급은 2025년 5월 A로 상향(기존 A-)됐다. 신용등급이 A-였던 2023년 11월부터 2025년 2월까지 공모채 3년물을 총 다섯 차례 발행했는데, 당시 개별민평금리는 A- 등급 평균보다 27~70bp 낮게 형성되며 동일 등급 내 최상위권을 유지했다. 등급 상향을 앞둔 기업이라는 시장 평가가 선반영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A 등급으로 오른 이후 2025년 9월에는 개별민평 대비 26bp 낮게 발행됐지만, 올해 3월에는 정반대 상황이 나타났다. 개별민평금리는 여전히 A 등급 평균보다 35bp 낮은 최상위권을 유지했음에도, 시장 수요가 하락하며 개별민평 대비 20bp 높은 발행금리를 요구받았다.
반면 기업의 펀더멘털 개선이 신용등급보다 먼저 실질 조달금리에 반영된 사례도 있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개별민평금리는 2023~2025년 내내 AA- 등급 내 하위권 수준이었다. 하지만 방산 수출 확대와 실적 개선 기대가 커지면서 실제 수요예측에서는 두 자릿수 경쟁률이 이어졌다. 2025년 1월 수요예측에서 14.7배의 자금을 끌어모으며 발행금리는 개별민평 대비 19bp 낮게 결정됐다. 이후 2026년 1월, 'AA-'에서 'AA'로 등급 상향이 이루어졌다.
한화오션은 더 극단적인 사례다. 2025년 2월, 한화오션은 BBB+ 등급으로 3년물 710억 원을 발행했다. 당시 BBB+ 3년물 등급 평균 민평은 6.567%였으나, 이 회사의 발행금리는 4.571%로 등급 평균보다 199.6bp나 낮았다.
2025년 7월엔 격차가 더 커졌다. 발행금리는 4.020%로 BBB+ 등급 평균(6.388%) 대비 236.8bp 낮았다. 'BBB+' 등급을 유지하는 동안에도 이미 'A-급' 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것이다.
BBB+ 개별 채권이 등급 평균 금리보다 2%p 이상 낮게 발행되는 건 이례적이다.
신용등급은 BBB+로 평가됐지만, 투자자들은 한화그룹 인수 및 조선업 업황 회복에 따른 수주 확대 기대를 반영해 선제적으로 가격을 매기고 있었다.
이번 분석 결과는 신용등급이 조달비용의 '기준점'일 뿐 '결정자'는 아니라는 사실을 명확히 시사한다. 시장은 업황과 수급, 투자심리는 물론 기업의 실질 리스크 변화까지 한발 앞서 가격에 선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경우 한국금융신문 전문위원 kwd1227@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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