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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구정 현대ʼ서 ‘디에이치ʼ까지…현대건설 아파트 명가 65년 [건설 브랜드의 역사 ①]

조범형 기자

chobh06@fntimes.com

기사입력 : 2026-07-27 00:00

마포아파트 등 공동주택 문화 이끌다
힐스테이트서 하이앤드 브랜드 진화

▲ 주한미군 공사계약 장면. 사진제공 = 현대건설

▲ 주한미군 공사계약 장면. 사진제공 = 현대건설

[한국금융신문 조범형 기자] 현대건설(대표이사 이한우)의 주택사업 역사는 국내 공동주택 시장이 형성되고 브랜드 경쟁으로 발전해 온 과정과 맞닿아 있다. 현대건설의 태동은 1947년 5월 25일 청년 사업가 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이 서울시 중구 초동 현대자동차공업사 한켠에 ‘현대토건사’라는 간판을 내걸면서 시작됐다. 광복 이후 주둔하던 미군정 발주 공사를 수주하며 착실히 기반을 다진 현대토건은 1950년 1월 현대자동차공업사를 합병해 현대건설주식회사로 법인 출범했다.

그러나 법인 설립 불과 반년 만에 6·25 전쟁이 발발하면서 회사는 생존 자체가 희박한 최대 위기에 빠졌고, 정주영 사장 일행은 모든 사업 기반을 서울에 남겨둔 채 부산까지 피란길에 올라야 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현대건설은 피란지 부산에서 미8군 후방기지사령부 공사를 따내며 생존의 물꼬를 텄다.

특히 1952년 12월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 당선자의 전격적인 방한을 앞두고 펼쳐진 두 가지 일화는 미군의 절대적 신뢰를 얻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미8군은 당선자가 머물 숙소인 운현궁에 보일러와 수세식 화장실이 설치돼 있지 않아 깊은 고민에 빠져 있었다. 남은 일정이 빠듯해 발을 굴리던 미8군이 공사를 의뢰하자 현대건설은 “할 수 있다”며 즉각 착수했다. 난리통에 주인이 피란을 떠나 비어 있던 서울 시내 빈집들을 이 잡듯 뒤져 보일러통과 세면대, 욕조, 양변기를 뜯어왔고, 24시간 돌관공사를 진행해 열흘 만에 모든 수리를 완벽하게 끝냈다.

이어 미8군은 아이젠하워 당선자가 방문할 부산 UN군 묘지가 겨울철이라 황량하다며 푸른빛이 도는 풀을 입혀달라는 무리한 요청을 했다. 현대건설은 낙동강 일대의 보리밭을 통째로 사들여 묘지에 옮겨 심었고, 삭막했던 겨울 묘지는 푸른 녹지로 탈바꿈했다. 불가능해 보였던 과제까지 해낸 정주영의 추진력은 미군의 신뢰를 더욱 공고히 했고, 이후 현대건설은 미8군 발주 공사를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하며 재도약의 기반을 다졌다.

전후 국가 재건의 선봉에 서며 1961년 서울 무교동에 첫 사옥을 올린 현대건설은 정부의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전개와 더불어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1965년 국내 건설업체 최초로 태국의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해 해외 진출의 물꼬를 텄고, 수많은 시행착오와 적자를 이겨내며 국제적 기술을 축적했다. 이 경험은 대한민국 고속 성장의 가속페달이 된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이어졌다. 1968년 2월 착공한 경부고속도로에서 현대건설은 전체 428㎞ 구간의 약 30%를 담당하고 가장 까다로운 곡선형 터널인 당재터널 공사를 완수하며 국가 대동맥을 성공적으로 개통시켰다. 이후 1976년 사우디아라비아 주베일 산업항 공사를 수주해 단 한 건으로 당시 국가 예산 절반과 맞먹는 9억60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등 해외 건설 신화를 이어갔다.

국토 인프라를 구축한 현대건설의 역량은 자연스럽게 국민 주거 안정으로 확장됐다. 1960년대 빠르게 진행된 도시화로 심각한 주택난이 발생하자 정부는 단독주택 대신 공동주택 공급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현대건설은 1961년 착공한 국내 최초의 단지형 아파트인 마포아파트 건설에 참여했다.

마포아파트는 I자형과 Y자형 건물을 단지 형태로 배치해 이후 국내 아파트 개발의 기틀을 마련한 사업으로 평가된다. 이어 1970년 고층 아파트의 효시인 힐탑외인아파트와 여의도 시범아파트 건설에 참여하며 시공 역량을 다졌고, 1973년 8월 서빙고동 현대아파트를 통해 최초의 자체 주택사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고급 아파트의 원조 '압구정 현대아파트'

1975년 4월, 현대건설은 아파트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상징적인 사업에 착수한다. 바로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건설이다. 당시 압구정동 일대는 채소밭과 과수원이 펼쳐진 한강 변 모래밭에 불과했다. 경부고속도로 공사 당시 외국에서 수입한 중고 중장비를 보관하기 위해 확보해 두었던 야적장 부지에 대규모 아파트를 지어 올린 것이다.

1976년 주택사업 전담 계열사인 한국도시개발을 설립하고 1987년까지 총 14차에 걸쳐 6150여 가구의 매머드급 단지를 조성한 압구정 현대아파트는 강남 개발과 부동산 붐을 견인했다. 당시 새로운 차수의 모델하우스가 공개될 때마다 일대 교통이 마비될 정도로 엄청난 인파가 운집했고, 이때부터 ‘현대아파트’는 아파트의 대명사이자 불패의 브랜드로 군림했다. 반세기가 지난 현재 현대건설은 압구정2·3구역 재건축 시공권을 잇달아 확보하고, ‘압구정 현대’의 주거 유산을 계승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하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주택 시장의 거센 패러다임 변화를 맞이한다. 경쟁 건설사들이 사명을 떼고 고유 브랜드를 앞세워 시장을 공격적으로 재편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대건설은 ‘현대’라는 이름의 강력한 브랜드파워에 의존하며 기존 대단지에 ‘현대홈타운’을 부분 적용하는 선에서 대응했으나, 경쟁사 브랜드 선호도가 추월하는 현상이 나타나자 2004년부터 전격적인 브랜딩 작업에 나섰다.

2006년 9월 28일 계동사옥 아산홀에서 새로운 주거 브랜드 ‘힐스테이트(Hillstate)’를 공식 발표했다.

고급 주거단지를 뜻하는 ‘Hill’과 높은 지위·품격을 뜻하는 ‘State’를 결합하고 사명 머리글자 ‘H’를 연계해 정통성과 현대적 감각을 조화시켰다. 2006년 10월 첫 적용 단지인 ‘서울숲 힐스테이트’는 요트를 형상화한 외관과 명품 설계로 75.4대 1의 청약 경쟁률을 기록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 4월에는 도곡동에 문화·전시 멀티 스페이스인 ‘힐스테이트 갤러리’를 개관했고, 파주·오산·용인 등 수도권 주요 지역에서 1924가구를 성공적으로 분양했다.

▲ 압구정 현대아파트 조감. 사진제공 = 현대건설

▲ 압구정 현대아파트 조감. 사진제공 =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출시 이후 기존 현대홈타운 입주민들 사이에서도 단지 명칭을 바꾸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대표 사례는 수원 영통구의 매탄 현대홈타운이다.

2006년 2월 입주를 시작한 이 단지는 힐스테이트 브랜드가 발표되자 입주민 동의 절차와 외벽·문주 등 추가 시공을 거쳐 현대건설로부터 새 브랜드 사용 승낙을 받아냈다.

당시 관할 지자체인 수원시가 집값 자극 우려 등을 이유로 명칭 변경 신청을 거부하는 난관에 부딪혔으나, 입주민들이 수원시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해 2008년 1월 최종 승소 판결을 이끌어내면서 마침내 ‘매탄현대힐스테이트’로 단지명을 공식 변경했다.

이 같은 소송 승소와 성공 사례는 전국 기존 단지들의 개명 운동에 불을 붙였다. 2006년 서울 영등포구의 ‘문래 힐스테이트’, 2007년 울산 북구의 ‘양정 힐스테이트’ 등이 잇달아 간판을 교체하며 힐스테이트 대열에 합류했다.

힐스테이트 넘어 하이엔드 ‘디에이치’로

이후 주택시장의 고급화 경쟁이 본격화하자 현대건설은 2015년 4월 프리미엄 주거 브랜드 ‘디에이치(THE H)’를 선보였다. 단 하나를 뜻하는 ‘THE’와 현대건설·하이엔드·하이 소사이어티를 상징하는 ‘H’를 결합해 ‘단 하나의 완벽함’을 브랜드 콘셉트로 제시했다. 일반 주택에는 힐스테이트를, 고급화 수요가 높은 주요 정비사업에는 디에이치를 적용하며 브랜드 체계를 이원화했다.

디에이치는 입지와 사업 규모만으로 적용 여부를 결정하지 않고 단지별로 차별화된 설계와 상품을 제시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현대건설은 각 단지에 ‘최초·최대·유일’ 요소를 반영하고, 고유한 희소성과 독립된 편의성, 예술적 심미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웠다. 단지마다 외관과 조경, 커뮤니티, 마감재 등을 달리해 같은 브랜드 안에서도 개별 사업장의 특성을 살리는 전략이다.

디에이치 브랜드를 처음으로 내걸고 수주한 사업장은 서울 서초구 삼호가든3차 재건축 단지인 ‘디에이치 라클라스’다. 첫 분양·입주 단지는 개포주공3단지를 재건축한 ‘디에이치 아너힐즈’로, 2019년 9월 입주했다. 이후 일원대우아파트를 재건축한 ‘디에이치 포레센트’, 개포주공8단지를 개발한 ‘디에이치 자이 개포’, 개포주공1단지를 재건축한 6702가구 규모의 ‘디에이치 퍼스티어 아이파크’ 등이 잇달아 준공되며 적용 단지가 확대됐다.

디에이치의 적용 범위는 강남권을 넘어 서울 주요 정비사업지로 넓어졌다. 현대건설은 2017년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사업을 수주해 ‘반포 디에이치 클래스트’를 제안했고, 2020년에는 한남3구역 재개발 시공권을 확보해 ‘디에이치 한남’을 선보였다. 방배5구역 재건축 단지인 ‘디에이치 방배’도 공사가 진행되면서 디에이치는 현대건설의 주요 도시정비사업을 대표하는 하이엔드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마포아파트에서 압구정 현대아파트, 힐스테이트와 디에이치로 이어진 변화는 국내 주택시장이 대량 공급에서 브랜드와 상품성 중심의 경쟁으로 전환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현대건설의 다음 과제는 이러한 브랜드 유산에 스마트 기술과 새로운 주거 가치를 더하는 일이다. 변화하는 수요에 맞는 상품성과 차별화된 주거 경험을 지속해서 제시할 수 있을지가 향후 브랜드 경쟁력을 좌우할 전망이다.

조범형 한국금융신문 기자 chobh06@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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