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사진 = 주현태
서울 전역이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이고 경기 12개 지역까지 규제지역이 확대되면서 정비사업 의존도가 높은 대형사들의 신규 수주가 위축될 가능성이 커졌다. 공사비 상승 국면 속에서 사업성 악화 우려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상황이다.
20일 정부·정비업계 등에 따르면 이번 부동산 대책은 대출 제한 강화와 실거주 의무 도입, 주택담보대출 한도 세분화, 스트레스 금리 인상 등이 골자다.
서울이 통째로 거래허가구역으로 지정된 것은 이번이 최초다. 공인중개사·부동산 전문가 등 부동산 시장에서는 거래량 위축과 가격 상승세 둔화를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다만 문제는 이 조치가 단기적인 수요 억제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강남구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이번 정책의 골자는 현금이 없으면 아파트를 사지 말라는 의미로, 대출 제한으로 사실상 거래가 막혔다”며 “강남지역에서는 치명적인 규제로, 기존 강남에서 거주하는 사람들 외에는 진입하기 어려워진 만큼 당분간 거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북구 공인중개사도 “큰 평수나 상급지로 이동하려던 임차인은 아예 발이 묶여버린 환경에 놓였다. 이에 거래량 축소는 물론 집값도 떨어지면서 관망세가 짙어질 것”이라며 “정부가 정책을 빠르게 검토해 서민 주거 부담을 고쳐주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었다.
앞서 정부가 9·7 대책을 통해 공급 확대를 예고했지만, 실질적인 물량이 시장에 반영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이번 대책으로 인한 가장 직접적인 타격은 수도권 정비사업을 기반으로 매출을 올려온 대형 건설사들이 받을 것으로 보인다.
대형 건설사는 최근 서울·경기권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 중심으로 매출을 이어왔다. 실거주 의무 강화와 대출 제한으로 신규 수요가 줄면 사업 추진 자체가 늦춰질 수밖에 없다. 여기에 공사비 상승이 겹치면 수익성 악화는 불가피하다.
한국신용평가도 이번 대책으로 “정비사업을 비롯한 민간 개발사업의 진행이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며 건설사 사업 기반 약화를 우려했다. 한신평은 규제 지역이 전체 분양·입주 예정 물량의 20% 정도에 불과하다는 점은 위안이지만, 체감 충격은 단순한 수치 이상이라고 평가했다. 지방 분양시장 부진이 장기화되고 수도권 외곽 미분양이 늘어난 상황에서 대형 건설사들이 리스크가 낮은 서울 핵심지 정비사업에 집중해왔던 만큼, 안전판을 흔들고 있다는 평가다.
다만 분양시장에 미치는 단기 충격은 제한적일 것으로 전망된다. 규제지역 대부분이 높은 청약 경쟁률을 유지해왔고, 분양가와 매매가격의 격차가 커지면서 실수요층이 여전히 두텁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5년 8월 기준 미분양 주택의 98%가 서울 외 지역에 몰려 있으며, 서울 분양 현장은 빠르게 소화되고 있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수도권 정비사업 지연과 공사비 부담이 맞물리면서 대형 건설사들의 실적 공백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우세하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서울 정비사업에 매출의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는 구조에서 규제 확대로 신규 수주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며 “여기에 실수요자들이 묶이면서 공급 대책도 투자 요인 자체가 없어지기 때문에 관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최근 공사비 원가가 상승해서 조금씩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이 같은 흐름대로라면 내년 이후 실적 공백이 불가피하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비주택 부문이나 지방 사업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지 않으면 리스크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정책을 그대로 유지한다면 정부가 공급을 늘려도 대형 건설사보다는 중견 건설사가 소화하는 게 대부분일 것으로 보인다”며 “이 같은 상황에서 증권사들도 대형 건설사들의 실적 전망을 낮추면서 더욱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 토대를 살펴봤을 때 확실한 부분은 현 정권은 대형 건설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올해 들어 6·27, 9·7, 10·15 등 세 차례에 걸쳐 부동산 대책을 잇따라 내놓았지만, 정책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건설사들의 실적과 신용도에 대한 압박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신평 관계자는 “지역 간 양극화가 지속되는 한 규제 강화를 통한 수요 억제는 단기적 해결책에 그칠 것”이라며 “근본적인 주택시장 안정을 위해서는 9·7 대책 등 공급 확대 방안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주현태 한국금융신문 기자 gun1313@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