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후 국회 앞에 위치한 한국산업은행 앞 광장에 모인 금융감독원 직원 및 비상대책위원회 위원들은 “이번 개편안은 금융감독의 독립성을 저해하고, 금융소비자 보호에 역행하는 졸속 정책”이라고 밝혔다.
주최측 추산으로 이 날 국회 앞에 모인 직원들은 약 1100여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직원들이 국회 앞에서 집회에 나선 것은 지난 2008년 당시 금융감독기구 개정 반대 집회 이후 17년 만의 일이다.
당초 금융노조 등과의 연대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나왔지만, 이 날 집회는 금감원 직원들만으로 진행돼 비교적 차분하고 질서 있는 모습으로 진행됐다.
연단에 오른 윤태완 금감원 비대위원장은 “금융정책과 금융감독의 분리 그리고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는 단지 그럴싸한 구호이자 껍데기에 불과하다”며, “실상은 기관장 자리 나눠먹기를 위한 금감원 해체이며, 공공기관 지정이라는 목줄을 채워 금융감독을 금융정책에 더욱 예속시키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주장했다.
윤 비대위원장은 “오늘 금감원의 외침은 권한 확대를 위한 조직 이기주의나 밥그릇 싸움이 아니다”라며, “통합감독체계를 해체하는 금소원의 설립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더욱 약화시킬 것이 명약관화하기에, 이러한 진실을 국회와 국민 여러분들게 알려드리고자이 자리에 선 것”이라고 말했다.
비대위는 먼저 금감원이 수행하는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 영업행위 감독 및 금융소비자 보호는 서로 단절된 것이 아니라, 상호 유기적으로 연결된 불가분의 관계라고 밝혔다. 현재 추진 중인 개편안은 이런 업무를 인위적으로 분절해 소비자보호 기능은 약화시키고, 불필요한 사회경제적 비용만 발생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비대위는 이미 쌍봉형 감독체계를 도입한 영국과 호주의 실패 사례를 들었다. 호주의 초대형 보험사(HIH) 파산, 최대 연금 운용사 트리오캐피탈의 대규모 금융사기 사건 등은 양 감독기관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고 정보공유가 원활하지 않아 발생한 사각지대의 함정이라는 것이다.
또 비대위는 전날 성명서에서 "금융감독체계 개편을 위해서는 금감위 설치법, 은행법 등 고쳐야 할 법안만 50여개, 고쳐야 할 조문은 9000개 이상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이를 이틀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검토한다는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밖에 언론 일각에서 현 정부조직 개편안을 두고 '특정인을 위한 자리 만들기'를 위한 것이라는 의혹이 나오는 것에 대해 “금감원 직원들은 그러한 주장을 믿고 싶지 않으나, 합리적 논의가 생략된 채 성급하게 졸속으로 입법을 추진하는 것이 그러한 의혹을 더욱 증폭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비대위는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국가의 명운을 결정하는 중차대한 사안인만큼, 지금이라도 금융위설치법 개정 졸속 강행을 즉시 중단하고 개편안 마련을 주도하신 것으로 알려진 김은경 전 소보처장 등 국정기획위 위원, 각계각층의 전문가, 금감원 구성원을 포함한 공청회등 민주적인 논의의 장에서 충분한 숙의와 토론을 거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비대위는 최근 벌어지고 있는 금융사고 등 금융소비자보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지적에는 고개를 숙였다. 이를 해결하고자 비대위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에게 “금융소비자보호 강화를 위한 실효성있는 대책 마련을 위해 충분한 공론과 숙의를 촉구한다”고 요청했다.
비대위는 “그간 금감원 구성원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 일선에서 치열하게 노력해왔지만,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과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금융소비자보호의 독립성·중립성 강화를 위해 인사청문 대상자에 금감원장을 추가하고, 국회에서 금감원의 금융소비자보호 업무성과를 평가하는 등 금융소비자 보호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제고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나아가 이찬진 원장에게는 “더욱 두터운 금융소비자보호를 위해 금감원의 조직 구조, 운영, 업무 절차 등 금감원 업무 전반에 있어 뼈를 깎는 쇄신 방안을 마련해 국민앞에 제시해 줄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집회 후 만난 윤태완 비대위원장 역시 “그간 금감원의 역할이 금융사들의 건전성 관리에 치우쳐 있는 경향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소비자 보호 위주로 다시 역할을 생각하고 쇄신해야 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찬진 원장과의 소통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원장님과는 언제든지 소통이나 토론이 가능한 상황이지만, 매일 만난다고 해서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라며, “필요한 사안이 있을 때는 항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구조고, 원장님도 와서 이야기할 것이 있으면 허심탄회하게 나누자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 날 집회에는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인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간사)과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도 자리했다. 당초에는 여당 간사인 강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이 겹쳐 불가피하게 자리하지 못했다.
마이크를 잡은 김재섭 의원은 “기재부 권한 축소라는 명분에 대해서는 이해가 가지만, 이를 위해 금감원을 건드리는 것은 명분이 맞지 않는다”며, “소비자 보호를 위해 기능을 분산시키는 것은 효율성도 떨어지고 전례도 없는 일이다. 코스피 5000을 달성하겠다는 정부가 금융기관을 이렇게 졸속으로 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꼬집었다.
다만 비대위는 “국회의 경우 여야 모두와 꾸준히 소통을 하고 있어 특정 진영에 치우치고 있지 않다”며, “이번에는 공교롭게도 야당 의원들만 참여했지만 우리의 목소리가 정치적으로 이용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확대해석을 경계했다.
장호성 한국금융신문 기자 hs6776@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