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한국금융신문DB
[한국금융신문 홍지인 기자]
국내 증권사들의 전산 시스템이 잇단 장애를 일으키며 디지털 금융 인프라의 허술한 민낯을 드러내고 있다. 메리츠증권과 키움증권을 비롯해 주요 증권사에서 HTS(홈트레이딩시스템)·MTS(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 먹통 사태가 잇따르는 가운데 1조원에 육박하는 전산운용비는 실효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9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지난 6일 밤 메리츠증권 HTS와 MTS에서 미국 주식 매매 주문이 체결되지 않는 오류가 발생했다. 장애는 미국 정규장이 개장한 오후 10시30분부터 약 1시간 넘게 이어졌고, 주문 정정 및 취소도 불가능한 상태가 지속됐다. 메리츠증권은 당일 밤 시스템 정상화를 공지하고 8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피해보상 신청을 접수받겠다고 밝혔다. 메리츠증권의 미국 주식 관련 전산장애는 이번이 세 번째로, 지난해 12월과 올해 2월에도 주문 오류 및 합병비율 산정 오류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 키움증권 역시 두 차례에 걸쳐 국내 주식 주문 장애를 겪었다. 지난달 3일과 4일, 각각 오전 장 초반 시간대에 HTS·MTS 주문 체결이 지연되며 투자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당시 미국의 관세 발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등 증시 변동성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시스템 장애가 겹치며 손실을 입은 투자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전산장애는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체거래소 넥스트레이드(NXT)의 거래 개시와 함께 미래에셋증권·키움증권에서 실시간 시세 조회와 체결 지연 오류가 발생했고, 토스증권,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등에서도 각각 해외 종목 정보 조회, 주문 오류 등이 보고됐다.
전산 장애는 매년 증가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증권사 전산장애는 연평균 90건 안팎으로 집계됐으며, 지난해는 94건에 달했다. 같은 기간 증권사 전체 전산운용비는 5802억 원(2020년)에서 9697억 원(2023년)으로 늘어 1조 원에 육박했지만, 장애 발생 빈도는 줄지 않았다.
특히 투자자 보호는 여전히 사각지대다. 전산장애 피해 보상은 각 증권사 자율 규정에 따라 진행돼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절차적 부담이 크고, 보상 범위도 제한적이다.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20~2024년 전산장애 피해자 중 보상을 받은 비율은 79%에서 58%로 감소했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조사에 나섰다. 금감원은 키움증권에 대해 수시검사에 착수해 장애 원인과 내부 대응, 보상체계 등을 들여다보고 있으며, 메리츠증권 사례 역시 중대사고 분류 여부를 검토 중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거래 시스템 오류는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투자자 신뢰를 해치는 심각한 사안”이라며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금융의 급속한 확대에 비해 전산 인프라와 대응 체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한다. 업계 관계자들은 “시스템이 복잡해지고 이용자 수가 급증하면서 전산 장애의 위험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며, “기술적인 보완뿐 아니라 인력·예산을 총동원한 구조적 개편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관계자는 “외주화, 인적 오류, 복잡한 연계 시스템 등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 만큼, 사전 예방 체계뿐 아니라 신속한 복구 능력도 함께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지인 한국금융신문 기자 helena@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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