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8일 본회의를 열고 이런 내용을 담은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현행 지배구조법은 법령준수, 건전경영, 주주 및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해 금융회사에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내규 등에서 대표이사 등을 내부통제 책임자로 규정했다.
하지만 앞서 파생결합펀드(DLF), 라임·디스커버리·옵티머스 펀드 불완전판매 사태와 대규모 횡령 등 각종 금융사고가 연이어 발생함에 따라 현행 제도 및 운영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특히 내부통제 관련 규율이 실제 영업을 담당하는 실무부서 관리자와 직원들의 의식과 행동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내부통제 기준 마련 의무를 위반한 직원이 사전에 자신이 책임자였음을 모르는 경우가 다수 있고, 실제 내부통제 위반 사건 처리 과정에서 임직원이 자신의 통제 노력을 설명하기보다 하급자의 위법행위를 알 수 없었다고 소명하는 등 현행 규율을 형식적·절차적 의무로만 인식하는 사례가 발생하면서다.
또 현재 법령은 내부통제 기준 마련의 형식적 의무만 부과하고, 실제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규율하고 있지 않아 실효성 있는 통제기능의 작동을 담보할 수 있는 수단이 부재했다.
지배구조법은 내부통제와 관련해 '금융회사는 법령을 준수하고 경영을 건전하게 하며 주주 및 이해관계자 등을 보호하기 위해 임직원이 직무를 수행할 때 준수해야 할 기준 및 절차(내부통제 기준)를 마련해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 책임 영역이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일례로 손태승닫기손태승기사 모아보기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해외금리 연계 DLF 사태 당시 내부통제 부실 등을 이유로 금감원으로부터 중징계를 받았지만 이에 불복해 문책 경고 등 처분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해 지난해 12월 대법원에서 최종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대법원은 “현행 법령상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할 법적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금융회사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 위반과 내부통제기준 '준수' 의무 위반은 구별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금융위는 지난 6월 금융회사가 임원별 내부통제 책무를 사전에 명확히 구분하고, 각 임원이 금융사고 방지 등 내부통제 의무를 적극적으로 이행하도록 하는 내용의 ‘금융회사 내부통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이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지배구조법 개정안에는 해당 방안이 대부분 반영됐다.
우선 책무구조도(responsibilities map) 도입을 통해 임원 개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내부통제 대상 업무의 범위와 내용을 사전에 명확화 한다.
금융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획일적인 규율이 아닌 금융회사가 스스로 각자의 특성과 경영여건 변화에 맞는 내부통제시스템을 구축・운영하도록 하는 동시에 임원 개개인의 책임을 명확히 정함으로써 내부통제에 대한 임원들의 관심과 책임감을 제고하려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회사 대표이사(CEO)가 책무의 중복·공백·누락 없이 마련해야 한다. 작성된 책무구조도는 이사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금융당국에 제출해야 한다. 책무구조도 도입으로 해당 임원의 책무가 명확해짐에 따라 금융회사는 임원이 해당 책무수행을 위한 전문성, 정직성, 신뢰성 등을 갖추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의무도 부담하게 된다.
책무구조도 제출은 법 시행 후 6개월 후부터 은행·지주회사에 적용되는 것을 시작으로 금융업권·규모별로 시행시기를 달리해 규모가 큰 금융회사부터 시행토록 할 계획이다.
책무구조도에 기재된 임원은 자신의 소관 업무에 대해 내부통제가 적절히 이뤄질 수 있도록 내부통제기준의 적정성, 임직원의 기준 준수여부 및 기준의 작동여부 등을 상시점검 하는 내부통제 관리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특히 대표이사에는 내부통제 총괄 책임자로서 전사적 내부통제 체계를 구축하고 각 임원의 통제 활동을 감독하는 총괄 관리의무가 부여된다. 기존의 내부통제기준 마련 의무에 더해 관리의무가 추가되는 것이다. 회사 내에서 조직적, 장기간・반복적 또는 광범위한 문제가 발생하는 내부통제 시스템적 실패(systemic failure)에 대해 대표이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그동안 거수기, 경영진 방패막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이사회의 내부통제 감시 역할도 명확해진다. 이사회의 내부통제 및 위험관리에 관한 심의・의결사항 추가, 이사회 내 소위원회로 내부통제위원회 신설 등 상법상 이사의 내부통제 감시 의무가 구체화된다.
내부통제 관리조치를 실행하지 않거나 불충분하게 실행해 관리의무를 위반한 임원에 대해서는 기존 내부통제기준 마련의무 위반과 동일하게 신분제재가 부과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는 금융사고의 발생을 초래한 위법행위에 대한 감독자책임이 아닌, 신설된 내부통제 관리의무라는 본인의 업무를 소홀히 한 고유의 자기책임이라는 점에서 기존 내부통제 제재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다만 결과책임이 되지 않도록 평소에 상당한 주의를 다해 내부통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임원은 금융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책임을 감경 또는 면제받을 수 있게 된다. 이를 통해 사전에 예측・통제하기 어려운 불의의 금융사고로부터 담당 임원의 소신과 판단, 노력이 보호받게 될 것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설명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업권과 함께 상당한 주의 여부 판단을 위한 업무영역별 모범사례를 전파하는 등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제재와 관련해 소통을 지속해 내부통제 책임 여부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제고해 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번 개정안은 공포 6개월 후 시행된다. 내년 6월부터 은행, 지주부터 순차적으로 적용될 예정이다.
금융위는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는 만큼 초기 제도 도입 및 준수에 따른 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속히 시행령 등 하위규정을 마련해 입법예고할 계획”이라며 “규정 마련과정에서 광범위한 금융권 의견수렴을 진행하는 등 지속 소통하고 규정으로 담기 어려운 부분은 금융권과 함께 모범사례도 만들어 지속 전파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번 개정으로 금융회사 모든 임원들이 내부통제를 자신의 업무로 인식하도록 하는 등 근본적인 금융권의 내부통제 행태 변화가 나타나고 준법, 소비자보호, 건전성 관리 등 모든 영역에서 금융회사의 책임성이 제고됨에 따라 우리 금융산업이 신뢰를 회복하고 한단계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