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토큰 증권, 증권가 새 먹거리 될까? 광풍에 그칠까?
(2) 디지털 자산 업계, 토큰 증권 바라보는 두 시각
(3) 토큰 증권 열기에 당국 고민도 커져
“토큰 증권 발행(STO·Security Token Offering), 조각 투자 등의 용어가 아직 생소합니다. 주식은 기업 가치를 따질 수 있는데 토큰 증권은 펀더멘털(Fundamental·기초자산) 등 어떤 가치를 보고 투자하면 되나요?”
키움증권(대표 황현순)과 카카오페이증권(대표 이승효)을 이용하면서 주식 등에 투자하는 31세 이명호닫기이명호광고보고 기사보기(가명·남) 씨 말이다. 그는 “비트코인(BTC·Bitcoin) 광풍 당시 금융 사기 사례나 작년에 있었던 루나(LUNA)·테라USD(UST) 사례 등을 보면서 가상 자산 투자는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토큰 증권이 코인(Coin·가상 자산)이 뭐가 다른지 아직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토큰 증권을 바라보는 투자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기대감과 우려감을 나타내는 업계나 제도권 편입을 위해 땀 흘리는 금융당국과 온도 차가 있다. “이름 자체를 들어본 적 없기에 평을 할 수 없다”거나 “디지털 자산과 차이가 뭐냐”고 묻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물론 아직 토큰 증권 투자가 상용화되기 전 단계라 이러한 반응이 이상한 건 아니다. 하지만 ‘투기’와 ‘투자’가 한 끗 차이임을 비춰볼 때 제도 편입 초기 단계에 더 세심한 정책 토의가 필요하다.
실제로 금융위원회(위원장 김주현닫기김주현광고보고 기사보기)는 올해 초 토큰 증권 발행·유통 가이드라인(Guide-line·안내 지침서)을 발표할 당시 ‘투자자 보호’를 핵심 가치로 내세웠었다. 기존의 증권성 판단 기준을 세세히 설명하고 자본시장법 내에서 투자자를 보호하겠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통과 발행 주체를 분리하고 한국예탁결제원(KSD·사장 이순호닫기이순호광고보고 기사보기)에 발행 총량 및 계좌 관리 역할을 맡기는 등 토큰 증권 제도를 도입한 다른 나라보다 더 적극적으로 투자자 보호 내용을 담았다.
이수영 금융위 자본시장과 과장은 가이드라인 발표 당시 “발행과 운영을 분리하고 이해충돌을 방지해 투자자를 보호하는 게 자본시장 제도의 기본 원칙”이라며 “이는 새롭게 형성될 장외시장에도 똑같이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국의 방향성과 같이 투자자들 역시 현재 토큰 증권이 제도권에 도입될 경우, 가장 기대하는 요소로 ‘투자 위험부담 감소’를 꼽고 있다.
최근 블록체인(Blockchain·분산원장) 기반 여론조사 애플리케이션 ‘크라토스’(CRATOS)가 회원 3176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토큰 증권 법제화’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토큰 증권 도입 시 ‘법적 보호를 통한 투자 위험부담 감소’가 가장 기대된다고 꼽은 이들은 1220명으로 집계됐다. 38.4%에 달하는 수준이다.
조각 투자를 통한 자산 포트폴리오(Portfolio·자산 배분 전략) 다양화(31.1%), 전반적 블록체인 생태계 활성화(19.1%), 거래 효율성 및 투명성 제고(11.4%) 등 수익성이나 편의성을 나타내는 지표보다 높게 나온 것이다.
이러한 결과 배경엔 기존의 비트코인(BTC·Bitcoin) 등 자본시장법 적용 밖에 있는 가상 투자 피해 사례가 늘어났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경찰청(청장 윤희근)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8년 1700억원이던 가상 자산 피해액은 2021년 3조1300억원까지 18배 이상 불었다.
즉, 가상 자산과 같이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둔 토큰 증권이 도입된다면 디지털 자산의 장점을 살리면서 자본시장법 규제를 적용받아 날로 많아지는 투자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긍정적이다. 이제껏 국내에선 가상 자산 불공정거래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선 민법상 사기 혐의를 끌어다가 적용해야 하는 형편이었다.
가상 자산을 일종의 투기 상품으로 봐 자본시장법에 따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루나 사태로 손실을 본 국내 투자자만 28만명에 달했지만, 이를 설계한 권도형 테라폼 랩스(Terraform Labs) 대표를 처벌할 방도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최근 상황은 다르다.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SEC·Securities and Exchange Commission)가 루나를 증권이라 보고 권 대표를 상대로 민사소송에 들어갔다. 현재 서울남부지방검찰청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단(단장 단성한)도 루나를 ‘투자계약증권’이라 분류하면서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한 상태다.
몬테네그로에서 체포된 권도형 대표는 현재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 싱가포르, 몬테네그로까지 총 4개국 수사선상에 올라가 있다. 아울러 검찰은 테라폼 랩스 공동창업자인 신현성 씨에게도 구속영장이 청구됐다.
현재 자본시장법상 증권은 ‘투자자가 공동사업에 금전을 투자하고 손익을 귀속 받는 계약상의 권리’라고 정의돼 있다.
아직 계약을 바라보는 기준에 따라 가상 자산 증권성에 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루나 코인을 증권으로 보고 처벌이 들어가게 되면 비슷한 구조를 가진 대부분의 알트코인(Altcoin·비트코인을 제외한 가상 자산)은 증권성 심사를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비 증권성 코인이라 판단되더라도 기존보다는 규제 틀이 강하게 작용할 전망이다. 증권성 코인과의 규제 차익을 해소하기 위해 국회에서도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을 서두를 수밖에 없어진다.
금융감독원(원장 이복현닫기이복현광고보고 기사보기)은 그동안 규제 대상에서 벗어나 있던 가상 자산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감독역량을 확충하기 위해 릴레이 세미나도 예정에 두고 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원장 신진영) 연구위원은 지난 16일 열린 ‘DCON 2023: 건전한 시장 조성을 위한 디지털 자산 컨퍼런스(Conference·대규모 회의)’에서 “디지털 자산 기본법 제정이 계속 미뤄지니 증권이냐 가상 자산이냐가 ‘모 아니면 도’의 문제가 돼 버렸다”며 “국회가 서둘러 입법을 통해 증권성을 띤 토큰 증권과 그렇지 않은 가상 자산의 규제 차익을 좁힐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과 국회에서도 ‘투자자 보호’ 중요성을 강조하는 발언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김소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6일 국회에서 열린 ‘블록체인이 이끄는 금융혁신, 자본시장에 힘이 되는 STO’ 간담회를 통해 “다른 증권에 비해 규제를 대폭 완화해야 한다는 업계 목소리도 있지만, 증권 형식의 토큰이라는 이유로 규제 차익이 생기고 시장이 기형적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한다”며 “투자자 보호를 위해 장외 유통법 제도화 등 법적 규제를 만들어 지속 가능한 산업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피력했다.
그러면서 그는 “투기가 아니라 기존에 없었던 증권 계약 시장이 만들어지길 기원한다”며 토큰 증권 사업자와 투자자에게도 “정부 논의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건강한 생태계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국회부의장인 정우택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된 ‘STO·가상 자산 시장 정비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정책 세미나(Seminar·연수회)’에서 개회사를 통해 “토큰 증권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 비우량 자산의 토큰 증권화나 투기적 현상 등 시장 피해가 우려된다”며 투자자 피해를 최소화할 규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정 부의장은 “기술 개발과 발전 방향에 있어 자유와 지원이, 거래 및 투자환경 조성 방향에 있어선 피해와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한 규제가 필요할 것”이라며 “디지털 자산 기본법이 부재한 상황 속 투자자를 보호할 장치가 존재하지 않은 만큼, 서둘러 이러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져 사회적 관심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축사를 한 왕덕양 송곡대학교 총장 역시 투자자 보호와 디지털 혁신 법제화 추진이 선행돼야 함을 강조했다.
왕 총장은 “허가받지 않은 일반 코인들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피해 사례가 발생하고, 가상 자산과 관련된 혼탁한 생태계가 조성됐다”며 “자본시장은 투자자가 보호돼야 하고 공정한 경쟁이 이뤄져야 하며, 신뢰를 근저에 둬야 한다”고 전했다.
임지윤 기자 dlawldbs20@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