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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공정과 상식' 어긋나는 역대급 빚 탕감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기사입력 : 2022-08-12 16:55

무분별한 탕감 정책 금융시스템 망가뜨려

모럴해저드 막을 근본적 대책 마련 절실

[데스크칼럼] '공정과 상식' 어긋나는 역대급 빚 탕감
[한국금융신문 김의석 기자] 빚 탕감(蕩減) 정책은 인류 문명과 함께해온 만큼 그 역사가 깊다. 부채(負債) 문제 연구로 유명한 미국 좌파 경제학자 마이클 허드슨(Michael-Hudson) 미주리대 명예 교수에 따르면 빚 탕감 정책은 지금으로부터 4000여년 전인 기원전(紀元前) 2400년쯤 고대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에서 시작됐다.

그는 2018년 ‘고대 부채 탕감의 역사’란 저서(著書)에서 성경의 언어와 예수의 활동을 빚의 관점(觀點)에서 해석한다. 십계명(十誡命) 중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단순히 성적인 관점이 아니라, ‘대출 시 담보로 잡았던 채무자의 아내와 딸을 채무 불이행 시 성 노예로 강요하는 행위’에 대한 언급이라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죄 사함’은 곧 ‘빚 탕감’을 의미하는 것이며, 바리새인(Pharisees)들과 같은 채권자(債權者)들에게 너무 위협적인 존재였던 탓에 십자가형을 받았다고 제기한다.

구약성경(舊約聖經)에도 50년마다 돌아오는 희년(禧年)에 빚을 탕감해야 한다고 적혀 있고, 조선시대에도 흉년(凶年)이들 때는 비슷한 정책이 시행됐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역사에서 빚 탕감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그 만큼 빚으로 인해 고통을 받은 서민이 많았고, 그것이 건강한 공동체(共同體)를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2022년 시작된 윤석열(尹錫悅) 정부. 윤 정부도 출범 100일에 맞춰 ‘빚 탕감’을 예고한다. 정권(政權) 초기마다 되풀이되는 정책이라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강도가 더욱 세진다.

▲윤석열 대통령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한 시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출처=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서민금융통합지원센터를 방문한 시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사진출처=대통령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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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안이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발표된 내용을 보면 배드뱅크(bad bank) 설립을 통해 자영업자와 소상공인(小商工人) 대출 원금을 60~90% 감면(減免) 해주는 계획이 포함됐다. 규모만 보면 125조원을 웃도는 대형 프로젝트다. 코로나19 사태라는 국가적 재난(災難)에 이어 고금리·고물가 등 금융 환경의 악화로 궁지에 몰린 취약계층(脆弱階層)에 대한 정부의 선제적 지원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게 윤 정부의 '빚 탕감' 명분이다.

국가 정책으로 타당해보이지만 문제는 과하다는 점이다. 윤석열 정부가 제시한 원금(元金) 중 60~90% 탕감은 과거 감면 폭보다 크고 과도하다. 노무현(盧武鉉)·이명박(李明博) 정부는 다중채무자(多重債務者) 부채 원금의 30~50%를, 박근혜(朴槿惠) 정부는 부채 원금의 최대 50%를 감면해 줬고 기초생활수급자(基礎生活受給者) 경우 70%까지 깎아 줬다. 문재인(文在寅) 정부는 10년 이상 1000만 원 이하 연체자(延滯者)를 대상으로 최대 전액을 탕감해 준 바 있다.

또한 윤 정부는 빚을 90일 이상 연체하는 채무자(債務者)를 대상으로 채무를 탕감해주겠다고 한다. 이러다 보니 멀쩡한 채무자들 사이에서도 ‘빚을 갚지 않고 버티라’는 말이 나온다. 포털사이트에는 벌써 ‘빚 탕감 받는 방법을 알려 주겠다’는 컨설팅(consulting) 전문업체들이 우후죽순(雨後竹筍) 생겨나고 있다.
물론 국가의 역할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는 것은 두말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고 포퓰리즘(populism)식 퍼주기를 해줘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무분별한 빚 탕감은 성실히 빚을 갚은 ‘건전한 채무자’의 소외(疏外)와 박탈감(剝奪感)을 가져온다. 국가(國家)가 보호해야 할 대상은 원칙(原則)을 지키고 채무를 상환하며 세금(租稅)을 내는 이들이다. 역차별(逆差別)을 하면 누가 이를 공정(公正)하다고 보겠는가. 윤석열 정부는 '공정과 상식'의 관점에서 "무분별한 빚 탕감은 이치(理致)에 맞지 않는 무분별한 포퓰리즘"이라는 어느 금융권 CEO의 지적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사회구성원(社会構成員)들이 함께 나눠야 하고, 그들을 도와주는 시책(施策)을 펴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책무(責務)다. 채권자인 은행들도 사회적 공기(公器)로서 고통을 분담하는 공공적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서민을 위한 정책이라도 상식의 궤도(軌道)를 벗어나서는 곤란하다. 국민 다수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과도한 지원책은 재고(再考)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부와 금융회사들은 지원 대상자 선정에 앞서 부작용(副作用)을 막을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 코로나19 이전 부채 상환 기록, 재무 상황 등을 살펴 지원 규모에 차등(差等)을 둘 필요가 있다. 무의미한 ‘연명(延命) 치료’가 될 수 있는 대출, 부도덕한 무임승차자(無賃乘車者)는 가려내야 한다. 정부는 지금 지원 안 하면 나중에 비용이 더 들 것이라고 하지만 경제위기 때마다 반복되는 빚 탕감 정책은 금융 시스템을 망가뜨려 국가경제(國家經濟)의 위험(危險)을 더욱 키울 수 있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영국 철학자(哲學者) 칼 레이먼드 포퍼(Karl Raimund Popper)의 저서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는 ‘지상에 천국을 건설하겠다는 시도가 늘 지옥을 만들어낸다’(The attempt to make heaven on earth invariably produces hell)라는 말이 나온다. 조건 없는 빚 탕감은 잠시 통증을 멈춰주는 진통제(鎭痛劑)에 불과할 뿐 근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김의석 기자 eskim@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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