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상반기 역대급 실적을 거둔 한 시중은행 고위 임원은 이같이 토로했다. 올 상반기 5대 금융지주(KB·신한·하나·우리·NH농협)는 일제히 사상 최대 실적을 올렸다. 5대 금융지주의 상반기 순이익은 9조372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5.7% 급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에도 5대 금융지주 모두 역대급 실적을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은행 이자이익이 크게 늘어난 영향이 컸다. 5대 은행의 올 상반기 순이자이익은 총 15조4585억원으로 작년 상반기보다 9.28% 늘었다. ‘빚투’(빚내서 투자)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에 따른 대출 증가세가 이어졌고 시중금리 상승과 저원가성 예금 증대로 순이자마진(NIM)이 개선된 결과다. 넘치는 유동성에 따른 주식투자 열풍으로 증권사 수수료 수익이 급증하고 민간 소비회복으로 늘어난 카드사 수수료 수익도 크게 늘었다.
5대 금융지주들은 하반기에도 호실적을 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 인상을 기정사실로 하면서 이자이익 증가세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시장에서는 5대 금융지주의 올해 연간 순이익이 16조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애프앤가이드에 따르면 비상장사인 농협금융을 제외한 4대 금융지주의 올해 순이익 컨센서스(증권가 전망치 평균)는 총 13조839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순이익 대비 27.98% 늘어난 규모다. 농협금융의 연간 순이익을 2조원대 초반으로 가정하면 5대 금융의 합산 순이익은 16조원에 육박하거나 이를 넘길 가능성이 크다. 5대 금융지주는 지난해 총 12조5502억원의 순이익을 낸 바 있다.
이 같은 호실적에도 금융지주사들은 마냥 웃지 못하고 있다. 금융지주들은 그간 좋은 실적을 내고도 비난을 받아왔다. 이자 장사로 쉽게 돈을 번다는 시선 때문이다. 실적이 악화되면 건전성 관리에 실패했다는 진단이 내려졌다. 이번에도 금융지주들이 빚투와 영끌로 떼돈을 벌어들였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코로나19로 인한 역대급 부채로 가계는 빚더미에 허덕이는데 금융지주들은 이자이익으로 주머니를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들이 거둔 역대 최대 규모의 이자이익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정부가 집값을 잡겠다며 대출을 옥죄고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을 늘리는 등의 정책을 내놨지만 부동산 가격은 거꾸로 치솟았다. 대출을 받아 집을 사는 수요는 더 늘었고 은행들은 손쉽게 이자 이익을 챙길 수 있게 됐다. 은행들이 ‘이자놀음’을 한다고 무조건적으로 비난만 하기에는 어려운 이유다.
정치권의 포퓰리즘 금융정책도 부담이다. 정치권은 금융지주사들의 호실적을 빌미로 매번 청구서를 들이밀어 왔다.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고통 분담 차원의 포퓰리즘 청구서는 계속되고 있다. 올해 초에는 금융지주들이 이익공유제에 동참하라고 압박했고 지난 5월엔 금융사들이 5년 동안 매년 2000억원을 서민금융에 출연해야 하는 ‘서민의 금융생활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 시리즈(기본소득·기본금융·기본주택)’를 대표 공약으로 내놨다. 기본대출은 만 19~34세 이하 청년층에게 최대 1000만원, 연 3% 저금리 대출이 이뤄지는 공약으로 이미 서민금융법·지역신용보증재단법 개정안 법안이 국회에 발의됐다. 재난상황 시 은행 대출금을 감면해주는 ‘은행빚 탕감법’이라는 은행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포퓰리즘 법안과 공략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쏟아질 전망이다. 돈을 많이 벌면 벌수록 리스크도 커지는 꼴이다.
은행업은 인허가 사업이다. 정부의 규제와 함께 보호도 받기 때문에 공익적 역할을 무시할 수 없다. 은행 자체의 혁신도 없고 상생과 고통 분담도 아예 없다면 비판받기 마땅하다. 동시에 은행은 기업이다. 주주의 이익을 챙겨야 하는 상장사이기도 하다. 언제까지 은행 이익을 무조건적 ‘악’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은행 이익의 본질을 들여다볼 때다.
한아란 기자 aran@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