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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수의 미술事色⑫] 극사실주의,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는 시대

박정수 정수아트센터관장

기사입력 : 2020-05-11 16:23

정말 이렇게 똑같이 그릴 수 있어? 완전 똑같아. 진짜보다 더 잘 그린 것 같지 않아! 그림을 감상하다보면 간혹 이런 말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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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도 그러하다. 가짜가 진짜인 척한다. 밝혀지지 않으면 진짜가 된다. 어느 누구의 가짜 통장잔고 증명서와는 같다. 세상이 이러다보니 가짜가 진짜인척 하는 일이 많아졌다. 미술계도 그러하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모임이 어려워지고 행사가 불가능해지자 미술전시가 온라인으로 옮겨가고 있다. 진짜 그림을 봐야 한다고, 온라인으로 보는 그림은 맛이 안 난다고 하더니 지금은 그것을 용인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런데 밝혀지지 않아도 가짜임을 아는 것이 있다. 미술 쪽에서는 이것을 극사실주의라고 한다.

사람은 자신이 자신의 얼굴을 바라볼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입체로 볼 수 없다. 거울이나 영상으로 보는 것은 평면일 뿐이다. 사진이나 거울이 아닌 이상 귀나 코나 입도 직접 볼 수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해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는 “현대적 사물의 '진짜 모습'은 무엇에 쓰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이며, 도구로서가 아니라 기호로서 조작되는 것이다.”고 했다.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2007)

그의 주장 중에는 시뮐라르크(simulacres)에 대한 또 다른 해석이 가미된다. 미술용어로도 자주 사용되는 이 말은 모방이나 모사의 의미를 지고 있지만 여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상태에서도 진짜 같은 느낌의 무엇을 가미한다. 컴퓨터 게임같이 가상의 공간이지만 실제로 그것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착각이 제공된다는 것과 비슷하다.

다시 말하면 원래의 물건이나 사물이 없지만 진짜 존재할 것만 같은 그림, 현실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현실에 존재하는 그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개별의 영역을 이야기 한다. 이것이 1960년대 후반 미국에서 시작되는 극사실주의의 철학적 기반이다.

극사실주의(極寫實主義 Hyper-Realism)는 실재(實在)하는 사물을 실제(實際)로 표현하는 의미보다는 형편이나 상태의 실제 ‘현실로 있는 실재하는 것처럼‘ 그리는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사실을 기반으로 하지만 사실에서 벗어난 기호나 기의로 자리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나라의 신라시대 때 솔거가 황룡사 벽에다 소나무를 그렸는데 참새들이 날아와 부딪혀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림으로 그려질 때 솔거의 소나무는 산에 있는 소나무가 아니라 불경(佛經)에 따른 그림 사용방식에 따라 차용된 소나무 이미지였을 것이다. 따라서 솔거의 소나무는 실재하는 소나무가 아니라 불경의 상태를 표현하는 이미지로서 소나무이기 때문에 현재적 개념의 극사실주의였을지도 모른다.

극사실주의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혹은 포토리얼리즘, 포토아트 등으로 불리기도 하는데 있지만 없는, 없지만 있을 것만 같은 생각 속의 미술품이다. 어쩌면 추상보다 더 추상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무엇인가를 그리지만 예술가 개인의 감정을 극도로 배제한 채 일상에서 보이는 현실의 그것처럼 세밀하게 그리는 것이 특징이다. 자신의 주관을 억제하면서 타자의 입장에서 막연히 바라보는 현대미술의 미니멀이나 앵포르멜과 비슷하지만 내용적인 부분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일부 극사실주의는 철학적 기반보다는 붓을 사용하여 세밀하게 그리는 정밀묘사가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과일이나 꽃, 곤충이나 날짐승을 극도로 세밀하게 그려 바라보는 것 자체로의 경외심을 조장되기도 한다.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정착된 극사실주의는 감성이 강화되고 현실적 상황은 다소 약하게 표현되면서 미국의 것과는 다소 차이나는 현상을 지니고 있다.

미국의 극사실주의는 60년대의 만연된 자본주의와 도시민의 소비적 상황을 주요소재로 그려진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자연 경관이나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간과하게 쉬운 주변의 사물을 그려낸다.



상상을 있게하는 윤위동의 그림들

좌) monologue71, 117cmx80.5cm, acrylic,modeling past, sand, 2019 / 우) monologue143, 45.5cmx53cm, acrylic on canvas,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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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주의 화가 중에 윤위동이 있다. 혼자서 세상을 바라보는 입장이거나 누구도 관심없는 자기만의 이야기라는 의미에서 그는 자신의 작품에 ‘monologue’라는 제목을 붙인다. 세상을 등지거나 세상에 외면당하거나 하는 모습보다는 오히혀 스스로 세상을 멀리하는 듯한 여성의 몸이나 소녀의 모습을 그리다가 최근에는 조약돌 시리즈에 집중하고 있다.

조약돌위에 새가 앉아있다. 그냥 자연스럽게 바라볼 수도 있지만 조금만 집중하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위에서 바라본 조약돌에 새들이 누워있는 형상이다. 새들의 동작이 자연스럽다고 여기고자 한다면 조약돌은 벽에 붙여진 상태여야 한다. 이상하지만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 상상속의 모습이다. 그래서 극사실주의가 된다.

좌) monologue80, 162.5cmx130.5cm, acrylic,resin on sand, 2019 / 위) monologue102, 116.8cm x 91cm, acrylic,resin,sand,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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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위를 미끄러지다가 멈춘 돌을 그린다. 납작한 돌로 물수제비를 뜨듯 눈수제비를 뜬 모습이다. 살짝 던졌는지 미끄러지다 멈췄다. 쌓인 눈 위를 헤치듯 인위적으로 돌을 던진 모습이거나 상상속의 모습이거나 상관없다. 눈과 돌의 마찰이 실재로 일어나거나 그렇지 않거나 또한 상관없다. 실재로 그러한 모습일 수 있다는 생각의 실재로만으로서 충분하다. 보드리야르가 주창한 ‘실재보다 더 실제 같은 그러나 없을 수도 있는’ 철학적 상태에 충실히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극사실주의의 원형을 따르고 있다.

정밀묘사와 극사실주의의 구분점이 명확하다. 사물을 진짜처럼 잘 그린다고 극사실주의가 되는 것이 아님을 잘 드러내는 화가이다.



박정수 정수아트센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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