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우드펀딩 1위 기업 와디즈는 지난해 누적 펀딩액 1,000억원을 넘어섰다. 다른 크라우드펀딩 플랫폼도 완만한 성장세를 이어 가는 중이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코넥스 기업에 크라우드펀딩·소액 공모를 허용하고 회계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빠르게 성장 페달을 밟아가는 크라우드펀딩의 빛과 그림자를 들여다본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중심으로 꾸준한 성장세
크라우드펀딩이 태동기를 넘어 성장 페달을 밟고 있다. 크라우드펀딩은 ‘군중 또는 다수(多數)’를 뜻하는 크라우드(Crowd)와 ‘자금 조달’을 뜻하는 펀딩(Funding)을 조합해 만든 단어다.
새로운 아이템을 가진 초기 사업가가 다수의 소액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을 말한다.
크라우드펀딩은 크게 보상형(후원·기부)과 투자형(증권)으로 나뉜다. 도입 초창기 주로 활용된 보상형은 수익을 기대하지 않는다.
자금 부족으로 아이디어를 실현하기 어려웠던 제작자를 후원하고, 제작자는 후원자에게 이에 따른 보상(리워드)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미국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킥스타터(Kick Starter)’가 대표적이다.
2009년부터 지난해 12월 말까지 킥스타터를 통해 진행된 캠페인은 총 42만 9,691건. 모금된 액수만 40억 7,000만달러(약 4조 6,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36%인 15만 6,524건(36.4%)이 성공했다.
최근 각광받는 크라우드펀딩은 투자형이다. 2016년 국내에 처음 도입된 이후 꾸준히 몸집을 키우는 중이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은 중개회사를 통해 스타트업 등 신생 벤처기업에 투자하고 배당 받는 식이다.
금융위원회가 인가한 중개업체에서 기업 정보를 파악한 뒤 투자하면 된다. 목표금액 80% 이상 돈이 모이면 투자가 완료되고 목표에 도달하지 못하면 청약금을 환불 받는다.
투자자는 기업이 수익을 올릴 경우 배당을 받고, 주식 가격이 오르면 주식을 팔아 차익을 남길 수 있다. 물론 기업이 손실을 보거나 파산하면 원금을 잃을 수 있어 고위험·고수익 투자로 분류된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월 31일 기준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으로 자금 조달에 성공한 기업은 429개(누적 펀딩 성공금액 796억원)였다.
2016년 115건, 2017년 183건에 이어 지난해 185건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이어갔다. 펀딩 시도가 2017년 295건에서 지난해 287건으로 감소했지만 성공 건수는 늘어났다. 펀딩을 진행하면 성공할 확률이 높아졌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누적 펀딩금액이 1,000억원을 넘는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이 국내에서 탄생했다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스타트업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손쉽게 자금을 모을 수 있는 시장이 커졌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와디즈 관계자는 최근 “지난해 펀딩금액이 전년 대비 113% 성장한 601억원을 달성했다”며 “2016년부터 현재까지 누적 펀딩금액이 1,075억원을 기록했다” 밝혔다.
리서치 기관인 스타티스타에 따르면 전 세계 크라우드펀딩 시장 규모는 115억 2,300만 달러(약 13조 400억원)다. 하지만 국내 시장 규모는 업계 추산 한해 약 1,200억원에 불과하다. 전세계 시장 규모에 비하면 불모지나 다름없는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와디즈의 누적 펀딩액이 1,000억원 돌파는 ‘의미 있는 진전’으로 판단된다
규제 푸니 스타 업체 탄생… 생태계 확대
특히 정부 규제 완화가 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4월 10일부터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이 발효되면서 개인 투자자가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 투자할 수 있는 한도가 늘었다.
기존엔 개인투자자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려면 한 업체당 최대 200만원까지, 총 금액이 연간 500만원을 넘지 않는 선에서 투자가 가능했다.
하지만 개정안을 통해 한 업체당 500만원까지, 연간 총 투자 금액이 1,000만원까지로 한도가 늘었다. 투자 한도가 늘자 프로젝트에 몰리는 돈이 확 늘면서 ‘스타 업체’도 탄생했다.
한국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모집한 곳은 ‘수제 자동차’로 알려진 ‘모헤닉 게라지스’였다. 이 회사는 지난해 기업당 모집 한도인 7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이런 ‘흥행 대박’을 터트리는 업체가 늘자 시장의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다양한 분야의 업체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자금을 수혈 받으면서 투자의 저변이 넓어졌다. 개설 분야 역시 식음(F&B), 영화, 라이프스타일, 여행·레져, 교육 순으로 다양해졌다.
추가 규제 완화로 날개 달아
생태계가 확대되고 수요가 많아지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 올 1월 15일 추가로 규제가 완화됐다. 투자형 크라우드펀딩에서 한 업체가 모집할 수 있는 자금의 한도가 7억원에서 15억원으로 확대된 것이다.
또 펀딩을 받을 수 있는 기업 범위도 넓어진다. 그간 크라우드펀딩 가능 기업은 창업·벤처기업과 비상장 중소기업으로 한정돼 있었다. 앞으로는 코넥스에 상장된 기업이더라도 공모로 자금을 조달하지 않았다면 상장 후 3년 동안 크라우드펀딩이 허용된다.
시장은 이런 추가 조치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규제가 풀린 직후 기존 한도였던 7억원 초과 펀딩에 성공한 프로젝트가 2개 나왔다. 주식회사 지피페스트가 시도한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9’ 프로젝트는 9억7,000여만원을 모았다.
규제 완화 이틀 후인 1월 17일 자금 모집에 나선 로보어드바이저 기반 자산관리 서비스 ‘불리오’는 펀딩 하루 만에 모집액 8억원을 넘어섰고 1월 31일 기준 12억 8,000만원을 모집했다.
이는 단일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모집 사상 최대 금액이다. 규제가 완화되자마자 역대 신기록을 갈아치운 셈이다.
강영수 금융위원회 자산운용과장은 “현재 중소기업도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조달할 수 있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인 만큼, 향후 국내 크라우드펀딩 시장 규모는 더 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투자자보호 조치는 여전히 미흡
하지만 크라우드펀딩은 성공 사례만큼이나 투자 피해 사례도 적지 않은 분야다. 물론 투자자가 손해를 보는 일은 흔하다.
다만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체가 문제 있는 기업을 사전에 걸러내지 못한다는 허점이 고스란히 투자자 피해로 이어진다는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박혜진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투자형 크라우드펀딩 시장은 제도 도입 이후 창업 초기의 기업에 새로운 자금 조달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면서도 “향후 크라우드펀딩 시장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안정적인 자금 공급처 역할을 하려면 투자자 보호에 소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동안 업계가 ‘창업기업 활성화’에 집중한 나머지 투자자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에 정부 역시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는 최근 크라우드펀딩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는데 투자자가 투자 위험과 청약 내용을 확실히 파악하도록 청약 전 사업 적합성 테스트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 골자다.
일정 금액 이상의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할 때 기업이 직전 사업연도 감사보고서를 공개하도록 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시장을 키워갈 플레이어, 즉 크라우드펀딩 중개업자도 탄탄하지 못하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크라우드펀딩 사업자를 뜻하는 ‘온라인소액투자중개업자’는 15개다. 2016년에도 총 15개 중개업자가 활동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오히려 2016년 신화웰스펀딩이 자본시장법 위반 문제로 등록 취소됐다. 유캔스타트 역시 최근 사업을 폐지했다. KTB투자증권은 신규 펀딩을 종료하고 조만간 사업 폐지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인크는 지난해 1월을 마지막으로 신규 등록 펀딩 프로젝트가 없다. 펀딩포유 역시 지난해 진행한 프로젝트가 2건에 그쳤다. 여러 중개업체가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인 실정이다.
※ 본 기사는 한국금융신문에서 발행하는 '재테크 전문 매거진<웰스매니지먼트 4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김민정 기자 minj@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