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할 대로 성장해 가구당 가입 보험 수가 4.5개에 육박할 정도로 ‘시장 포화’가 심각한 상황인데, 당국은 당국대로 ‘소비자 보호’를 천명하며 보험업계에 대한 날선 시선과 규제를 거두지 않고 있어 보험업계는 도무지 표정을 펴지 못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54개 생명·손해보험사의 당기순이익은 7조2742억 원으로 전년대비 5800억 원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마저도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에서 지난해 삼성전자 주식처분이익이 발생하는 등 투자이익에서 일회성 수익이 작용한 결과로, 다른 보험사들의 영업력 감소는 심각한 수준으로 나타났다.
보험사들의 영업력을 나타내는 수입보험료 부문을 살펴보면, 지난해 국내 보험사들은 201조7835억 원으로 전년 대비 4251억 원(0.3%) 감소한 수치를 기록했다. 특히 생보사들의 수입보험료 감소가 두드러졌다.
110조7435억 원으로 3조2300억 원(2.8%) 줄었다. 저축성보험 수입보험료가 5조2422억 원(13.5%) 급감한 결과다. 총자산이익률(ROA)과 자기자본이익률(ROE) 역시 0.64% 및 6.63%로 전년 대비 각각 0.09%p, 1.04%p 하락했다.
이처럼 실적 저하가 뚜렷한 상황이지만, 당국은 업계보다는 여전히 소비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금융당국 한 관계자는 “시장포화로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영업경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불완전판매 등 소비자권익 침해행위가 증가할 우려가 있다”며, “불완전판매 징후 등 영업동향을 밀착 감시하면서, 소비자 피해를 유발하는 불건전 영업행위에 대하여는 검사 등을 통해 엄정 대응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보험업은 여전히 금융산업 가운데 불완전판매 등으로 인한 소비자 민원이 가장 많은 대표적인 업종으로 통한다.
문재인 정부의 소비자 보호 기조는 물론 윤석헌닫기

◇ 불황에 늘어나는 중도해지, 체질개선 과정 실적 악화…짙어지는 영업 먹구름
문제는 올해에도 보험영업에서 실적을 끌어올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IFRS17 도입은 보험업계의 체질 자체를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자본규제 강화로 인해 보험의 부채평가가 원가에서 시가로 바뀌면 그간 수입보험료 규모가 커 보험사의 외형성장에 도움을 줬던 저축성보험이 부채로 평가받게 된다. 이에 지난해부터 보험사들은 저축성보험을 줄이고 보장성보험 비중을 늘렸지만, 수입보험료 차이로 인한 실적 뒷걸음까지 막지는 못했다.
그나마 재무건전성이 확보되거나 든든한 대주주가 뒤에 있는 대형사들이나 지주계열 보험사들은 걱정이 적지만, 그렇지 못한 중소형 보험사들은 이제는 진심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할 단계까지 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소형 보험사 관계자는 “대형사들에 비해 인력이나 자본도 턱없이 부족해 IFRS17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이 사실”이라며, “재무건전성 확보에 대한 압박이 크다보니 상품 개발이나 마케팅에까지 영향이 끼칠 정도로 어려움이 있다”고 털어놨다.
길어지는 경기 침체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은 보험사만이 아니다. 가계 경제가 악화되면서 소비자들은 있던 보험까지 해약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어 보험사들의 표정을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생명보험협회 월간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25개 생명보험사가 내준 해약 환급금은 23조6767억 원으로 전년 동기(20조1324억 원)보다 17.6%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2017년의 역대 연간 최대치였던 22조1086억 원을 넘어선 수치다. 12월분까지 포함하면 작년 연간 해약 환급금이 역대 최대치인 25조 원을 기록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관측이다.
대표적인 ‘불황형 대출’인 보험약관대출 역시 역대 최대 규모인 61조9000억원으로 1년 새 4조8000억 원이나 늘었다. 은행 등 제1금융권에서 밀려난 서민들이 급전이 필요해 어쩔 수 없이 금리가 더 높은 보험사 대출을 찾는 수요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GDP 대비 보험료를 의미하는 보험침투도(insurance penetration) 분야에서 11.57%로 세계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세계 평균(6.13%)의 1.9배에 달하는 숫자다. 1인당 연간 지출 보험료 역시 377만 원에 달할 정도로 높은 수치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이미 가구당 4개 정도의 보험을 갖고 있고, 있는 보험조차 해약하는 상황에서 아무리 새로운 상품이 개발된들 소비자들의 수요가 있을지는 미지수”라며, “향후 5년여 간 보험업계는 ‘최악의 영업 불황’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다”고 관측했다.
◇ “팔 상품이 없다” 있던 상품 ‘쪼개 팔기’ 트랜드로 경색되는 보험 시장
상황이 이렇다보니 최근 보험업계는 ‘팔 상품이 없다’며 울상을 짓고 있다. 고육지책으로 업계가 택한 방법은 있던 상품을 잘게 쪼개서 보험료 규모가 작은 ‘미니보험’ 형태로 판매하거나, 손해율을 이유로 기존 상품에 존재하지 않던 새로운 담보를 추가하는 형태를 보이고 있다. 어떻게 해서든 ‘영업력’을 유지해야만 회사도 유지되면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판매할 수 있는 상품군이 제한되다보니 한 가지 상품이 나오면 업계 전체가 우루루 몰려 우후죽순으로 ‘미투 상품’을 내놓는 현상도 두드러지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해 상반기를 강타했던 치아보험의 경우, 위험률이 높고 요율 산출 데이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업계 관계자들이 우려를 표한 바 있지만 대부분의 보험사들은 비슷한 상품을 연이어 선보이며 시장 경쟁을 달궜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의 우려대로 치아보험은 높은 손해율을 감당하지 못한 채 특정 담보가 사라지거나, 아예 판매가 중단되는 등 1년 만에 거품이 꺼지고 말았다.
올해 상반기에도 작년 치아보험 열풍을 연상시키는 ‘경증 치매보험’이 붐을 이루고 있다. 기존 치매보험이 CDR척도 3단계 이상의 중증치매만을 보장했다면, 최근 상품들은 CDR척도 1단계에 해당하는 경미한 치매까지 보장해 범위가 넓어진 것이 특징이다.
삼성생명 등 대형사는 물론 중소형사들까지 앞다투어 경증치매를 보장하는 비슷한 상품을 선보이며 시장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
기존에 없던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이 상품 역시 ‘경증치매’의 진단 자체가 확실치 않아 보험사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문제점이 있어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보험업계가 ‘한 철 장사’에 빠지고 있다며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상태다.
특히 보험료가 저렴하다는 홍보로 판매되는 ‘무해지환급형’ 상품의 경우, 중도 해지 시 환급금을 돌려받을 수 없어 더욱 우려를 살 수 있다.
고령 가입자가 많은 치매의 특성상 납입 지속성이 떨어질 수 있고, 이 경우 보험료 부담으로 인해 중도해지가 발생하면 중도환급금과 치매 보장을 둘 다 받을 수 있어 민원이 많아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관계자는 “치매보험 가입자는 주로 고령자이므로 가격만을 이유로 무해지환급형을 택하기보다는 필요에 따라 중도해지를 하는 것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 “무조건적인 압박보다는 현실적인 규제 필요…업계와 대화 늘려야”
당국의 과도한 보험 판매 수수료 규제가 다양한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보험연구원 전용식 연구위원은 ‘주요국 금융상품 수수료 규제의 영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보험의 경우 판매수수료를 보험료에서 선취할 경우 해약환급금·투자금 규모 등이 달라질 수 있어 논란이 될 수 있다”며 “주요국 보험사들도 초년도 보험료의 일정 수준에 비례해 수수료를 상품 판매 직후 지급하고 있다”는 생각을 밝혔다.
판매수수료란 은행·금융투자·보험 등의 중개인·설계사가 상품 판매 직후 금융회사에서 금액과 건수에 따라 받는 보수를 말한다.
전 연구위원은 “주요국에서 판매수수료는 보편적”이라며 “주택담보대출 모집인, 뮤추얼펀드 등 투자형 상품 판매 중개인, 자동차할부금융 모집인, 보험 설계사 등은 판매 직후 금융회사로부터 수수료를 지급받는다”고 설명했다.
현재 금융당국은 현재 보험업계와 태스크포스(TF)를 꾸려 보험 설계사에 대한 수수료 지급 체계 개편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첫해 수수료의 90%를 한꺼번에 주면 소위 ‘먹튀 설계사’와 ‘고아 계약’을 양산할 우려가 크다고 판단, 분급 확대 방안이 논의되고 있는 것.
이에 대해 전 연구위원은 “수수료 규제가 금융소비자, 중개인, 금융회사의 행위를 변화시켜 소비자의 금융상품 수요를 줄일 수도 있고, 합리적이지 못한 금융상품 선택을 불러오는 경우도 있다”고 우려했다.
다시 말해 상품 판매 과정에서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정보의 질이 저하되고, 낮아진 보수 체계에 따라 상품 판매 건수만 늘리려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금융회사 입장에서도 소비자에게 필요한 상품이 아니라 판매가 쉬운 상품 위주로 공급할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전 연구위원은 “영국 금융청과 미국 공정거래위원회도 수수료 규제에 대해 금융상품 수요 감소, 불합리한 금융상품 선택 등의 우려를 제기했다”면서 “공시 강화, 금융 교육, 금융회사 검사, 수수료 체계 규제 등 다양한 수단 가운데 국내 상황에 맞고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단을 선택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장호성 기자 hs6776@f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