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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욜로 여행지] 욜로 여행, 비움과 채움의 여정

김민정 기자

minj@

기사입력 : 2017-09-01 11:07 최종수정 : 2017-10-15 14:13

스페인 ‘카미노 데 산티아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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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M국 김민정 기자] 오감을 만족시키는 즐길 거리도, 느긋한 휴양 거리도 없다. 펼쳐진 것은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요, 할 일이라곤 끊임없이 걷고 또 걷는 일뿐이다. 그런데도 매년 전 세계 2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길을 찾는다. 이름은 카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 우리말로 풀이하면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다.

중세엔 믿음의 길, 현대엔 성찰의 길
산티아고의 정식 명칭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다. 스페인 북서부 갈리시아 지방의 주도인 이곳에는 예수의 12제자 중 한 사람인 산티아고(Santiago)의 무덤이 있다. 영어로는 성 제임스(St. James), 불어권에서는 생 자크(St. Jacques), 우리말로는 야고보(Jacob)라고 부르는 성인이다. 8세기경 갈리시아의 한 수도사가 야고보 성인의 유해를 발견한 후, 이 길은 가톨릭 신자들의 주요 성지순례 코스로 자리 잡았다. 그 후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은 자신의 죄를 속죄 받기 위해 이 길을 걸었다.
중세의 순례자들에게 이 길이 믿음의 길이었다면, 현대의 순례자들에게는 성찰의 길이다. 이 길을 걸으며 머리 아픈 현실을 내려놓고 지리멸렬한 인간관계, 복잡다단한 감정과 번민까지도 떨구어버린다. 그저 단순하게 하루하루를 걷고 또 걸으며, 오롯이 자신에만 집중한다.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다시 내일을 걷게 할 희망과 설렘을 얻는다.

현재 가장 많은 순례자가 걷는 길은 ‘프랑스 루트’로 불리는 카미노 프란세스(Camino Frances)다.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 지대에 있는 생장피에드포르에서 시작해 피레네 산맥을 넘어 산티아고에 이르는 약 800km의 코스다. 피레네 산맥을 넘는 어려움을 피해 스페인 지역인 론세스바예스에서 시작하기도 한다. 어느 쪽을 택하든 푸엔테 라 레이나에서 하나로 합쳐져 에스테야, 부르고스, 레온, 폰페라다 같은 스페인 북부의 주요 도시를 거쳐 산티아고에 도달한다.

이 외에 스페인 서북부의 오비에도에서 시작하는 까미노 프리미티보(Camino Primitivo), 스페인 남서부의 세비야에서 시작하는 비아 데 라플라타(Via de Laplata),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시작하는 카미노 데 포르투게스(Camino de Portuges), 프랑스와 스페인의 국경도시인 이룬에서 시작해 스페인 북쪽 해안선을 따라 걷는 카미노 델 노르테(Camino del Norte) 등의 코스도 순례자들이 많이 찾는다.

이 길 위에서는 누구나 순례자가 된다
길을 떠났다면 이제 여행자가 아닌 순례자로 불리게 된다. 순례자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순례자 오피스에서 크레덴시알(Credencial)을 발급 받는 것이다. ‘순례자 여권’이라고도 불리는 크레덴시알은 순례자를 증명하는 서류 같은 개념이다. 이것이 있어야 순례자에게만 주어지는 할인이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각 지역의 성당이나 숙소에 도착해서 이 여권에 세요(Sello)라고 불리는 스탬프를 찍는 것도 순례길에서 얻는 큰 재미다.

루트는 달라도 카미노 데 산티아고의 모든 루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다른 여행지에서처럼 오늘은 어디를 가고, 무엇을 타야 하며, 어디에서 잠을 자고, 어떤 곳에서 밥을 먹어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길에는 친절하게 노란 화살표와 조개 껍질 이정표가 붙어 있다. 이를 따라 아침에 해가 뜨면 걷고, 걷다 지치면 숙소를 찾아 머물면 된다.

산티아고 순례길에는 호텔도 있고 호스텔도 있지만 대개 순례자 공동숙소인 알베르게(Albergue)에 묵는다. 시에서 운영하는 공립 알베르게와 개인이 운영하는 사설 알베르게, 그리고 기부제 알베르게 등이 있다. 한 공간에 4인부터 많게는 100인 이상 묵는 곳도 있다. 순례자만의 특별한 순간을 느끼고 싶다면 성당이나 교구에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묵는 것도 추천한다. 함께 식사를 준비하거나 미사 시간을 가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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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km의 여정에서 버리고 또 얻는 것들
카미노 프란세스는 인기 루트인 만큼 길이 잘 정비되어 있지만, 800km나 되는 거리는 하루에 20~30km씩 걸어도 완주에 30~35일 정도가 걸린다. 카미노 프란세스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피레네 산맥은 악천후로 유명하고, 코스를 구성하는 지형 역시 변화무쌍하다. 순례자들은 경사가 상당한 산악 지대부터 포도밭과 밀밭이 펼쳐진 평원, 광활한 고원 지대까지 다양한 지형을 만나게 된다. 이 때문에 순례길의 배낭은 가급적 가벼워야 한다.

기본적으로 발이 편한 등산화와 허리벨트가 튼튼한 배낭, 판초우의와 침낭이 필요하다. 웬만한 생필품은 순례길에서도 구할 수 있으니 너무 많이 들고 갈 필요는 없다. 짐을 들고 걷기 힘든 경우에는 동키 서비스(Donkey Service)를 이용하면 된다. 짐을 다음 목적지로 미리 보낼 수 있는데, 가격은 5~7유로 정도다. 종일 걷다 보면 하루하루가 물집과의 싸움이다. 보통 바늘과 실을 사용해 물집을 터트리는 방법을 사용하는데, 소독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덧날 수 있다.

카미노 프란세스의 가장 큰 장점은 스페인 북부의 다양한 자연과 도시 풍경을 벗삼아 걸을 수 있다는 점이다. 피레네 산맥의 뾰족한 봉우리들과 우거진 숲, 깊은 계곡, 끝없이 펼쳐진 너른 평원 등이 고즈넉한 순례길의 벗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뭉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마사지를 해주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고,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공감과 위로를 나눠주는 사람들. 그들과 함께 걷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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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깨닫는 삶의 소중한 순간 순간들
순례의 종결은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열리는 정오 미사다. 이 미사의 하이라이트는 성가대의 아름다운 합창 속에서 53kg의 숯이 든 거대한 향로가 천장을 향해 진자운동하는 향로 의식이다. 11세기부터 거행된 이 의식은 순례자들의 악취를 해소하고 전염병을 예방하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한다. 순례자 오피스에서는 100km 이상 걸은 사람들에게 순례자 증명서를 발급해준다. 완주 증명서가 목적은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는 증명서를 가지는 건 가슴 벅찬 경험이다.

이제 아무 근심 없이 아침에 일어나면 걷고, 저녁이면 지쳐 곯아떨어지는 단순한 날들은 끝났다. 머리를 비워둘 수 있는 시간이 끝난 것도 아쉬운데, 현실로 돌아가면 이런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800km를 걷고 나니까 뭐가 남았어? 갔다 와서 뭔가 좀 바뀌었어?” 그들은 800km를 걷는다는 큰일을 해낸 당신이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거나, 아니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 왔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런 압박에 굴복할 필요는 없다. 은퇴 후 순례길을 찾았다는 미국인 도널드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행복이라는 말에 강박을 느낄 필요는 없어. 행복을 찾다가 인생 끝날 일 있어? 그냥 가슴속에서 느껴지는 순간의 기쁨(Deep Joy)에 집중해. 그때 네 가슴이 떨림을 느낀다면 너에겐 신의 심장(Heart of God)이 있다는 거야. 그 신의 심장을 뛰게 해봐. 그걸 놓치지 않는 삶이 진짜 삶이야.”

minj@fn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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